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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세 전 연세대 유동식 신학교수 - 지난해 우주창조 금년엔 그리스도복음 설교

배남준 2020. 1. 17. 09:49



[100세 행복 프로젝트] [4] 前연세대 교수 유동식 박사

방탄소년단·영화 '기생충' 얘기하며 25분 동안 꼿꼿한 자세로 설교
아내 사별 후 삼시세끼 직접 챙겨… 매일 한두번은 41계단 오르내려
주일 예배 후에 교인들과 점심… 경청하는 태도, 유머감각에 인기


"작년에는 하나님의 우주 창조에 대한 말씀을 드렸고, 올해는 그리스도 복음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내년에도 하나님께서 살려주신다면 성령의 역사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지난 12일 오전 서울 연세대 루스채플. 강단에 올라 설교한 사람은 전 연세대 신학과 교수 유동식 박사였다. 흰 수염에 검정 두루마기 차림으로 강단에 선 그는 올해 백수(白壽), 우리 나이로 99세다. 그는 매년 1월 둘째 주 루스채플에서 열리는 연세대학교회(정종훈 담임목사) 예배에서 설교를 맡고 있다. 2009년부터 연례행사로 올해 열두 번째다. 그는 작년과 올해, 내년까지 '설교 3부작'의 주제를 미리 정해놨다.

안경·보청기도 없이 꼿꼿한 자세로 강단에 선 그는 미소 띤 표정으로 '그리스도의 복음과 풍류도'를 주제로 설교했다. 설교 내용을 그림으로 정리한 A4 용지 한 장짜리 강의안 여백엔 손글씨로 적은 메모가 빽빽했다. 설교 중엔 방탄소년단과 영화 '기생충' 등을 인용하며 "이름은 좀 이상(?)하지만 세계에 한국의 문화예술 저력을 알렸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약 25분에 걸쳐 설교한 그가 "(준비한 내용을) 다 이야기한 것 같기도 하고, 안 한 것 같기도 하다. 감사하다"고 설교를 마치자 교인들 사이에선 웃음이 번졌다. 예배가 끝나자 그는 예배당 현관 앞에서 정 목사와 나란히 서서 교인 한 명 한 명과 눈을 맞추며 인사를 나눴다.

1922년 황해도 평산 개신교 집안에서 태어난 유 박사는 연희전문과 감신대, 미국 보스턴대, 일본 도쿄대·국학원대에서 수학했다. 감신대와 연세대 교수를 지냈고 1988년 은퇴했다.

하나님이 내년 설교할때까진 살려주시겠죠? 지난 12일 연세대학교회에서 연례행사인 설교를 마친 후 예배실을 나서는 유동식 박사. 그는 “두루마기는 교수 시절부터 강의와 예배 때 입는 예복”이라고 했다. 아래 사진은 직접 커피를 타는 모습. 혼자 생활하는 유 박사는 웬만한 집안일은 직접 다 한다고 했다.
하나님이 내년 설교할때까진 살려주시겠죠? 지난 12일 연세대학교회에서 연례행사인 설교를 마친 후 예배실을 나서는 유동식 박사. 그는 “두루마기는 교수 시절부터 강의와 예배 때 입는 예복”이라고 했다. 아래 사진은 직접 커피를 타는 모습. 혼자 생활하는 유 박사는 웬만한 집안일은 직접 다 한다고 했다. /김한수 기자


16일 오후 찾은 연세대 후문 인근 대신동 자택은 지은 지 33년 된 단독주택. 초인종을 누르자 유 박사가 직접 나와 문을 열어 준다. "자동으로 열어 주는 장치가 고장 났는데, 고치지 않고 운동 삼아 내려와 문을 연다"고 했다. 오르막길에서 대문까지 계단이 25개, 그가 사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16개. 그는 매일 한두 번은 41계단을 오르내린다.

아내 윤정은 전 이화여대 교수가 2004년 별세한 후론 삼시 세끼를 직접 챙긴다. 새벽에 일어나면 30분 정도 스트레칭 후 묵상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생식을 두유에 타서 아침 식사하고 조선일보 사설을 챙겨본다. 점심·저녁은 1주일에 한 번씩 손자가 가져다준 반찬에 직접 밥을 지어서 해결한다. 16일 오후에도 유 박사는 혼밥 후 기자를 맞았다. 저녁 10시쯤 잠들기 전엔 지하 보일러실에 내려가 보일러를 체크한다. 수십 년째 반복되는 규칙적 일과다. 일주일 중 주요 일과는 1974년 루스채플이 완공된 때부터 출석하고 있는 연세대학교회 예배다. 예배 후엔 교인들과 함께 인근 식당에서 식사 후 차를 함께 마신다. 교인들 사이에선 유 박사와 점심 먹고 차를 마시는 시간에 '2부 예배'라는 별칭을 붙였다.

그는 '과로하지 않는 규칙적 생활'과 '사람들과의 교제'를 건강 비법으로 꼽았다. "평생을 학교에서 생활한 덕분에 규칙적인 생활이 몸에 뱄다"고 했다. 교제는 주로 교회와 제자들을 통해 이뤄진다. 그는 "주일 예배를 기다리는 것이 큰 낙(樂)"이라고 했다. "1주일에 한 번씩 만나 예배드리고 잡담하면서 보내는 시간이 소중하다"고 했다. 또 오랜 교수 생활 덕에 매주 한두 제자가 자택을 찾는다. 이들을 맞으러 현관까지 내려가고 2층으로 안내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기쁨이다. "천안 사는 아들이 걱정이 되니까 같이 살고 싶어하지만 내가 천안에 있으면 누가 이렇게 찾아오겠어요?"

주변에선 유 박사의 '열린 태도'와 '유머 감각'을 그의 건강 장수 비결로 보기도 한다. 실제로 12일 예배 후 인근 막국수 음식점에서 점심을 함께할 때 유 박사는 대화를 주도하기보다는 듣는 자세였다. 누군가 질문을 하면 또렷한 기억으로 과거를 회상하며 대답했다. 최신 K팝부터 정치·사회·경제 뉴스까지 꿰고 있지만 먼저 자신의  의견을 털어놓지 않았다. 한 교인은 "유 박사님은 다른 사람 이야기를 죽 들으시다가 딱 한두 마디 해주시는데 현자(賢者)가 따로 없다"며 "교인들 사이에 유 박사님과 함께하는 '2부 예배'에 참석하려는 경쟁이 치열한 편이라 평균 10여명씩 함께한다"고 말했다. 유 박사는 인터뷰를 마치며 "내년 설교 3부작을 마칠 때까진 하나님이 살려주시겠죠?"라며 웃었다.


유 박사는 인터뷰를 마치며 "내년 설교 3부작을 마칠 때까진 하나님이 살려주시겠죠?"라며 웃었다.



                                           조선일보 2020  1. 17   김한수 종교 전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