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린 엄마의 승리
어제 저녁 시집간 간호사 '실로' 엄마에게서 느닷없이 전화가 왔다.
"오! 미쓰 최 웬일?"
결혼해도 나는 그녀들을 예전처럼 진료실에서 부르던 이름 그대로 부른다.
그러므로 옛날처럼 스스럼없이 그녀들을 대할 수 있어서 좋다. 그런데 미쓰 최의 음성이 거의 울고 있었다.
"선생님- 저- 미쓰 리 남편 말이예요"
미쓰 리는 역시 그녀와 치과 위생사 대학 동기로 우리 치과에서 근무하던 간호사, 예린 엄마이다.
"어, 그래 김 대위, 왜?"
"근데요- 선생님 김대위가- 강릉에서- 중대장으로 근무하고 있었잖아요"
그녀의 귀여운 경상도 사투리가 더욱 느릿하게 떨고 있다.
나에게 그제야 뭔가 불길한 듯한 내용의 감이 번개처럼 잡혀진다.
"이번 태풍에- 할머니 할아버지를 구하려다- 그만---실종되서---"
"신문에도- 동아, 조선에도 나왔어요"
겨우 그녀가 말을 맺었다.
"미쓰 리는 어떻대"
나는 다급하게 그녀의 형편을 묻는다.
"미쓰 리가- 실신해서 고향(삼천포)에서- 아직 강릉으로 못 올라 갔대요"
미쓰리 얘기할 때 그녀는 겨우 참았던 울음소리를 내고야 말았다.
'신문에서 못 봤는데'
당황스럽게 조선일보를 뒤적이니 오늘이 아니고 어제( 2002.월. 9,2) 42면에 사진과 함께 기사가 실려있었다
기사 전문을 옮겨본다.
" 殺身 중대장
대피지휘 김영곤 대위
老부부 구하려다 실종"
"태풍 루사가 강릉지역을 강타한 지난달 31일 밤 20대 육군 장교가 고립된 주민을 구하려다 실종됐다. 육군 철벽부대 김 영곤 대위는 이날 오후 10시쯤 강릉시 강문동 강문교 근처에서 해안초소 장병들을 고지대의 호텔로 대피시키고 교통 통제를 하던 중 인근 마을회관에 고립된 60대 부부가 구조를 요청하자 이들을 구하려다 급류에 휩쓸려 실종됐다고 군 당국은 말했다.
김 대위는 구조 장비를 챙긴 뒤 가슴 높이까지 물이 차오른 강문교 난간을 붙잡고 마을 회관 쪽으로 이동하다가 갑자기 불어닥친 초속 10m의 강풍에 중심을 잃고 하천으로 떨어졌다.
군 당국과 119 구조대는 사고 직후 출동해 하천 주변을 수색했으나, 1일 오후 늦게까지도 김대위를 찾지 못했다. 경남 삼천포 출신인 김 대위는 간부사관 2기생으로 임관했으며, 지난 1월부터 철벽부대 예하의 비룡부대 중대장으로 근무해 왔다. 부인과 네 살 된 딸이 있다”
국민일보 9월 2일 27면엔 그 기사의 양이 2,3배나 크게 실려 있다.
-기사 추가
"평소에도 유달리 부하장병들을 아껴왔던 김 대위는 동행한 통신병과 운전병에게 ?위험하니 내가 먼저 들어가 상황을 보고 신호하겠다’며 혼자 구조하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부대 관계자는 ‘김 대위는 의협심이 강하고 근면 성실해 부하 장병은 물론 상관들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며 어려운 사람을 보면 몸을 아끼지 않고 도움을 줘 부대 안팎에서 칭찬이 자자했다’고 말했다”
사진보다 훨씬 더 잘 생겼던 미쓰 리 남편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떠올랐다.
"이럴 수가!"
나는 하나님부터 찾았다.
"하나님! 이게 웬 일이지요?"
그 두 부부는 크리스천이었다.
개업한지도 30년이 되오니 많은 간호사들을 시집보냈다.
제일 오래 8년동안 근무한 미쓰 정, 인혁이 엄마는 그 두 아들이 벌써 대학생이고 북한산 자연 좋은 곳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용산 전자 상가에 남편을 도와 사업을 잘하고 있다.
그녀는 친척 이상으로 소식을 자주 전하고 왕래를 하고 있다.
거의 모든 간호사들이 치과에서 5,6년을, 결혼해서도 보통 1년씩 근무를 하고 애기를 안고 찾아오고 소식을 주고 받아오는 터이다.
그들은 한결 같이 결혼을 모두 잘했다. 성실한 남편을 맞아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경제적으로도 상당히 부하게 누리며 살고들 있다.
나에겐 이것이 늘 큰 자랑거리였다.
그런데 그 간호사들 중에서도 내 마음 속 깊이 아끼던 간호사가 바로 미쓰 리, 예린 엄마였다.
예린이는 4살된 딸이다. 예자는 예수님의 예자를 따온 이름이다.
인정이 많고 친절하고 사교가 좋고 순간적인 기지와 창의력이 있었던 예린 엄마였다. 등산 실력도 프로였다.
미쓰 리(예린 엄마)가 우리 치과에 근무할 때 그녀는 교회를 안나가고 있었다.
나는 우리 치과의 근무 원칙의 제일 조건을 얘기했다.
그것은 크리스천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쾌히 승낙하고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동네서 가까운 K교회를 나갔다. 그곳 M 목사님은 제자 양성에도 열심이어서 전국적으로도 알려진 분이시다. 뜨겁고 성령 충만한 교회를 잘 선택한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
그녀의 순전한 마음이 활짝 열리고 리트머스 시험지가 마치 물을 빨아들이듯이 믿음을 빨아들였다.
하루종일 근무하며 진료실에서 극동 방송에서 은혜를 받고 내가 으레 초신자들에게 건네주는"할렐루야 아줌마"에서 크게 은혜를 받았다.
한달이 지나고 나면 그녀의 신앙은 어느새 불쑥 불쑥 자라있었다.
그녀의 신앙이 크는 모습을 지켜보는 재미는 대단한 나의 기쁨이었다.
“보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 (누13:30)
그녀는 이미 교회 청년부에서 인기 있고 모든 주위 사람에게서 사랑받는 큰 일꾼이 되어있었다.
그녀의 손에서 성경이 늘 펼쳐있고 새벽, 철야 예배를 빠지지 않고 출석했다.
미쓰 최와 미쓰 리는 동향이고 원래 단짝 대학 동기라, 치과에서도 둘이 서로 호흡이 잘 맞고 지금 생각해도 '황금 콤비'였다. 치과의 분위기 전성시대였다.
미쓰리는 대학부터 사귀던 남자 친구가 있었다. 바로 故 김영곤 대위였다. 물론 그 당시는 학생이었고, 그와 미쓰리는 결혼 할 때까지 7년간을 한결같은 오작교 사랑을 나누었다. 그는 우리 치과에 자주 들렸고 군에 가서도 휴가 때마다 들렸다.
처음 훤하고 잘생긴 그를 보는 순간, 나는 그가 리더십이 강해 보이고 의협심이 강한 청년이란 느낌을 받았다.
'미쓰리가 신랑감 하나 잘 만났구나' 속으로 빙긋이 웃었다.
군에서도 일부러 그는 유명한 그 특전대를 자원하여 복무하더니 군이 적성에 맞는 다는 판단을 내리고 장기를 지원하여 시험을 거쳐 간부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장교로 복무하게 되었다.
사천에서 늠름한 중위 복장을 하고 결혼식을 올렸다.
그때 내가 개인적으로 가까운 이 충웅 음악 목사님을 모시고 가서, 아코디온 특별 축하 연주를 해 주었던 일이 엊그제 같다. 덕분에 한려 수도도 배를 타고 둘러보는 기회도 가질 수 있었다.
목사님이 한국 남성 합창단이라 예술의 전당에는 우리가 매년 초대 받아 갔었고 목사님과 우리 간호사들이 함께 오산리 기도원, 청평 강남 금식 기도원, 안양 갈멜산 기도원 두루 다녔던 아름다운 기억들이 새롭게 떠올랐다.
강릉부대에 오기 전에는 화천 산골에 부대가 있어 여름에도 그렇게 시원하고 오히려 추우니 꼭 놀러 오라고 한달에 한번씩 잊지 않고 전화로 소식을 전하던 그들 부부였다.
예린이 딸을 낳고 어찌나 애를 귀여워 하는지 기저귀 다 갈아주고 목욕시켜주고 바쁜 군 소대장 생활 속에서도 시간만 나면 애기와 같이 놀아주는 요즘 보기드문 가장이었다.
예린 엄마의 밝은 음성과 기쁜 소식을 전해들을 때마다, 그 두 부부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잉꼬 남편, 아내였다.
나는 개인적으로 미쓰리, 예린 엄마에게 어떤 큰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군을 통한 장병들의 전도의 열매였다. 군 부대는 전도의 황금 어장이다.
그녀의 생애를 통해서 많은 신병들의 열매가 맺어질 것을 조금도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김대위가 대대장 정도 되면 그 부대를 우리 군 선교회서 전도 위문 갈 수 있는 기회도 가져 보리라는
은근한 희망도 품고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 이게 웬일입니까?
미쓰리(예린 엄마)는, 또 젊은 나이에 얼마나 하나님을 원망하겠습니까?
그러잖아도 시집과 친정이 불교고 그녀 혼자 예수님을 믿는데 이 일로 인해 받을 핍박이 눈에 훤하다.
그래도 한가닥 위안은 김대위가 마누라 덕분에 교회를 나갔고 선한 일 위해 목숨까지 버렸으니
하나님께서 그 영혼을 귀히 보리라는 평안감이다.
주님! 사랑의 주님! 이런 때일수록 예린 엄마의 마음을 주님 품안에 강하게 품어 주옵소서!
잠시후 눈물을 씻고 하늘을 바라보게 하여 주옵시고 이 화를 통하여 앞 날에 더욱 큰 축복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자비로우신 하나님!
하나님의 뜻을 빨리 깨닫게 하여 주옵시고 그녀를 통해 주의 예비된 큰 열매를 맺게하여 주옵소서!
그렇습니다.
인간의 생사화복에
분명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아픔의 과정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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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 최, 실로 엄마에게서 전화가 지금 막 왔다
“선생님! 시체를 찾았대요”
“내일 10시에 강릉 국군 통합 병원에서 장례식이 있대요.
미쓰리도 그곳에 있대요.”
수요일은 정기 휴진이니 목요일은 정말 바쁩니다.
이미 환자 예약이 꽈 차 있는 형편입니다. 환자들에게 욕먹고 예약을 취소하더라도 ‘가 봐야겠구나!’
그녀는 신앙적으로 무척 외롭고 흔들리고 있을 것이다.
참았던 눈물이 나의 눈에서도 하염없이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마침 미쓰리를 교회에서 잘 인도해주시던 현재 아프리카 선교사님으로 계신 문 목사님이 나에게서 요즘 치료받고 있다는 사실은 저에게 어떤 예감을 들게한다.
‘문 목사님과 떠나기 전에 만나도록 해야겠구나’ 미쓰 최에게서 또 전화가 왔다.
"우리 일행 내일 새벽 5시 출발!"
그래, 예린 엄마를 꼭 안아주고 같이 울자꾸나!
그리고 우리 울며 하나님께 기도하자꾸나!
미쓰리(예린 엄마)네 시집은 모두 불교고 큰집 어른들은 노발 대발 기독교식을 반대했다.
그러나 영결식은 ‘주향’ 군인 교회에서 기독교 의식으로 엄숙히 거행되었다.
예린 엄마의 굽히지 않는 주장이 받아들여진 결과였다. 신앙의 승리였다.
그녀의 믿음을 걱정하던 염려는 전혀 기우였다. 슬픔속에서도 그녀의 신앙은 굳센 반석위에 견고히
빛나고 있었다.
영정과 김대위의 유해 앞에서 우리는 서로 안고 흐느껴 울었다.
“예린 엄마, 이럴수록 하나님을 꼭 붙잡아야돼!”
故김대위는 한 계급 특진 故 김영곤 소령으로
무공 훈장이 추서 되고 영정 옆엔 김대중 대통령이 보낸 조화가 자리하고 있었다.
3사 TV가 카메라가 분주히 촬영하고 있었다.
목사님이 말씀하신다.
“이곳에 많은 조화의 꽃들도 내일은 금방 시들어 버립니다.우리 인생도 마찬가집니다 ---영원한 생명을 사모해야 합니다. ---사람은 오래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죽느냐가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찬송가를 불렀다.
그렇다.
안개 같은, 풀의 꽃 같은 인생임을 성경은 말하고 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지향할 것은 오직 저 높은 곳이다.
미쓰리(예린 엄마)의 신앙은 나의 치과에 초신자로 와서 6년을 같이 근무하며 종일 진료실에서 극동방송을 들으며 우리 미쓰최와 함께 찬양과 예배를 통하여 열매를 맺은 신앙이다.
그녀의 구원의 확신과 천국 소망은 확실했다.
아내의 인도로 남편도 교회를 처음 나가게 되었고 그리스도의 희생정신이 그를 의로운 죽음을 맞게하였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 15:13)
지금 막 TV 뉴스에 故 김영곤 소령의 영결식이 방송되고 있다.
예린 엄마의 모습도 보인다.
귀여운 4살 예린이의 모습에 카메라가 촛점을 맞춘다.
예린이는 아직 아버지가 하늘나라 간 줄 모르고 있다.
아빠가, 김 소령이 너무 평소에 그 딸을 귀여워해서
아직은 예린이에게 거짓말로 속이고 있다고 한다.
미쓰리, 예린 엄마!
세월이 흐른후 모듣 것이 합력하여 선을 아루고 마침내 하나님이 주시는 큰 은혜와 아름다운 열매가 있으리.
예배 의식이 끝나후 참으로 고요한 평안이 그녀의 얼굴에 깃들고 있었다.
나는 줄곧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다. 유해가 교회를 벗어 날때 그녀는 태극기가 덮인 남편의 유해를 마지막으로 자꾸만 어루만지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또 한번 그녀의 아픔을 생각하고 울었다.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이 흘렀다. 그러나 예린 엄마는 용케도 울지를 않았다.
이제 그녀의 모습은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 속에서 아름다운 천사의 모습이었다.
신앙의 아름다운 승리자 예린 엄마여! 화이팅! 김영곤 형제의 영혼이여!
저 아름다운 천국에서 저주와 눈물이 없는 그 곳에서 이제 영원한 복락을 누리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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