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간증

노인으로 변신한 예수님 네번 만나 받은 축복 / 서울의대수석 원종수 박사

배남준 2017. 3. 14. 22:27

                 원종수박사 간증동영상


 "젊은이들이여 원종수 박사의 간증을 통하여 지혜를 배우십시요!"  


원 박사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그해 전국 의사고시에도 수석 합격한 수재이다.

지금은 미국에서 암전문 병원을 운영하며 신학을 전공하고 해외 의료선교사로 활동 중이다.


1990년대초 원종수박사의 신앙 간증 테이프는 우리나라 기독교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원종수 신드롬’을 몰고 왔다. 가히 매머드 태풍 급이었다. 미국 교회에서 간증한 테이프가 역으로 들어와서 화제가 되었다.

 그는 우리 크리스천들, 특히 젊은 엘리트층에 새로운 스타요 영웅이었다.
그의 간증 속에서 그는 직접 예수님을 만나고 음성을 듣는다. 예수님은 그만의 구원자가 아니다. 우리도 생활 속에서 언제나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세월이 제법 흐르고 당시의 청년들은 장년이 되고, 지금 젊은세대의 크리스천들은 원종수를 거의 잊어가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는 우리 크리스천들의 의식 속에 다시 살아나야 한다. 공부하는 학생들에겐 더욱 필요한 지혜의 간증이다.

불신자들이 들어도 재미있고 흥미롭다.원종수 박사를 모른다면 이 글을 읽는 순간 바로 기독교 서점으로 달려가

그의 저서와 테이프를 만나기 바란다. 그의 간증의 일부를 요약 소개해본다.


나는 51년 2월 8일 출생했다. 6․25 전란 중이었다. 나의 가족은 대전에서 살았고 아버지가 6세에 돌아가셨다.

험하고 가난한 생활의 연속이었다. 딸 셋 아들하나, 5명의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어머니는 고달픈 행상을 했지만, 새벽 기도만은 빠지지 않고

매일 가정 예배를 드렸다. 하늘이 보이고 다 쓰러져 가는 사글세 집에서 하루의 끼니를 걱정하던 시절이었다.

16세 때 나는 새벽예배 철야 예배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그때 방언의 은사를 받고 더욱 기도와 교회 생활에 열심이었다.

그해 겨울 어머니가 거지 할아버지 한 분을 모시고 오셨다. 대전 역 앞에서 구걸하던 노인이셨다. 옷은 때가 갑옷처럼 두터워져 있고

악취가 심했다. 할아버지를 목욕시켜드리라는 어머니의 말씀에 순종하여 한 벌 밖에 없는 옷을 입혀드리고 우리의 끼니도 부족한 속에서

정성스럽게 한 겨울을 모셨다.이상한 일이 생겼다. 집 앞을 지나던 사람들이 먹을 것, 입을 것을 놓고 갔다.
어느 날 새벽 기도 중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종수야, 종수야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깜짝 놀랐다. 사람의 목소리도 아니고 큰 소리도 아닌데 분명 하나님의음성임을 깨달았다.
나의 입술에서 ‘돈’ 하려다가, 솔로몬의 지혜 구하던 일을 생각하고

“하나님! 지혜를 주세요.” 하고 대답했다.

새벽 기도를 다녀와서 성경 로마서 쪽 복음 16장을 두 번 읽고 걸어가는데 이상한 일이 생겼다. 눈에로마서가 보이는 것이었다.

머릿속으로 넘기면 페이지가 보이고 그 내용이 훤히 다 보였다. 신비한 능력이 생겼다. 바로 하나님이 지혜를 주신것이었다.


어느 날 선생님이 나를 부르셨다. 나의 성적은 전교 480명 중 410등이었다. 선생님의 안타까운 꾸중이 있었다. 분발하기로 했다.

열심히 공부하고 시험 볼 때마다 머릿속에서 책장을 넘기면 답이 있었다. 갑자기 전교에서 5등을 하고 대전 고등학교를 1등으로 졸업을 했다.

그리고 서울의대예과에 합격을 했다. 그러나 나의 몸은 극도로 쇠약해져 있었고 신체검사후 보건소에서 통지가 왔다.

나의 폐가 반이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심한결핵에 걸려있었다. 그래도 아르바이트를 계속해야 되었고, 지쳐버린 나는마침내

죽기로 결심을 했다. 1969년 5월, 화학실험실 4층 발코니에 한발을 걸치고 떨어지려는 순간

“종수야!” 부르는 어머니의 애절한 음성을 들었다.
마음을 돌이키고 기도원에 들어가서 하나님께 매달렸다. 물도 마시지않고 단식을 했다. 하루저녁이 지났다.

피가 다른 폐로 들어가고 더 힘들어졌다. 둘째 날 밤, 정신이 혼미해지고 손가락도 움직이지 못했다.

새벽4시 반에 내가 늘 어려서부터 기도하던 그 시간에 하나님이 찾아오셨다.
갑자기 머리가 시원해지며 “종수야, 네 머리는 새 것이 되었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위에서부터 아래로 모든 부위마다 “새 것이 되었다.”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말씀의 선포가 있었다. 그 시원한 기운이

엄지발가락을 빠져나가는 순간 나는 오뚝이처럼 발딱 일어나 단숨에 산을 뛰어 올라갔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산 속 깊은 곳곳에 감사의 메아리가 “-다-다-다.” 울려 퍼지고 있었다.


본과 1학년 때 아르바이트로 3만원을 벌었다. 어머니에게 고기를 사드리고 싶다는 기쁨으로 대전으로 향했다. 토요일 밤 11시였다.

고속버스정류장에 내리니 다 떨어진 바지를 입은 할아버지 한 분이 떨고 계셨다.
내 마음과는 달리 나의 손은 어느새 그 할아버지에게 가진 돈 3만원을 모두 쥐어 주었다.

그리고 정육점 앞을 그냥 지나칠 때는 어머니 생각으로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프고 눈물이 났다.

뒤에 미국 간증 집회의 기도 중에 나에게 다섯 장면이 환상으로 비춰졌는데 처음 장면은 16살 때 만났던 거지 할아버지였고

두 번째 장면에서 이 할아버지 모습이 보였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그때 내가 얼마나 춥고 배고픈지 몰랐다. 너는 내게 큰돈을 주었다.평생 너를 축복하겠다.”


75년 서울 의대를 1등으로 졸업하고 의사국가고시에도 1등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돈 3만원에 1등을 예수님으로부터 축복의 선물로 받았
다고 믿는다.레지던트 때 일이다. 어머니께 월급을 드리고 3만원을 갖고 있었다. 병원 밖에서 할아버지 한 분이 떨고 계셨다.

돈이 없어 접수도 못하고 쫓겨나 있었다. 증상이 심각했다. 내가 모든 것을 책임지고 정성껏 치료해드렸다. 다리에 종기를 째서 고름을 짜고 심을 박고 주사를 양 쪽 궁둥이에놔드렸다. 그리고 손에 가진 돈 3만원을 모두 드렸다. 그리고 예수를 믿으라고 전도를 했다. 세 번째 장면에 이 할아버지 모습이 보였다. 예수님이말씀하셨다.
“that was me.”
“내가 너를 영혼을 사랑하는 훌륭한 의사로 축복해주겠다.”


병원에서 전문의 수련을 하고 있을 때 재벌들 사이에 서로 사위로 삼으려는 쟁탈전이 벌어졌다. 결혼만큼은 팔려가는 당나귀 신세가 되고 싶지않았다. 방위병으로 병역을 마치고 나는 아브라함처럼 고향을 떠나 미국으로 가기로 결심을 굳혔다.

미국 대사관에서 건강 진단서를 요청해 검진을 받고 보니 예전에 폐를 크게 앓았던 흔적이 있어 힘들다고 했다.

어머니와 누나들까지 전 식구가 3일 금식기도로 들어갔다. 일주일 후 세브란스 병원에서 다시 X레이를 찍었더니 시커먼 흔적이 사라져 있었다. 또 한번의 기적이 일어났다.


비행기 표 값을 절약하기 위해 비행기 속에서 ‘홀트양자회’ 입양아들12명을 정신없이 돌보며 미국에 도착했다. 막상 갈 곳이 없었다. 기도 중에 예전에 어머님이 일하시던 선교사집, 하지스 목사님이 떠올랐다. 그분이 필라델피아 멕키스 포트에 살고 계셨다. 그러나 목사님과의 연락이 막막했다. 영어도 통하지 않았다. 그때 어떤 할아버지가 다가오셨다. 흰 모자를 쓴 경찰이었다.

그가 하지스 목사에게 전화 연락을 해주었다.미국 교회 초청 간증 집회에서 기도 중 환상의 네 번째 장면에 이 할아버지 모습이 나타났다. 예수님이 “그게 나였다.”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위기에 처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시는 좋으신 아버지이시다.


목사님은 집회 중이어서 대신 딘이란 분이 나를 데리러왔다.
그가 나에게 물었다.
“Are you christian?”
“Yes.”
그러나 그가 다시 진지하게 물었다.
“Are you real christian?”
“당신은 진정한 크리스천입니까?”하고 묻자 나는 순간 멈칫하며“네.”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신앙생활 해오며 진정한 크리스천이란 의미는 늘 나와 주위의모든 크리스천들에게 심각하게 던져보는 의문이 되었다.

교회를 몇 십년 다닌다고 장로나 권사라고 모두 진정한 크리스천이라고 할 수 없다.

반면에 교회를 일 년 다닌 성도라도 얼마든지 진정한 크리스천이 될 수있다.

딘은 다음 날, 집회 장소에 같이 가면서 예배가 끝난 뒤 내가 간증해줄 것을 부탁했다. 나는 깜짝 놀랐다.

학교 식 영어로는 대화가 되지 못했다. 나는 단호히 거절했다. 그러나 예배가 끝난 뒤 미스터 원의 간증이 있겠다고 미리 광고를 하는 것이었다. 나갈 수가 없었다. 박수가 터져 나왔다. 할 수없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며 단상에 섰다. 담대하게 입을 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영어 방언이 쏟아져 나왔다. 나도 모르게 그저 성령님이 인도하는 대로 정신없이 30분간 얘기했다.

끝난 후 그들이 500불을 모금해서 나에게 주었다. 교회 밖을 나서니 한 사람이 숨 가쁘게 달려와서 안수 기도를 부탁했다.

뼈가 골절 되서 고생하고 있었다. 당황스런일이었다.

나는 한국말로

“하나님, 이러시깁니까! 저를 창피 안 당하게 해주세요.” 아무튼 간절히 기도했다.

그런데 그 날로 그 사람이 깨끗이 치료받는 기적이 일어났다.


원종수 박사의 간증은 미국 생활을 통하여 유명한 암 전문의가 되기까지 그리고 지금 의료선교의 현장에서 만나는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들이뜨거운 감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사실 기독교는 체험의 종교이다.

그를 모르던 분들은 그와의 깊은 만남속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반드시 체험하기를 바란다.

                                                                                   -저서 '어느 치과의사의 과학속에 만난 하나님'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