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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나니

배남준 2017. 1. 10. 13:30

                  [오늘의 설교]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나니 기사의 사진

                   -도지원 목사-


바울은 복음을 자랑한다고 말하는 대신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이렇게 부정적 표현을 쓴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복음에는 복음을 부끄러워하게 만드는 요소가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와 갈라디아서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고전 1:18, 21, 23 ; 2:14).

“형제들아 내가 지금까지 할례를 전하면 어찌하여 지금까지 핍박을 받으리요 그리하였으면 십자가의 거치는 것이 그쳤으리니”(갈 5:11).  

세상의 눈에는 십자가 복음이 미련한 것이고 거리끼는 것 또는 거치는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바울은 이 때문에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러면 바울은 왜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일까요. 복음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여기서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제시됩니다. 이것은 바울이 고린도전서 1장 18절에서 말한 것과 같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십자가의 도’는 복음을 말합니다. 그 이유는 바로 앞에서 이렇게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주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니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전 1:17) 복음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전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십자가의 도, 즉 복음은 구원을 얻는 자에게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런데 이 능력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나타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 1:22∼24). 

또한 그는 자신이 어떻게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했는지에 대해서도 말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너희 믿음이…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 2:1, 2, 5) 

이처럼 바울이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나타난 능력을 말합니다. 바울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복음이 이러한 능력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마르틴 루터 역시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을 알았습니다. 종교개혁의 핵심은 이러한 복음의 재발견에 있습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우리는 복음이 무엇인지를 다시 알아야 합니다. 복음은 이념과 사상, 철학이나 교훈이 아닙니다. 복음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이나 종교개혁가들처럼 복음에 대한 확신과 기쁨과 자랑을 가진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그것이 종교개혁 정신을 되살리는 일입니다. 

도지원 목사(서울 예수비전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