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
- 농장일을 하는 톨스토이의 어느 날 하루 -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우리에게 익숙한 러시아의 문호(文豪)를 들라하면 대표적인 두 사람이 바로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일 것입니다. 두 사람은 동시대에 활동을 하였지만 생전에 한 번도 조우(遭遇)한 적이 없었으며, 작품의 경향이라든가 삶의 방식 역시 서로가 대조적이었습니다.
톨스토이는 단순한 문호가 아니라 위대한 현인이었고, 구도자였으며, 시대의 양심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만년에는 세계가 그의 말 한마디를 예언자의 소리로 듣기도 하였지요. 그는 그리스도의 산상수훈을 문자 그대로 따르려고 처절한 노력을 하였습니다. 고도의 신앙 윤리를 사모하였으며 거룩을 추구하였던 거지요. 예를 들면 부자에게 재산을 포기하라고 한 주님의 말씀을 따르기 위하여 자기의 농노들을 해방시켜 주었고, 넓은 토지를 무상으로 나누어 주기도 하였습니다. 귀족이면서도 직접 밭에 나가서 일하였고, 농부들과 똑같은 의상을 입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담배와 술을 멀리하고, 육식도 금하였으며, 금욕의 생활을 실천하려고 애썼습니다. 오랜 기간 절필하던 그가 장편 「부활」을 집필하게 된 동기도 황제에게 박해를 받던 재침례교도들을 돕기 위해서였던 것은 이미 알려진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톨스토이는 늘 완벽한 이상을 실천하지 못한데 대한 괴로움과 불만과 양심의 가책들을 느끼곤 하였습니다. 심지어는 자살하고픈 충동까지 자주 느낄 정도였습니다. 그러한 증거는 그의 말년에 쓴 일기와 서신 등에 잘 나타나 있지요.
또 한 사람 도스토옙스키는 톨스토이와는 너무 달랐습니다. 그는 평생을 술과 도박에 깊이 빠진 채 허우적거리며 재산을 탕진한 세월을 보냈습니다. 또한 무절제한 생활로 인한 피폐한 건강을 그는 한평생 고난의 짐으로 지고 살아갔습니다. 젊었을 때 황제에게 저항한다는 이유로 그는 사형언도를 받았지만 사형 직전에 특사로 풀려나는 ‘부활’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시베리아로 유형을 가면서 신약성경 한 권을 갖고 가서 읽고 또 읽게 됩니다. 마침내 유배지에서 돌아온 그는 이렇게 놀라운 신앙고백을 하지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진리가 아님을 누구든지 내게 증명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보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진리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을 것이다.”
유배지에서 도스토엡스키는 중요한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형상이 깃들어있다는 사실, 그리고 하나님의 은총을 누리게 되면 그 누구나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는 진리입니다.
우리에게는 두 사람이 모두 필요합니다. 톨스토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함에 전혀 도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줍니다. 우리의 내면의 세계 속에 있는 연약함과 죄성을 발견하도록 도와줍니다. 그리고 도스토옙스키는 나 자신 비록 그러한 존재일지라도 그리스도의 은혜의 빛이 비춘다면 희망이 있음을 보게 해줍니다. 그래서 톨스토이에게서는 끝없는 윤리를, 도스토옙스키에게서는 끝없는 자비를 보는 거지요. 은혜를 더욱 사모하는 요즈음이라 그런지 저에게는 도스토옙스키가 더욱 친근하게 다가옵니다.
追而-
-도스토옙스키의 실화 이야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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