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북서부의 작은 마을 엠덴에 머물고 있다. 이곳에 있는 종교개혁 연구도서관인 ‘요한네스 아 라스코’의 연구원으로 초청을 받았다. 한국의 폭염을 피할 수 있게 됐지만 더위라면 이곳도 만만치 않다. 독일엔 냉방시설이 별로 없다. 게다가 도서관 같은 공공건물은 냉방에 인색하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엠덴에서 여름을 지내며 인상적인 건 시간마다 울리는 교회 종소리다.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 30분 단위로 울린다. 정각에는 그 시각의 수만큼 울린다. 30분이 되면 한 차례 타종한다. 도서관 직원에게 왜 시간마다 종이 울리는지 물었다. 그랬더니 “그냥 독일적인 것이니 신경 쓰지 마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녀가 말했던 ‘그냥 독일적인 것’이란 뭘까.
교회 종소리에는 전통을 이어가겠다는 정신이 담겨 있다. 여러 해 전 독일에서는 기독교 신앙이 없는 사람들이 교회 종소리를 없애자고 주장했다. 뜨거운 토론이 있었지만 결론은 그대로 두자는 것이었다. 교회 종소리는 단지 기독교적인 것이 아니라 독일과 독일인의 역사와 삶 속에 내려오는 전통이라는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이었다.
오랫동안 들어왔던 종소리, 그래서 삶의 일부가 돼 버린 ‘그냥 들려오는 종소리’인 셈이다. 독일이 세속화되긴 했지만 2016년 통계에 따르면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인을 합쳐 전 국민의 58.5%가 기독교인으로 나타났다. 이들 중 많은 수가 교회에 나가지는 않아도 ‘교회세’를 내고 있다.
기독교, 특히 루터로부터 시작된 개신교는 독일을 형성하는 한 축이다. 그래서 ‘기독교적인 전통’이라 해도 그것을 마냥 기독교만의 것으로 치부하지 않고 국민 전체의 전통으로 생각하고 소중히 여긴다. 탈종교의 시대에도 정체성을 유지해 나가는 요소는 ‘지키자’는 공감대다.
교회 종소리는 공동체를 결속하는 기능도 한다. 철학자 칸트는 매일 정확한 시간에 산책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독일에서 지내다 보니 유독 칸트에게만 해당되는 습관은 아닌 것 같다. 모든 것이 너무 정확하고 에누리가 없어 정이 떨어지기도 하지만 이는 신뢰감과 연결된다.
도서관 직원들의 티타임도 그렇다. 매일 오전 10시30분을 알리는 종이 울리면 모두 휴게실에 모여 차를 마신다. 그리고 11시를 알리는 종이 울리면 제자리로 돌아간다. 친하지 않은 직원들도 어김없이 같은 시간에 만나 30분간 대화한다. 이처럼 공동체성이란 자주 대화를 나누는 데서 시작된다. 고집스레 자기주장만 하는 게 아니라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내 생각도 전하는 그런 대화 말이다. 종소리에 맞춰 지키는 티타임은 공동체성을 유지하는 중요한 수단인 것이다.
교회 종소리 속에는 어울릴 수 없는 것들이 조화를 이루는 모습도 담겨 있다. 과학과 종교를 생각해 보자. 리처드 도킨스 같은 학자들은 과학과 종교는 조화로울 수 없다고 주장했다. 과학과 종교 중 택일을 강요하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마다 울리는 교회 종소리는 과학과 종교의 예술적인 결합이 아닌가.
교회 종소리라는 점에서는 종교적이다. 하지만 시간에 맞춰 울리도록 설계돼 있다는 점에선 과학 기술이다. 주류 독일신학은 과학과 종교를 대립의 관계로 보지 않는다. 과학이 없는 종교는 미신과 무지로 흐를 수 있다. 종교 없는 과학은 우주와 인생의 근원적 의미를 놓치게 할 수 있다. 독일개신교연합(EKD)은 2008년 연구보고서에서 종교학 시간에 진화를 다룰 수 있고 생물 시간에 창조를 언급할 수 있다고 했다. 우주와 생물의 발전에 대해 생물학적인 접근과 신학적인 접근 모두를 인정하라는 주문이다. 상호보완적 관점은 필수적이다. 오늘날 우리는 과학기술 없이 살 수 없게 됐지만 물리학이 우주의 아름다움을 대신할 수 없고 수학적 언어가 시를 대신할 수 없다. 심리학 연구가 사랑에 대해 모두 말해주지는 않는다. 30분마다 울리는 교회 종소리에서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지속적 대화를 통해 공동체성을 유지하고 대립되는 견해들이 서로를 더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우병훈(고신대 신학과 교수)
-우병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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