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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뇌신경외과 최고상 수상, 36살 의사 죽음 직전기록

배남준 2017. 1. 22. 16:45

[펌]

                  故 폴 칼라니티 저서 '숨결이 바람 될 때'

                      -2016년 뉴욕 타임스 아마존 1위 최고의 화제작


# 저자


'숨결이 바람 될 때' 저자 폴 칼라니티는 1977년 뉴욕에서 태어나 스탠퍼드 대학에서 영문학과 생물학을 공부했고, 영문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문학과 철학, 과학과 생물학에 깊은 관심을 보였던 폴 칼라니티는 이 모든 학문의 교차점에 있는 의학을 공부하기로 마음먹고 케일브리지 대학에서 과학과 의학의 역사 및 철학 과정을 이수한 뒤 예일 의과 대학원에 진학해 의사의 길을 걸었다.


졸업 후 모교인 스탠퍼드 대학 병원으로 돌아온 폴 칼라니티는 신경외가 레지던트 생활을 하며 박사 후 연구원으로 일하며 연구 업적을 인정받아 미국 신경외과 학회에서 수여하는 최우수 연구상을 수상받았다. 최고의 의사로 손꼽히여 여러 대학에서 교수 자리를 제안받는 등 장밋빛 미래가 눈앞에 펼쳐진 폴 칼라니티는 서른 여섯 살이 되던 해 폐암 진단을 받고 지난 2015년 3월, 아내 루시와 딸 엘리자베스 아카디아 등 사랑하는 많은 사람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 책을 읽은 이유


살다 보면 한 번쯤 생각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죽음'이었다. '죽음' 앞에선 그 어떤 누구도 평등하다던데 만약 눈 앞에 그런 상황이 발생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황금빛 인생이 펼쳐진 폴 칼라니티는 갑작스럽게 닥친 암 판정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됐다. 소중한 사람을 보지 못하고 꿈꾸던 일들을 하지 못하게 된 상황에서 진정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일지 폴 칼라니티의 생각과 이야기를 듣고 싶어 그가 쓴 '숨결이 바람 될 때'를 고르게 되었다.


# 줄거리


폴 칼라니티가 쓴 '숨결이 바람 될 때'는 그의 레지던트 시절 이야기부터 신경외과 의사가 되면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학교의 교수 제안을 받는 등 서른 여섯 살의 그는 정상에 올랐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찾아온 몸의 통증으로 그는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암 판정을 받았다는 사실에도 그는 절망하기보단 아랑곳하지 않고 진단과 검사를 받았다. 


암 판정을 받은 폴 칼라니티는 희망의 끈을 놓치 않으려고 평소의 삶을 그대로 살며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았다. 신경외과 의사 생활을 유지하며 자신의 담당의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암에서 이겨낼 것 같았지만 바람은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상상도 못할 정도의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낸 폴 칼라니티는 자신의 또 다른 꿈인 글을 쓴다는 것을 마지막 목표로 삼는다. 그렇게 '숨결이 바람 될 때'를 쓴 그는 딸에게 처음이자 마지막 편지를 쓰고 세상을 떠났다.


# 느낀 점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삶의 정상에 올라왔을 때 갑작스럽게 불치병에 걸리면 어떤 기분이 들까? '숨결이 바람 될 때'의 저자 폴 칼라니티가 바로 그랬다. 하지만 그는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부정적인 생각보다 어떻게든 이겨내려고 했다. 적극적인 자세로 암 치료를 받으며 다시 원래대로의 삶으로 돌아가려고 했던 그는 결국 이겨내지 못한 채 가족들과 이별하게 됐다. 생전 폴 칼라니티는 암 판정을 받자마자 혼자 남겨질 아내를 위해 모든 준비를 끝마쳤다. 또한 아내와의 합의를 통해 낳은 딸 케이디에게 쓴 마지막 편지 부분은 읽는 내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인생을 살면서 불치병에 걸리면 어떻게 될까라는 고민은 크게 해보지 않았다. 보통 사람들은 죽음에 관해서는 피하고 싶을 테고 나 역시 그러한 생각을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젠가 다가올 죽음 앞에서 나는 어떤 마음을 가지고 이별을 준비할지 생각해보는 것도 의미있을 것 같다. 눈 앞의 죽음에서조차 희망을 잃지 않았던 폴 칼라니티를 언젠가 또 기억하는 날이 올 때 나 역시 그와 마찬가지로 희망의 끈을 놓치 않았으면 좋겠다.


# 기억하고 싶은 구절


언어는 고작 몇 센티미터 두께의 두개골에 보호받는 우리의 뇌가 서로 교감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단어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의미가 있으며, 삶의 의미와 미덕은 우리가 맺는 인간관계의 깊이와 관련이 있다. 인생의 의미를 뒷받침하는 것은 인간의 관계적 측면, 즉 '인간의 관계성'이다. 하지만 이런 과정은 뇌와 신체 그 자체의 생리적인 명령에 따라 일어나며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열정, 갈망, 사랑 등 우리가 체험하는 삶의 언어가 신경 세포, 소화관, 심장박동의 언어와 연관되는 뭔가 복잡한 방식이 틀림없이 존재할 거라고 생각했다 - 61


의대생의 통과 의례인 시체 해부는 지극히 신성한 영역을 침범하는 작업이기도 해서, 혐오감, 흥분, 욕지기, 좌절감, 경외감 등 무수한 감정을 자아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단조로운 수업 과정의 하나가 된다. 연민과 무감각 사이에서 그때그때 감정이 교차한다. 해부실의 상황은 사회의 가장 근본적인 금기를 깨는데, 해부 도중 포름알데히드가 식욕을 강하게 자극해 부리또가 간절히 먹고 싶어지기도 한다. 정중신경을 해부하고, 골반을 톱질하여 반으로 자르고, 심장을 잘라서 여는 것으로 시체 해부 과제를 마치면 이제 무감각이 찾아온다. 이 '성스러운 침범'은 고지식한 친구, 시도 때도 없이 농담하는 친구, 그리고 나머지 학생들로 가득한 평범한 대학 강의의 성격을 띠게 된다. 시체 해부는 엄숙하고 경건한 학생들의 냉정하고 거만한 의사로 변화하는 과정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 66


시체 해부뿐 아니라 모든 의학은 신성한 영역을 침범한다. 의사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환자의 신체를 침입해 들어간다. 그리고 환자의 가장 취약하고, 가장 신성하며, 가장 은밀한 부분을 들여다본다. 그런 다음 환자를 회복시켜 세상으로 돌려보낸 뒤 다시 그에게서 빠져나온다. 신체를 물질이자 구조로 보는 것과 인간의 극심한 고통을 줄이는 일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마찬가지로 이유로 인간의 극심한 고통은 그저 하나의 교육 수단이 된다 - 73


깔끔한 의학적 도해는 지금 벌어지는 이런 상황을 여실하게 보여주지 못한다. 무자비한 자연은 인간의 출산에도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다. 출산은 앤 게디스의 사진과는 다르다. 병원에서 배우는 실무가 의과 대학원생으로서 강의실에서 받는 교육과 상당히 다르리라는 것이 점점 더 실감났다. 책을 읽고 객관식 문제에 답하는 건 행동을 취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였다. 아이의 어깨가 쉽게 나올 수 있게 머리를 신중하게 당겨야 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과 그것을 직접 실행하는 것은 다르다 - 86


삶은 너무나 짧은 '잠깐'이기에 충분히 고민할 시간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게 맡겨진 역할, 즉 겸자를 든 무덤 파는 사람으로서 죽음의 시간과 방법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일을 충실히 해내야 한다 - 90


가령 당신이나 당신의 어머니가 몇 달 더 연명하는 대가로 말을 못한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치명적인 뇌출혈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낮은 가능성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 시력 손상을 감수해야 한다면? 발작을 멈추려고 하다가 오른손을 못 쓰게 된다면? 당신의 아이가 얼마만큼 극심한 고통을 받으면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고 말하게 될까? 뇌는 우리가 겪는 세상의 경험을 중재하기 때문에, 신경성 질환에 걸려 환자와 그 가족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해야 한다. '계속 살아갈 만큼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 95


나는 분노와 슬픔 사이의 어딘가에 있었다. 이유야 어떻든 하비 부인은 수많은 서류 작업 끝에 내가 맡게 된 환자였다. 다음날 나는 그녀의 검시에 참여하여, 병리학 전문의들이 그녀를 절개하고 장기를 꺼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나는 그 장기들을 직접 만지고 세밀히 살피며 내가 그녀의 창자에 묶였던 매듭들을 확인했다. 그때부터 나는 환자를 서류처럼 대할 것이 아니라 모든 서류를 환자처럼 대하기로 결심했다 - 101


내가 이 직업을 택한 이유 중 하나는 죽음을 뒤쫓아 붙잡고, 그 정체를 드러낸 뒤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똑바로 마주보기 위해서였다. 신경외과는 뇌와 의식만큼이나 삶과 죽음과도 밀접하게 연관된 아주 매력적인 분야였다. 나는 삶과 죽음 사이의 공간에서 일생을 보낸다면 연민을 베풀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스스로의 존재도 고양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하찮은 물질주의, 쩨쩨한 자만에서 최대한 멀리 달아나 문제의 핵심, 진정으로 생사를 가르는 결정과 싸움에 뛰어들고 싶었다. 그곳에서 어떤 초월성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 105


가족이 숨을 거둔 환자를 보러 들어올 때 나는 외상외과 집중치료실을 빠져나왔다. 그때 문득 기억이 났다. 내 다이어트 콜라, 내 아이스크림 샌드위치, 그리고 외상외과 집중치료실의 찌는 듯한 열기, 응급실에는 나를 대신해줄 레지던트가 있었기에, 나는 내가 구할 수 없었던 환자 대신 아이스크림 샌드위치를 구하러 외상외과 집중치료실로 유령처럼 슬그머니 다시 들어갔다. 냉동실에 30분 정도 넣어두니 아이스크림 샌드위치는 원래대로 돌아왔다. 가족이 사망한 환자에게 작별인사를 건넬 때 나는 이에 낀 초콜릿 칩을 떼어내며 굉장히 맛있다고 생각했다. 의사로 지낸 짧은 시간 동안 도덕적으로 나아지기는커녕 퇴보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108


나는 환자의 뇌를 수술하기 전에 먼저 그의 마음을 이해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의 정체성, 가치관, 무엇이 그의 삶을 가치 있게 하는지, 또 얼마나 망가져야 삶을 마감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지, 수술에 성공하려는 헌신적인 노력에는 큰 대가가 따랐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불가피한 실패는 참기 힘든 죄책감을 안겨주었다. 이런 부담감은 의학을 신성하면서 동시에 불가능한 영역으로 만든다. 의사는 다른 사람의 십자가를 대신 지려다가 때로는 그 무게를 못 이겨 스스로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 124


생물학, 도덕, 삶, 그리고 죽음의 개별적인 가닥들이 마침내 서로 엮이기 시작하는 듯했다. 완벽한 도덕 체계는 아니더라도 일관성 있는 세계관이 잡히고 그 안에 내 자리를 잡아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긴장감 높은 분야의 의사는 삶과 정체성이 위협받고 삶이 굴절되는 가장 위급한 순간에 환자를 만나게 된다. 의사의 책무는 무엇이 환자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지 파악하고, 가능하다면 그것을 지켜주려 애쓰되 불가능하다면 평화로운 죽음을 허용해주는 것이다. 그런 책무를 감당하려면 철두철미한 책임감과 함께, 죄책감과 비난을 견디는 힘도 필요하다 - 140


희망(hope)이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영어에 등장한 건 약 1,000년 전으로, 확신과 소망을 결합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소망하는 것(삶)과 확신하는 것(죽음)은 달랐다. 그렇다면 내가 말하는 희망의 진짜 의미는 '헛된 소망을 위한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었을까? 그건 아니었다. 의학 통계는 평균 생존 기간 같은 수치를 나타낼 뿐 아니라, 신뢰 수준, 신뢰 구간, 신뢰 한계 같은 도구들을 이용해 수치에 대한 우리의 신뢰도도 측정한다. 그렇다면 '통계적으로 불가능하지만 여전히 가능성 있는 결과, 즉 95퍼센트로 측정된 신뢰 구간을 극복하고 생존할 가능성을 남겨두는 것', 이것이 내게는 희망이란 것일까? 우리는 과연 생존 곡선을 '패배', '비관적', '현실적', '희망적', '망상' 등의 영역으로 나눌 수 있을까? 숫자는 그저 숫자가 아니던가? 우리는 모든 환자의 생존 확률이 평균 이상이라는 '희망'을 기꺼이 받아들이지 않았던가? - 162


우리가 그토록 맹렬히 저항했지만, 암은 결국 인생 계획을 바꿔놓았다. 지난 몇 달 동안 나는 암 진단을 받기 전의 생활 패턴으로 돌아가려고 발버둥을 치면서, 암이 내 인생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애써 부정했다. 승리감을 느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게의 집게발에 붙잡힌 기분이 들었다. 암의 저주에 걸린 나는 다가오는 죽음을 무시하지도 거기에 매이지도 못하는 기이하고도 불편한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암은 물러나 있을 때조차 긴 그림자를 드리웠다 - 196


의과 대학원생 시절에 있었던 일이 문득 생각났다. 한 환자가 내게 말하기를, 의사를 만나러 갈 때 항상 가장 비싼 양말을 신는다고 했다. 신발도 못 신고 환자복만 걸치고 있으니 양말이라도 제대로 된 걸 신어야 의사가 자기를 중요한 사람으로 인식하고 존중해준다는 것이었다. 정말 그게 문제인건가? 몇 년 동안 훔쳐 써왔던 병원 지급 양말을 신고 있는 게? - 220


내 요구를 들어준다는 건 그가 해야 할 일이 더 늘어난다는 뜻이었다. 그것도 난처하게 상사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실수를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야간 근무 중인 그로서는 내키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레지던트 교육 과정은 대다수 프로그램이 교대 근무를 채택하도록 강제하고 있었다. 교대 근무를 하다 보면 책임을 다른 레지던트에게 은근히 떠넘겨버리는 교활한 요령도 배우게 된다. 몇 시간 더 뒤로 미룰 수 있다면 그건 다른 사람의 책임이 된다 - 221


시간은 이제 나에게 양날의 검과도 같다. 지난번에 병세가 악화되어 심하게 축난 몸 상태는 점점 나아지고 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암이 재발하게 될 테고, 그러다 결국 죽음에 이를 것이다. 죽음은 예상보다 느리게 올지도 모르지만, 원하는 것보다는 분명 빠르게 닥쳐올 것이다. 이런 자각에 대해 두 가지 반응이 있을 수 있다. 가장 명백한 반응은 정신없이 움직이려는 충동일 것이다. 즉, 여행도 하고, 근사한 식사도 하고, 여태껏 접어둔 많은 소망을 성취하면서 '삶을 만끽하는' 것이다. 하지만 암은 무자비하게도 시간뿐만 아니라 기력까지 빼앗아버려 하루에 할 수 있는 일의 양이 크게 줄었다. 마치 경주하다가 지친 토끼가 된 것 같은 기분이다. 설사 기력이 있더라도 나는 거북이의 방식이 더 마음에 든다. 뚜벅뚜벅 앞으로 나아가고 깊이 명상하는 방식 말이다. 물론 그냥 어떻게든 버티는 날들도 있다 - 230


오늘과 내일을 거의 구분할 수 없게 되자, 시간이 정지된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영어에서 우리는 시간(time)이라는 단어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사용한다. "지금 시각은 두 시 사십오 분이다"라고 말할 수도 있고, "나는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라고 말할 수도 있다. 요즘에는 전자보다는 후자처럼 느껴진다. 나는 무기력해지고, 더 너그러워진 것 같다. 수술대 위의 환자에 집중하던 외과의 시절에, 시곗바늘이 제멋대로 움직인다는 생각은 했었지만 의미 없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지금이 몇 시인지,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이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의료 훈련은 철저하게 미래 지향적이며, 나중에 큰 보상을 위해 현재의 유혹을 참는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 231


네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 세상에 어떤 의미 있는 일을 했는지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바라건대 네가 죽어가는 아빠의 나날을 충만한 기쁨으로 채워젔음을 빼놓지 말았으면 좋겠구나. 아빠가 평생 느껴보지 못한 기쁨이였고, 그로 인해 아빠는 이제 더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만족하며 편히 쉴 수 있게 되었단다. 지금 이 순간, 그건 내게 정말로 엄청난 일이란다 - 234


                                                                                                 -    설이 오빠의 서재에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