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간증

간암말기 죽음 직전에서 기적의 치유 - 나겸일 목사

배남준 2016. 9. 29. 06:21


            나겸일 목사 원로 공로목사 추대… 1월 29일 주안장로교회 부평성전서

                    -나겸일 목사 -

[펌]


간암말기 치유받은 나겸일 목사님 간증

 

주안장로교회는 현재 인천에서 10만명이 모이는 교회이다.

이 교회는 200명의 성도로 시작한 교회이다.

열심히 목회했다. 새벽부터 밤까지 쉬지 않고 열심히 목회했다.

성도들이 많이 모이고 교회도 2천석규모로 크게 지었다.

40일 금식기도도 했다.

예배 인도도 부목사들이 있었지만 2,3부를 직접 인도 했다.

교회는 금새 만 명으로 성장했다.

이렇게 하다가 쓰러졌다. 금식도 무리였고, 활동도 무리였다.

병원에 가보니까 간암 말기였다. 성모병원에 가니까 끝났다고 했다. 지금부터(2011년) 24년전 이야기이다.

장로와 사모가 "기왕 끝난지는 알지만, 세브란스병원 한 번만 더 갑시다"고 해서 갔다.

월요일에 입원해서 금요일날 결과 나오는데 "끝났다. 더 이상 못고친다"고

주치의 김병수 박사"이 정도면 사흘이상 못삽니다"라고 말했다.

배에 복수가 차서 만삭된 모습이었고 얼굴도 까맣다.

복수차고 얼굴이 까만 사람을 보았지만 그렇게 까만 사람을 본 사람이 없었다. 시체도 그렇게 까맜지 않았다.

 

하나님께 기도했다.

‘이 생명 받아주시고 두고가는 우리 두 딸, 우리 아내, 우리 교회 부탁합니다.

평소에 기도했던 민족복음화, 세계선교, 다른 종족들도 부탁합니다.

제 영혼도 부탁드립니다’하고 기도 마쳤는데, 가족들은 장례 준비를 하는 것이다.

날마다 기도하고 회개하고 하면서 기도하는데 하루는 10살, 7살 된 딸이 왔다.

와서 울면서 ‘아빠 죽지마, 아빠 죽지마 아빠 죽으면 우리 다 못살아’ 하면서 우는데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이다.

그렇잖아도 가슴에 가책이 있었다.

젊은 아내, 어린 자식을 두고 가면 길거리에 나가지 않을까하는 가책이 있던 차에

아이들이 와서 우니까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통장에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 아내가 생활비 받으면 바로바로 다 썼다.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도와주고 장학금주고, 쌀 없으면 쌀 팔아다 주고 해서 월말 되면 다 떨어진다.

이렇게 생활했는데 '내가 죽으면 우리 가족은 어떻게 될까' 내가 죽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죽으면 열심히 일하다가 죽는 것을 보고 ‘봐라 열심히 뛰어봤자 별수 없다’라고 할 것 아니냐..

'금식기도도 하고 열심히 하니까 교회가 성장했고 다시 살아났다는 간증이 생겨야

수많은 복음이 증거될텐데' 하고 기도를 다시 시작했다.

 

간암은 못고치는 줄 알지만 "하나님은 세상도 창조했고, 인간도 창조했고, 간도 창조하셨는데

하나님이 붙드시면 간암이 나을 줄 믿습니다"하고 말씀을 붙들기 시작했다.

(야고보서 5:15절)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아멘

'믿습니다, 믿습니다. 고쳐주실 줄 믿습니다. 아멘,’

그런데 ‘아멘’하고 나도 사실은 내 믿음이 조금 밖에 안 된다.

90% 이상은 내가 못산다고 생각하지만 말씀을 믿을려고 붙들고 애를 쓰는 것이다.

‘주여 믿습니다. 믿습니다. 말씀대로 될 줄로 믿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을 줄로 믿습니다’

그러면서도 믿을려고 애쓴 것 뿐이지 믿음이 더 이상 커지지 않는다.

 

그래도 또 기도하고, 아멘하고, 또 감사하고 또 기도하고.. 계속 나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믿음의 행렬인데 이런 과정도 있어야 한다.

처음부터 큰 믿음이 확 생기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몸부림치며 가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믿음이 좀 커졌다가, 또 작아졌다가 또 올라갔다가 내려갔다가 계속 그렇게 된다.

 

그러다가 이제 거의 숨이 끝날 때 쯤 되었다.

기력이 약해지고, 호흡도 약해지고, 의식도 가물가물하고, 사흘 째 되니까 거의 죽었다.

그러자 의사들이 아내에게 "30분이면 끝납니다"라고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 소리가 다 들린다. 기운이 다 빠졌는데 귀는 들렸다. 눈꺼풀도 움직이지 못하는데 들렸다.

그러면서 아내가 울면서 자꾸 전화한다.

부목사님들에게 장로님, 친정, 시집식구들에게 '목사님 30분 내에 돌아가십니다'라고 했다. 다 들렸다...

 

그리고 주일날 아침이 되었는데 교회에서 전화가 왔다.

곧 돌아가신다고 했는데 ‘목사님 어떠시냐’고... 그러자 아내가 ‘아직 살았습니다’라고 했다.

지금도 아내에게 말한다.

"오직 믿음으로" 라고 해야지 ‘아직’이 뭐냐?고 하니까 자기는 안 했다고 했다.

그래서 그날 전화한 것을 이렇게, 저렇게 누구에게 전화했지?라고 말하니까

‘어 그것을 어떻게 알았어요?’라고 했다.

그 말을 다 듣더니 그러면 혹시 그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무의식 중에 자기도 모르게 한 것이다.

 

그날 교회에서 발표했다. ‘오늘 목사님 가시는 마지막입니다. 기도합시다’

교인들이 1부에서 5부까지 전부 기도하고 또 저녁이 7시예배인데 전 교인이 거의 다 왔다.

꽉찼다. 비디오실까지 다 찼다. 목사가 걱정이 되어서 다 나온 것이다.

하나님은 또 내 믿음을 보시고 기도를 들으시기를 원하셨지만, 우리 교인들의 기도와 믿음도 듣기를 원하셨던 것 같다.

 

그리고 주일 지나고 월요일 새벽 2시에 눈을 떴다.

그런데 배가 부글부를 끓었다. 의식이 돌아오면서 배가 끓는 것이다.

사모가 ‘목사님, 저 아시겠어요?’  ‘응, 알아’

권사님이 또 ‘저 아시겠어요?'   '응 안다고..’

그리고 조금 있으니 배가 부글부글 끓면서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대변이 마려웠다. 그래서 손으로 대변통을 가리켰더니 눈치채고 갔다놨다.

부드득 하더니 대변통 가득히 핏덩이가 나왔다.

 

그러자 의식 속에 아픔이 다 끝난 것을 느끼고 병이 나은것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배가 시원한 기운이 쫙 돌아왔다.

대변이 빠져나온 것이 시원한 것이 아니라 감각 자체가 시원한 것이 느껴졌다.

그러면서 내 병이 나았다는 확신이 들면서 잠이 들어버렸다.

혼수 상태가 아니라 정말 잠이었다.

두 시간 자고 또 한 대야 나왔다. 세 시간 자고 또 한 대야 나왔다.

그렇게 나흘동안 하루에 세 대야씩 12대야가 나왔다.

 

열달 쯤 된 배가 조금씩 조금씩 들어가고, 들어가고, 그러다가 닷새 되어서 미음을 조금 먹었다.

그 때부터 살아나가 시작했다.

그랬더니 그 의사 김경수 박사님이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인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라고 말했다.

자기가 의사 생활하면서 부분적인 기적은 봤는데, 이렇게 전체적인 기적은 처음 봤다고 했다.

"20년 동안 병원에서 주치의, 교수를 했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라면서 이것은 100% 기적입니다.

100% 못 살 사람이 살아났습니다. 기적입니다"라고 놀랐다.

그 말 듣고 퇴원했는데 벌써 24년 되었다.

그 다음부터 교회가 기적도 많이 나타나고 또 거기서 살아나니까 병자도 많이 고치게 만들었다.

또 교회도 많이 부흥되게 만들고 또 내가 세상을 보는 눈이 많이 달라졌다.

옛날에는 부자가 가난한 사람보다 낫게 보였다. 지금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가난한 자가 오히려 나을 수 있다. 지금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하늘나라의 큰 자니까..  지금은 부자도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죽음에 한번 갔다오면 보는 눈이 달라진다.

그러면서 성경이 마음 속에 밀려오고 하나님의 음성이 느껴진다.

아픈 사람들을 보면 내 가슴이 아픈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을 보면 내 호주머니를 터는 것이다.

아프기 전보다 지금은 주의 사랑이 몇 십배나 더 커졌다.

 

그래서 기적이 나타나는 것같다.

부모 잃은 가정에서, 자식 잃은 가정에서 찬송 부르면 눈물이 난다. 옛날하고 다르다.

그 슬픔과 고통이 얼마나 큰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말씀을 믿으면 말씀이 역사한다.  믿고 기도하면 지금도 말씀은 역사하신다.

그리고 설교하고 전도하면 교인들이 바꿔지기 시작한다.

그 후로 24년이 된 지금은 10만명의 교인이 되게 하셨다.

죽음에서 건져주시더니, 그 당시에는 고통이 너무 심하더니 지금은 이렇게 사람을 사용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