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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참배의 거부로 순교의 영광 / 강도룡목사

배남준 2017. 3. 1. 21:02

“순교의 영광 마다하고 어찌 우상에 절하겠나” 기사의 사진

강도룡 목사(앞줄 왼쪽)가 경주성경학교 교장 재임 당시 미국 북장로회에서 파송된 레이몬드 C 프로보스토 목사(오른쪽)와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강대권 목사 제공


일제강점기, 항일 사상이 투철한 전도사가 있었다. 신사참배를 거부한 그는 거듭되는 회유와 고문, 가택연금에도 끝내 굴하지 않았다.  
고문을 당하면서도 가족에겐 “예수님을 위해 순교할 수 있는 영광이 주어지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느냐. 영광스런 기회가 앞에 왔는데 어찌 이를 마다하고 우상에게 절을 하겠느냐”고 했다고 한다.

그는 1940년 일본경찰에 연행됐다. 감옥에 갇혀서도 신사참배를 거부하니, 경찰서장은 궁리 끝에 “이곳은 100% 신사참배 참여”라고 상부에 허위보고를 했다. 관내 신사참배 거부자가 있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고, 서류를 꾸며 그를 정신병자로 둔갑시켜 ‘금족령’(10리 밖으로 못나가고 교회예배 등 5명 이상 모임에 참석 못함)을 내려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렇게 가택연금을 당한 그는 해방되는 날까지 묵묵히 삶을 이어갔다.


한국영남교회사에 따르면 그는 경주 4개 교회 전도사로 일하다 해방 후 장로회신학교에 입학, 1950년 목사안수를 받았다. 아무리 나쁜 입지의 목회지라도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주님과 교회형편을 위해 택했다. 은퇴 후에도 편히 쉬지 않고 두메산골 교회에 부임해 말씀을 전하며 여생을 마쳤다.

경북 경주 안강제일교회를 담임했던 고 강도룡(1906∼1983) 목사 이야기다. 단호하게 신사참배를 거부했던 그는 자신의 자녀들도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모든 공립학교가 일제의 신사참배를 강요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아이들은 학교 대신 교회학교를 다녀야 했다. 

자녀교육은 뚝심 좋은 그에게도 어렵고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우상숭배를 하지 않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겠다는 결심을 일관되게 지켜나갔다. 1945년 일제 패망과 더불어 해방이 찾아오자 그제서야 자녀들은 학교에 갈 수 있었다. 벌써 중·고등학생의 나이가 된 청소년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간 것이다.

강 목사는 자녀에게 가정예배의 대표기도와 성경말씀 찾기, 설교를 번갈아 맡겨 신앙성숙을 도모했다. 눈앞의 이익만을 취할 게 아니라 멀리 내다보고 양보할 줄 아는 겸손한 신앙인이 되라고 가르쳤다. 또 열심히 벌어 남에게 유익함을 주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강 목사의 양육은 자녀 2남 5녀를 모두 신실한 신앙인으로 성장시켰다. 전부 세례를 받고 학생회 임원과 찬양대원, 교회학교 교사 등을 맡았다. 그리고 강 목사의 기도대로 모두 목회자와 전도사, 권사가 됐다.

중·고등학생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경주 문화중·고 교목으로 헌신한 강대권(70) 목사가 그의 장남이다. 해외한인장로교회연합(KPCA) 전 총회장인 강대은(63·미국 샌프란시스코 은혜의빛장로교회) 목사가 막내아들이다. 첫째 딸과 둘째 딸은 강대희(92) 강문희(85) 전도사로 미국 캔자스주에서 앞뒷집에 살며 교회를 섬기고 있다. 3녀와 4녀, 5녀는 강대영(82) 강대현(73) 강대경(67) 권사. 4녀 강대현 권사의 남편은 괌에서 의료봉사활동을 활발히 벌이는 홍래복 장로이며 괌 의회 최초로 감사장까지 받았다. 5녀 강대경 권사의 남편은 ‘모유전도법’을 만들어 전 교인 전도특공대를 만들고 있는 엘림전도훈련원장 엄호섭(68)장로이다. 

이들 7남매는 가족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기독교 신앙’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장남 강대권 목사는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신앙의 지조를 지킨 아버지의 정신적 유산은 우리 삶에 이정표가 됐다”며 “하나님을 의뢰하고 그 계명을 잘 지키는 참된 신앙가족으로 살려고 한다”고 말했다.

안강제일교회 묘지에 안장된 강 목사 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다.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요삼 1:4). 일생을 주의 일 하다가 영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으나 흙으로 빚어진 몸 이곳에서 편히 잠드시다. 주님 재림하시는 날 천군천사 나팔소리에 화답하며 다시 만나리… 아멘, 할렐루야.’ 

                                                                                                                  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