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식 순복음서울진주초대교회 목사가 1989년 가을, 부산 달맞이 공원에서 이경은 순복음진주초대교회 목사와 함께했다. 당시 지역 유지였던 전 목사는 성령체험을 받고 전도에 앞장섰다.
이경은 목사의 ‘아스팔트에 핀 부흥의 꽃’ <5>
그렇게 독하게 마음을 먹고 새벽기도, 밤샘기도를 하며 기도의 제단을 쌓았다. 내 눈물의 기도를 다 보고 계셨던 하나님은 오래 지체하지 않으셨다. 20년을 마음먹고 기도했더니 몇 년이 채 지나지 않아 확실한 응답을 주셨다.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렸다. 남편이 삼천포 성화 봉송주자로 뛰었다. 11월의 어느 날이었다. 기도회 도중 성령께서 남편에게 강하게 역사하셨다. 성령세례를 받고 눈물 콧물을 쏟으며 몇 시간 동안 회개 기도를 한 그날 이후, 남편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돼버렸다. 아니, 하나님께서 전혀 다른 사람으로 바꿔놓으셨다.
세상을 단번에 끊은 것은 물론이고, 모든 것이 하나님 중심으로 변했다. 남편은 거의 교회에서 살다시피 했다. 교회에서 기도하고 청소하고 봉사하고 온 시내를 돌아다니며 전도하는 데 전념했다. 삼천포 시내 사람이 다 안다는 재력가가 시장통 콩나물 파는 아주머니에게 90도로 굽혀 인사하면서 “예수 믿으세요”하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한순간에 전혀 다른 사람이 돼버린 남편을 보고 사람들은 저마다 수군거렸다. “전 사장이 예수를 믿더니 어떻게 됐는가 봐.” 엉망으로 신앙생활을 할 때는 술에 취해 교회를 와도 “아이고, 그래도 교회를 찾아오니 얼마나 믿음이 좋아”하며 칭찬하던 성도들조차도 변화된 남편의 모습에 어리둥절했다. “저러다 언젠가는 그만둔다고.” 뒤에서는 이렇게 비웃고 조롱하기도 했다.
당시 남편은 기도하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에 넘치도록 부어주신 복으로, 남편은 30대의 젊은 나이에 회장님 소리를 들으며 승승장구했다. 치기공소와 택시회사, 대형 횟집 등 여러 사업체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교회에 출석하며 집사 직분은 받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제대로 된 믿음을 갖지 못한 남편은 세상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았다.
사업도 사업이지만, 이곳저곳 부르는 곳이 많아 굵직한 직책들을 많이 맡고 있었다. 자연스레 하루가 멀다고 술자리에 참석했다. 한창때는 1년 365일 중 술 안 마시고 온 날이 3일밖에 없었다. 그런 남편을 보면서 내 속은 여름 가뭄 논바닥처럼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웬만하면 그런 일에는 눈을 감아 주었다. 대신 딱 한 가지 요구사항이 있었다.
“한 달에 두 번만 교회 가면 술 마셔도 아무 소리 않을게요. 다른 거로는 절대 바가지 긁지 않을 테니까 이 약속만 꼭 지켜 주세요.”
‘큰 것은 이기고 작은 것은 져주자.’ 육적인 것은 져주는 대신 영적인 것은 이기는 것이 나의 목표였다. 다른 것은 몰라도 주일만큼은 꼭 지키게 하려고 다른 것에는 모두 져주기로 했다.
그 약속 때문인지 남편은 억지로라도 한 달 두 번은 꼭 주일 예배에 참석했다. 그러던 것이 세 번이 되고, 세 번이 네 번이 돼 주일 예배는 꼭 참석했다. 그마저도 느지막하게 사도신경 외우는 시간에 들어가, 축도 시간에 일찌감치 나와 버리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런 남편을 변화시킬 수 있는 분은 하나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 하나님 앞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밖에 없었다.
“하나님, 남편을 위해 제가 기도의 제물이 되겠습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는데 강산이 두 번 바뀌는 20년이면 충분할까요. 저 아들을 위해 제가 20년을 작정하고 기도하겠으니 주님 품으로 속히 돌아오게 하옵소서.”
기 위해 기도원을 찾는 시간도 많았다. 그런데 남편을 만나는 기도원 원장님마다 남편에게 주의 종의 길을 가야 한다며 권유했다. 남편은 성격이 급했다. 말도 급해서 더듬을 때가 많았다. 세상에서 감투 쓸 일이 많았지만, 앞에 나서서 말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아니, 교회에서 구역장으로 세우려 해도 구역 공과로 말씀을 전하는 일이 두려워 피하던 사람인데… 그런 남편이 주의 종이 돼 성도들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주의 종이 돼야 한다니.’
남편의 모습을 너무 잘 알기에 두려움이 앞섰다. 나 역시 사모의 길을 가야 한다는 부담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이를 두고 작정하며 간절히 기도했다. “하나님, 저는 사모의 길을 생각해 보지도 않았고 갈 수도 없는 사람입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아무리 기도해도 하나님께서 이미 예비해 두신 길은 거부할 수 없었다. 내게는 그럴 힘도 없었다. 하나님은 기도 중 시 한 편을 떠올리게 하셨다. 초등학생 딸아이가 숙제로 내어 최우수상을 받았던 ‘요술쟁이 인두 다리미’였다. ‘인두야 인두야/ 요술쟁이 인두야/ 구겨진 샤쓰도/ 구겨진 치마도/ 깨끗하게 다려주는/ 인두야 인두야/ 요술쟁이 인두야/ 내 구겨진 마음도/ 다려 주려무나.’
하나님께 부름 받은 남편이 걸어가야만 하는 사명의 길이였다. 인간의 눈으로 보면 부족한 것투성이였다. ‘그래 내가 그 길을 함께 걸어가며 더러우면 씻어주고, 구겨진 것이 있으면 다려주자. 남편이 걷는 사명자의 길에 인두 다리미가 되자.’ 하나님의 선명한 메시지 앞에 그렇게 결심했다. 앞으로 어떤 길이 펼쳐질지 모르지만, 담대히 발걸음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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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의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은 우리와 맺은 언약을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다. 출애굽기 32장에 이를 잘 보여 주는 사건이 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겼을 때, 하나님이 얼마나 노하셨던지 모든 백성을 진멸하려 하셨다. 이때 모세는 하나님께 이렇게 간구했다.
“하나님, 하나님의 크신 능력으로 열 가지 재앙을 내려 애굽 땅에서 친히 인도하여 내신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제발 화를 그치시고 마음을 돌이켜서 이 백성에게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에게 하신 약속을 기억하소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향해 너희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허락한 땅을 자손들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으셨습니까.”(출 32:11~13)
모세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백성을 위해 간구했다. 이런 모세의 간구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진멸하려던 뜻을 돌이키셨다. 모세는 잘 알고 있었다. 하나님은 약속의 말씀 안에서 그대로 행하시는 여호와, 곧 언약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말이다.
예전에 한 성도가 어려움을 당했을 때 보험사에 혜택을 부탁한 일이 있었다. 한 설계사는 조건이 되지 않는다며 단돈 5만원의 혜택도 제시하지 못했다. 그런데 똑같은 상황에서 다른 설계사가 500만원의 혜택을 제시했다. 그래서 많은 혜택을 제시한 설계사에게 어떻게 이런 차이가 날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의 대답은 이것이었다. “보험 약관을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아는 만큼 받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언약 안에는 우리가 복 받을 방법이 정확히 기록돼 있다. 그 언약을 잘 아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을 풍성히 받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언약이란 무엇인가. 국가와 국민 사이에 준행해야 할 약속으로 ‘법’이 있듯이 하나님과 그의 백성 된 우리 사이에도 반드시 지켜야 할 약속, 곧 법이 있다. 성경은 그 법을 일컬어 언약이라 한다.
모세의 인도로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를 건너 “여호와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한다.(출 15:2) 고백한 그들을 시내 광야로 인도하신 하나님은 시내 산 불 가운데 강림하셔서 언약의 말씀을 선포하셨다. 그 언약의 말씀은 다름 아닌 여호와를 경외하는 법 곧 십계명이다.(신 4:10~13)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선포한 이 말씀에 대해 준행하기로 피로써 언약을 맺었다.(출 24:6~8)
기억해야 할 것은 이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주님은 “나는 내가 택한 자와 언약을 맺으며”(시 89:3)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반드시 택한 자와 언약을 맺으신다. 첫 사람 아담과도 언약을 맺으셨고(창 2:17) 이스라엘 백성과도 언약을 맺으셨다.(신 5:2~3) 나아가 오늘날 예수 믿는 우리뿐만 아니라 앞으로 예수 믿을 우리의 후손들과도 언약을 맺으신다.(신 29:14~15)
이 언약 안에는 두 길이 있어서, 하나님은 생명과 사망, 그리고 복과 저주의 길을 우리 앞에 두셨다.(신 30:19) 언약을 지키면 이 땅에서 복을 받을 뿐 아니라 생명에 이르게 되지만, 반대로 언약을 지키지 않으면 이 땅에서는 저주를 받고 결국에는 사망에 이르게 된다.(신 28) 그러므로 우리는 복과 생명의 길로 가기 위해 반드시 언약의 말씀을 지켜 행해야 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언약은 지키기 어려운 것이라 말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높은 하늘에서 별을 따 달라거나, 달을 따 달라는 허망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며, 우리 입에 있고 마음에 있어 우리가 결단하기만 하면 충분히 지킬 수 있는 것이다.(신 30:11~14)
그러므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언약을 지켜 순종하기 위해 힘써야 한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복과 생명을 받아 누려야 한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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