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복잡한 세계에서 평화를 담보하는 것은 그리스도가 가르쳐주신 봉사의 정신이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자기의 마음으로 하는 신자는 단체와 사회와 세계에 그리스도를 제공해야 한다.”
국내 최초의 설교모음집 ‘백목강연(百牧講演)’에 실린 남감리춘천교회 전도사 김형식의 설교 ‘봉사의 정신’의 일부다. 백목강연은 1920년 감리교 목사 양익환이 편집해 박문서관에서 발간했다. 총 25편의 설교가 수록돼있다. 100여년이 지난 설교에서 현대의 한국교회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설교집은 ‘복음의 전파와 공유’라는 사명을 갖고 만들어졌다. 북감리교 목사 최병헌은 머리말에서 ‘일반 잡지와 소설은 많으나 기독교의 복음전파를 위한 책이 없기 때문’에 설교집을 만들었다고 소개한다. 백목강연은 주일 예배에 참석하지 못해 설교를 듣지 못하거나 목회자가 없는 시골교회에서 예배 드리는 이들에게 전해졌다.
최근 백목강연에 대한 연구 논문을 발표한 장로회신학대 한경국(예배와 설교) 교수는 “요즘은 인터넷 등을 통해 손쉽게 많은 설교를 접할 수 있기 때문에 설교의 가치가 약화된 면이 있다”며 “백목강연은 설교를 하나님 말씀의 대언으로 여긴 초기 성도들의 면모를 보여준다”고 평했다.
이들 설교의 본문으로 구약은 총 4번밖에 사용되지 않았다. 한 교수는 “한국교회 설교자들의 신약 선호 현상이 초기부터 있었음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선교초기 복음 전파를 위해 예수의 생애와 말씀을 인용하는 게 필요했다는 점, 신앙적 계도와 계몽을 위한 내용이 신약에 다수 나와 있는 점 등이 이유로 꼽혔다.
설교자들은 주색잡기를 금하는 등 절제를 요구하며 그리스도인으로서 모범이 될 것 요구했다. 이화학당 교사였던 신준려는 ‘자성을 저촉함’이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흡연을 하는 성도들을 질타하며 “예수교인의 특징은 무엇이며 그리스도인의 특색은 어떤 것인가”라고 묻는다. 그는 담배 한 갑의 가격을 들어 “차라리 그 돈을 가지고 어려운 고학생 한 명을 돕는 것이 낫다”고 설교한다. 이는 청교도적 경건주의와 보수적 근본주의 신학을 배경으로 했던 선교사들의 구습타파, 계몽을 위한 절제운동이 당시에도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설교 제목으로는 청자(聽者)에게 무언가 할 것을 요구하는 청유형 제목(원수를 이기라, 두려워 말라, 자족을 배우라, 추수의 비를 빌라, 한 일만 하라, 자기를 이기라) 등이 주를 이뤘다. 또 해학이 있는 예화들을 많이 사용했다. 한 교수는 “일제강점기 암울했던 회중들에게 웃음을 주려는 노력이 깃들었다”고 평가했다.
최병헌은 설교 ‘생사일판’에서 “80∼90세가 돼도 사람은 삶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기 어렵다”고 강조하며 경성에 사는 가난하고 자식 없는 노파의 이야기를 예화로 들었다. 그 노파는 ‘죽는 게 소원’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 한 아이가 소원을 들어주겠다며 송진뭉치를 아편이라 속여 건넨다. 노파는 지팡이로 아이를 때리며 ‘나랑 무슨 원수를 졌다고 죽으라 하느냐’고 화를 낸다.
백목강연에 참여한 설교자 다수는 목사나 전도사였지만 이화학당의 교사 김활란 신준려, 가나다장로원산반도병원 원장 차형은, 중앙청년회 회장 윤치호 등 4명의 평신도도 있었다. 여성은 김활란 신준려 외에 북감리정동교회 전도사 이수선나까지 총 3명이 설교자로 참여했다. 한 교수는 “평신도의 설교권이 보장됐다는 점, 유교의 남존여비 사상이 남아있는데도 여성이 설교자로 참여했다는 점을 한국교회가 설교사의 전통으로 인정하고 계승해야 할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동주 선교신학연구소 소장은 “1740년 영국 감리교에서 평신도 설교가 공식적으로 처음 시행됐고 그 후 평신도들의 사역에 의해 복음이 전 세계로 확장됐지만 한국교회는 아직 평신도의 역할 확대가 부족한 편”이라며 “사회 각 영역에서 여성의 비중과 역할이 증대되고 있는 만큼 교회에서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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