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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칠세부동석 - 'ㄱ자 한옥교회' 이야기

배남준 2017. 7. 28. 21:09
남녀칠세부동석의 기억… 둘만 남은 ‘ㄱ자 한옥교회’ 이야기 기사의 사진
익산 두동교회(강동훈 목사)의 전경. ㄱ자 예배당 오른편엔 1929년 예배당 건축 당시 심은 반송이, 왼편엔 1964년 새로 지어진 벽돌 예배당이 있다.

 


전북 김제 금산면 금산리와 익산 성당면 두동리엔 우리나라에 둘밖에 없는 ‘ㄱ자 교회’가 있다. 1908년 건축된 금산교회(이인수 목사)와 1929년 세워진 두동교회(강동훈 목사)다. 기독교 역사 여행과 힐링의 명소로 알려지면서 방문객들이 늘고 있는 두 교회를 최근 찾았다.

신앙의 역사를 만날 수 있는 공간 

금산교회 방문객들은 ㄱ자 교회답게 특이한 방식으로 예배당에 들어갔다. 일행인데도 남자는 남쪽 입구, 여자는 동쪽 입구로 입장했다. 예배당 안은 손때 묻어 반질반질한 마룻장, 하얀 창호지를 바른 창문, 낡은 강대상 등 고즈넉한 풍경으로 가득했다. 강단 모퉁이부터 창틀까지는 휘장이 가로지르고 있었다. 남녀를 공간적으로 구분 지으면서도 한자리에서 복음을 전할 수 있게 하는 ㄱ자 교회만의 장치였다. 

“먼 길 오시느라 참말로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우리교회 초대 장로를 뽑던 날로 타임머신 타고 가보시지요. 장로 선출 투표에서 마을의 지주 조덕삼 영수(집사급 지도자)가 떨어지고 그의 머슴이었던 이자익 영수가 초대 장로가 된 겁니다. 쬐께 껄쩍지근 해가지고 참말로 거시기 허겄지요.(웃음) 그때 조 영수가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뜻입니다. 저는 이 장로를 열심히 섬기겠습니다’라고 말하니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지요.” 

이인수(69) 목사가 서울의 한 교회에서 온 성도들을 위해 한바탕 금산교회의 역사와 복음 이야기를 전했다. 이 목사는 “많을 땐 하루에 단체 관광객 10팀이 몰릴 때도 있다”면서 “개인이든 단체든 교회를 찾는 분들께는 재미있는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는다”며 웃었다.

두동교회에 들어서니 소나무로 촘촘히 얽은 천장과 88년 세월이 묻어나는 홑창부터 눈에 들어왔다. 한편에 놓인 낡은 풍금에선 주일예배마다 예배당 안을 메웠을 정겨운 찬송가 곡조가 들리는 듯 했다. 이곳에선 살아있는 역사로 불리는 박정호(93) 원로장로가 손님들을 맞이해왔다. 그는 이 교회가 ㄱ자 건물로 지어지기 전부터 예배를 드려온 90년차 성도다. 최근엔 박 장로의 건강이 좋지 않아 강동훈(56) 목사가 안내자로 나서지만 그동안 이곳을 찾은 사람들에겐 박 장로와 ㄱ자 교회, 88년째 교회 곁을 지키는 반송(盤松)이 하나의 그림처럼 각인돼 있다.  

“교회가 지어지던 시절, 형편이 어려운 소작농 성도들이 건축 비용이 없어 쩔쩔매고 있을 때 안면도에서 소나무 목재를 실은 배가 폭풍우로 침몰하는 바람에 인근 성당포구까지 떠내려 왔지요. 목재 주인이 다시 가져갈 방법을 찾다 성도들에게 헐값으로 넘긴 게 두동교회의 기둥과 지붕이 된 겁니다.” 강 목사가 들려준 두동교회 건축 이야기다. 그는 “박 장로님의 건강이 회복되면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 같은 교회 이야기를 예배당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토착문화 융화 노력의 상징 

ㄱ자 교회 발상의 뿌리는 1853년 중국에 파송된 미국 북장로교의 존 리빙스톤 네비우스 선교사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선교사업의 목표를 ‘자립적이고 진취적인 토착교회 형성’에 뒀다. 네비우스의 이 같은 선교정책은 19세기 말 조선땅을 찾은 선교사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남녀칠세부동석’으로 대표되는 엄격한 유교문화에서 남녀 모두에게 복음을 전파하고자 했던 선교사들은 ㄱ자 형태로 건물을 지어 예배를 드렸다. 선교지에서 맞닥뜨린 문화적 ‘다름’을 포용하고 건축양식을 활용해 지혜롭게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금산교회와 두동교회는 교회건축의 초기 토착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 건축물로 각각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36호와 제179호로 지정돼 있다. 소속 교단인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합동(총회장 김선규 목사)과 예장통합(총회장 이성희 목사) 역사위원회도 두 교회를 각각 기독교사적지로 지정했다.  

같은 ㄱ자 교회이면서도 두 교회의 공간구조는 살짝 다르다. 금산교회는 남자 성도의 공간인 남북방향이 5칸, 여자 성도의 공간인 동서방향이 2칸으로 이뤄져 있다. 두동교회는 남녀 공간 모두 3칸으로 동일하다. 강대상의 방향도 금산교회가 남자 성도 쪽을 향하고 있는 반면 두동교회는 목회자가 남녀 성도를 함께 바라볼 수 있도록 좌우 예배공간의 가운데를 향한다.

강 목사는 “금산교회가 세워진 지 19년이 흐른 뒤 두동교회가 건축됐는데 그 사이 남녀평등 사상이 확산된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남녀칠세부동석의 기억… 둘만 남은 ‘ㄱ자 한옥교회’ 이야기 기사의 사진
두동교회 ㄱ자 예배당의 내부 모습.

 


                                                     김제·익산=글·사진 최기영 기자 
                                                                                        [출처] - 국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