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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펜젤러 중간이름 '게르하트'가 맞다

배남준 2017. 2. 7. 10:16

아펜젤러 중간 이름 ‘게르하르트’가 맞다 기사의 사진

아펜젤러 선교사가 공부했던 미국 프랭클린마샬대학 졸업생 명부에는 미들네임이 ‘게르하르트’로 기록돼있다. 작은 사진은 아펜젤러. 프랭클린마샬대 제공



1885년 언더우드, 스크랜턴 선교사와 함께 한국에 첫발은 내딛은 아펜젤러 선교사의 정확한 이름은 ‘헨리 게르하르트(Gerhart) 아펜젤러’인 것으로 밝혀졌다. 한국과 미국의 사전이나 자료 등에는 아펜젤러의 미들네임(중간 이름)이 ‘게르하르드(Gerhard)’로 표기돼 있다.  

박용규(총신대 역사신학) 교수는 “미들네임은 통상 모친의 성에서 따온다. 아펜젤러도 어머니 마리아 게르하르트의 성을 자신의 미들네임으로 물려받았다”며 “그럼에도 그의 미들네임이 오기(誤記)돼 왔다”고 5일 밝혔다.

박 교수는 최근 아펜젤러 선교사의 계보를 다시 추적하면서 이를 확인했다. 박 교수는 “아펜젤러의 형인 제이콥과 동생 밀턴도 미들네임이 게르하르트였다”며 “어머니의 형제들 성도 모두 게르하르트였다”고 소개했다. 실제로 아펜젤러의 외고조부 요한 페테르 게르하르트(Johann Peter Gerhart)는 1716년 독일에서 태어나 미국의 1차 대각성운동이 한창이던 1730∼1740년 전후로 이민, 1766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몽고메리에서 별세한 이민자다.


박 교수는 또 아펜젤러가 공부했던 프랭클린마샬대학과 드루신학교 졸업 자료에도 모두 미들네임이 게르하르트로 기록돼 있음을 확인했다. 프랭클린마샬대학 카탈로그(62쪽)의 1882년 졸업생 명부 첫 줄엔 ‘Rev. Henry Gerhart Apenzeller, A. M. [G]. Died June 11, 1902’로 기록돼 있다. 

박 교수는 “아펜젤러의 미들네임이 게르하르드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아펜젤러의 전기를 출간한 윌리엄 엘리어트 그리피스 때로 추정된다”며 “그리피스는 자신의 책에서 게르하르트와 게르하르드를 혼용했으며, 전기 출간 이후 후대 학자들과 언론들이 게르하르드로 기록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름을 정확히 표기하는 것은 역사 기록의 첫 단추와 같고 한 개인에 대한 진심어린 존중의 출발”이라며 “이제라도 한국교회와 세계교회는 아펜젤러의 미들네임을 바르게 기록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마포구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에는 아펜젤러의 미들네임이 정확히 기록돼 있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1885년 언더우드, 스크랜턴 선교사와 함께 한국에 첫발은 내딛은 아펜젤러 선교사의 정확한 이름은 ‘헨리 게르하르트(Gerhart) 아펜젤러’인 것으로 밝혀졌다. 한국과 미국의 사전이나 자료 등에는 아펜젤러의 미들네임(중간 이름)이 ‘게르하르드(Gerhard)’로 표기돼 있다.  

박용규(총신대 역사신학) 교수는 “미들네임은 통상 모친의 성에서 따온다. 아펜젤러도 어머니 마리아 게르하르트의 성을 자신의 미들네임으로 물려받았다”며 “그럼에도 그의 미들네임이 오기(誤記)돼 왔다”고 5일 밝혔다.

박 교수는 최근 아펜젤러 선교사의 계보를 다시 추적하면서 이를 확인했다. 박 교수는 “아펜젤러의 형인 제이콥과 동생 밀턴도 미들네임이 게르하르트였다”며 “어머니의 형제들 성도 모두 게르하르트였다”고 소개했다. 실제로 아펜젤러의 외고조부 요한 페테르 게르하르트(Johann Peter Gerhart)는 1716년 독일에서 태어나 미국의 1차 대각성운동이 한창이던 1730∼1740년 전후로 이민, 1766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몽고메리에서 별세한 이민자다.


박 교수는 또 아펜젤러가 공부했던 프랭클린마샬대학과 드루신학교 졸업 자료에도 모두 미들네임이 게르하르트로 기록돼 있음을 확인했다. 프랭클린마샬대학 카탈로그(62쪽)의 1882년 졸업생 명부 첫 줄엔 ‘Rev. Henry Gerhart Apenzeller, A. M. [G]. Died June 11, 1902’로 기록돼 있다. 

박 교수는 “아펜젤러의 미들네임이 게르하르드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아펜젤러의 전기를 출간한 윌리엄 엘리어트 그리피스 때로 추정된다”며 “그리피스는 자신의 책에서 게르하르트와 게르하르드를 혼용했으며, 전기 출간 이후 후대 학자들과 언론들이 게르하르드로 기록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름을 정확히 표기하는 것은 역사 기록의 첫 단추와 같고 한 개인에 대한 진심어린 존중의 출발”이라며 “이제라도 한국교회와 세계교회는 아펜젤러의 미들네임을 바르게 기록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마포구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에는 아펜젤러의 미들네임이 정확히 기록돼 있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1885년 언더우드, 스크랜턴 선교사와 함께 한국에 첫발은 내딛은 아펜젤러 선교사의 정확한 이름은 ‘헨리 게르하르트(Gerhart) 아펜젤러’인 것으로 밝혀졌다. 한국과 미국의 사전이나 자료 등에는 아펜젤러의 미들네임(중간 이름)이 ‘게르하르드(Gerhard)’로 표기돼 있다.  

박용규(총신대 역사신학) 교수는 “미들네임은 통상 모친의 성에서 따온다. 아펜젤러도 어머니 마리아 게르하르트의 성을 자신의 미들네임으로 물려받았다”며 “그럼에도 그의 미들네임이 오기(誤記)돼 왔다”고 5일 밝혔다.

박 교수는 최근 아펜젤러 선교사의 계보를 다시 추적하면서 이를 확인했다. 박 교수는 “아펜젤러의 형인 제이콥과 동생 밀턴도 미들네임이 게르하르트였다”며 “어머니의 형제들 성도 모두 게르하르트였다”고 소개했다. 실제로 아펜젤러의 외고조부 요한 페테르 게르하르트(Johann Peter Gerhart)는 1716년 독일에서 태어나 미국의 1차 대각성운동이 한창이던 1730∼1740년 전후로 이민, 1766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몽고메리에서 별세한 이민자다.


박 교수는 또 아펜젤러가 공부했던 프랭클린마샬대학과 드루신학교 졸업 자료에도 모두 미들네임이 게르하르트로 기록돼 있음을 확인했다. 프랭클린마샬대학 카탈로그(62쪽)의 1882년 졸업생 명부 첫 줄엔 ‘Rev. Henry Gerhart Apenzeller, A. M. [G]. Died June 11, 1902’로 기록돼 있다. 

박 교수는 “아펜젤러의 미들네임이 게르하르드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아펜젤러의 전기를 출간한 윌리엄 엘리어트 그리피스 때로 추정된다”며 “그리피스는 자신의 책에서 게르하르트와 게르하르드를 혼용했으며, 전기 출간 이후 후대 학자들과 언론들이 게르하르드로 기록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름을 정확히 표기하는 것은 역사 기록의 첫 단추와 같고 한 개인에 대한 진심어린 존중의 출발”이라며 “이제라도 한국교회와 세계교회는 아펜젤러의 미들네임을 바르게 기록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마포구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에는 아펜젤러의 미들네임이 정확히 기록돼 있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