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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담을 쌓고 살던 노인 - 전재산 기부하고 떠나다

배남준 2016. 7. 18. 07:00



정신장애 앓아 임대 아파트서 홀로 지낸 70代, 죽기前 유언
"사회가 나를평생 도와줘… 모은 3800만원 사회 돌려달라"


지난 1월 18일 서울 중랑구 서울의료원에서 한 노인이 숨졌다. 강남구 수서1단지 영구임대아파트에 홀로 살던 전용권(71)씨였다. 뇌경색으로 입원한 지 두 달 만이었다. 외동아들로 태어나 평생 결혼하지 않았기에 그의 마지막을 지킨 건 유일한 친척인 이종사촌 형 김덕수(78)씨였다. 김씨는 홀로 전씨의 장례를 치렀다.

넉 달쯤 지난 5월 30일 김씨는 강남구 일원1동 주민센터를 찾아가 직원에게 1500만원짜리 수표를 내밀었다. 깜짝 놀라는 직원에게 김씨는 "사촌 동생이 생전에 조금씩 모아둔 돈"이라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써 달라'는 유언에 따라 기부하러 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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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씨는 1급 정신장애인이었다. 스무 살 때부터 대인기피증을 앓았다. 망상과 우울증도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직장 생활을 몇 달 했던 게 마지막 사회 활동이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한복 바느질로 생계를 잇던 어머니에게 의지해 살았지만, 10여년 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로는 집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전씨는 평일 오전마다 집에 와서 밥을 지어주고 빨래와 청소를 해주는 재가(在家)관리사들하고만 대화를 나눴다. 전씨에겐 58㎡(17.5평)짜리 집이 세상의 전부였다. 아침에는 전날 먹은 정신과 약 기운에 취해 누워 있었다. 재가관리사는 오전 10시쯤 찾아와 한 시간 동안 집안일을 해줬다. 관리사가 돌아간 뒤에는 새벽까지 라디오를 들었다.

전씨에게는 기초생활수급비와 장애인연금, 기초노령연금으로 다달이 70여만원이 나왔다. 그러나 전씨는 아파트 임차료와 식비, 담뱃값으로 나가는 20여만원 외에는 돈을 일절 쓰지 않았다. 옷과 이불은 새로 사지 않아서 모두 해지거나 구멍이 났다. 재가관리사가 "그렇게 돈 모아서 어디에 쓰시려고 그러느냐"고 물으면 전씨는 답은 않고 "죽을 때까지 이 돈 다 쥐고 있어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전씨는 작년 11월 뇌경색으로 병원에 입원한 뒤에야 유일한 친척에 게 속내를 털어놓았다. "평생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정신병만 앓았는데, 이런 나를 사회가 도와줘 살 수 있었다"며 "돈을 모아뒀으니 모두 사회에 돌려 달라"는 게 그의 유언이었다. 김씨가 확인한 전씨 통장엔 3800여만원이 들어 있었다. 김씨는 주민센터에 기부하고 남은 2300여만원도 사촌 동생의 뜻에 따라 병원과 아동 구호 단체 등에 전달하기로 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