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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사학 창설자 김성일 장로의 고조선에 대한 생각

배남준 2019. 8. 20. 09:56








창조사학 창설자 김성일 장로의 고조선에 대한 생각


필자는 우리 한민족도 인류가 바벨탑을 쌓았던 장소로부터 아라랏 산을 지나 북상하여 다시 동쪽으로 이동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현지 지도를 펴놓고 우리 조상들이 어떤 경로를 따라 이동해 왔을까 하는 것을 추리하여 ‘홍수이후’라는 소설을 썼고 다시 ‘성경으로 여는 세계사’를 썼던 것이다. 그 후 창조사학회를 결성한 기독교인 학자들이 필자의 그 가설을 검증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학술조사단과 촬영팀이 국민일보 후원으로 54일간에 걸쳐 그 경로를 모두 답사하고 해당 지역의 대학을 방문하여 학자들과 만나 증거를 수집했으며 고대의 유물들을 찾아 확인했던 것이다.

그 결과는 필자의 추리가 대부분 정확했다는 것이다. 조사단은 그 모든 경로에서 민족 이동과 관련된 고리들을 찾아냈다. 그 첫째는 유물의 고리였다. 셈족 토기의 특징인 환저형 토기에서부터 고대인들이 사용하던 생활용구,그리고 우리 말과 같은 SOV형 교착어 사용 지역이 그 경로에 모두 분포되어 있었고 놀랍게도 그 모든 지역에 대홍수와 방주,그리고 홍수 때의 정보 전달자인 까마귀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창세기와 연결되는 설화들이 유라시아 대륙 전역에 연결되어 있었다.우리 조사단의 일원이 었던 이벤허 박사(중국명 李賓漢)는 그 결과를 정리,중국 북경대학에 논문을 제출하여 고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북경대학이 민족이동설을 인정한 것이다.

이 민족이동설을 우리 나라의 일부 국수주의적 재야 학자들이 거꾸로 주장하는 경우가 있다.우리 민족이 메소포타미아에서 동방으로 이동해온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역사가 그쪽보다 더 오래되었으므로 여기서 그쪽으로 옮겨갔다는 것이다.그러나 우리의 답사 결과는 그것이 잘못되었음을 명백하게 증명했다.그것은 각 지역에서 출토되는 석기에 사용된 돌들의 원산지 추적에서 나왔다.많은 돌들의 원산지가 출토된 지역과 다르게 나왔는데 그 결과는 석기의 소지자가 성경대로 서에서 동으로 옮겨 온 것을 증거하고 있었던 것이다.또 하나 명백한 증거는 전 유라시아 대륙에 걸쳐 분포되어 있고 베링 해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까지 건너간 흑요석(黑曜石) 공구였다.그 흑요석이 생산되는 지역은 전세계에서 오직 아라랏 산 부근밖에 없는 것이다.

삼국유사에는 3천명의 무리를 이끌고 내려온 하나님의 아들 환웅이 곰과 호랑이에게 쑥과 마늘을 주어 삼칠일을 먹고 견디면 사람이 되게 해 주겠다고 했는데 곰이 끝까지 견디어 여자가 되었고 환웅과 결혼하여 단군 왕검을 낳았다고 되어 있다.중국 산동성 가상현의 무씨묘에 있는 화상석을 학자들은 환웅천강도라고 하는데 그 세번째 단에 보면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동하는 사람들이 있고 곰과 호랑이의 얼굴을 한 두 사람이 싸워서 호랑이 쪽이 지는 그림이 들어 있다.이를 두고 학자들은 곰 토템 족이 호랑이 토템 족과의 경쟁에서 이긴 것이라고 해석하는데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BC 4천년 경 메소포타미아에는 이미 3,600명의 신들이 있었으나 우리나라에는 불교가 들어올 때까지 오직 하나님만 있었고 다른 신은 없었다.수많은 신들을 섬기는 서쪽에서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기 위해서 옮겨온 그들이 곰이나 호랑이를 숭배했을 까닭이 없다.곰과 호랑이는 오늘날 프로 야구팀의 심볼처럼 부족을 상징하는 로고였던 것이다.

우리 역사에 단군이 처음 등장하는 자료는 삼국유사다.그런데 삼국유사에 나오는 단군의 단은 박달나무 단(檀)이 아니라 제터단(壇)이다. 즉 단군(壇君)은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제단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책임자인 제사장이라는 직책명이다. 그 첫번째 단군의 이름이 바로 왕검이었다.그러므로 혹시 왕검상을 만든다면 또 몰라도 단군 즉 제사장의 상을 만든다면 이는 어이 없는 일이 된다.후일에 이승휴라는 사람이 제왕운기를 쓰면서 그 단군을 신비화하여 민족 정신의 구심점으로 삼기 위해 박달나무 단자를 썼는데 그 뒤로 단군이 박달나무에서 내린 신으로 바뀐 것이다.

고조선의 시작을 우리 학계는 BC 2333년으로 계산한다.성경에 기록된 연대를 계산하면 아담의 탄생은 BC 4114년이고 대홍수가 있었던 것은 BC 2458년이며 민족들이 흩어진 것은 벨렉이 태어난 해(창 10:25)로 계산하면 BC 2357년이다.즉 우리 민족이 바벨탑에서 동방으로 오기까지 24년이 걸렸다는 뜻이다.당시의 형편으로 미루어보아 꽤 빠른 속도이지만 우리 조사단은 볼가강 하류에 있는 아조프 박물관에서 바퀴가 달린 집의 모형을 발견하고 그 속도가 빨랐던 이유를 수긍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환단고기’가 말하는 단군 이전의 신시 환국(桓國)의 가설이나 단군상을 만든 사람들이 말하는 BC 7197년은 또 무엇인가?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에도 연대를 황당하게 부풀려 놓은 초기 왕조의 역사라는 것이 있었다.필자는 그것이 홍수 이전의 역사를 기록해 놓은 상징적인 것으로 생각한다.환단고기에 나오는 우리 조상들이 동방으로 오기 전 즉 메소포타미아의 역사를 써 놓은 것일 수도 있다.필자는 소설 ‘홍수이후’에서 그것을 니므롯과 아카드의 싸움으로 추리해서 쓴 적이 있다. 우리가 서쪽에서 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다면 강화도 마니산에 가볼 것을 권하고 싶다.마니산은 본래 ‘마리산’ 즉 ‘머리산’이었는데 첫번째 단군인 왕검이 그 정상에 쌓은 천제단은 서쪽을 향하고 있다. 우리 조상들이 서쪽에서 섬겼던 그 하나님을 향해서 제사드렸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김성일(작가·한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