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과 펜으로 살려낸 남미의 자유로운 영혼 | ||||||||
'김병종의 화첩기행(1∼4권)'은 갇히지 않았으되 절제하는 글이다. 그가 이번에 '김병종의 라틴화첩기행'을 냈다.
책을 펼치면 멕시코 벽화의 기수 디에고 리베라, 그의 연인이자 '누워서' 역동적 삶을 살았던 프리다 칼로,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 쿠바의 연인 체 게바라, 헤밍웨이와 20세기 문학의 신화 보르헤스를 김병종의 특별한 눈을 통해 만날 수 있다.
김병종은 문학청년이었다. 젊은 날 신춘문예에 두 번 당선됐다. 그만큼 그의 글과 그림은 재미와 깊이가 남다르다. '화첩기행'으로 그를 기억하고 있었는데 7,8년쯤 전 겨울 그가 영국 소설가 조지 기싱이 쓴 '기싱의 고백'을 어떤 신문에 소개했다. 그 책은 지금 손때가 묻어 거뭇하다. 이 책 '김병종의 라틴화첩기행' 역시 다르지 않을 것이다.
프리다 칼로. 그녀는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앓아 불구였다. 거기에 더해 18세 때에 타고 가던 버스와 전차가 충돌했고 밀려들어온 철제가 골반과 자궁을 관통했다. 그녀는 침대에 누워 지냈다. 어머니가 천장에 거울을 달아주었고 그녀는 매일 자신의 아픈 몸을 보았다. 그녀가 자화상을 많이 그린 이유이기도 하다. 그녀가 남긴 말은 아직도 아리다.
"내게 위안이 있다면 고통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프리다는 완전한 치유를 원치 않았다. 철심을 빼고 걷고 싶다고 투정 부리지 않았다. 화가로서 명성을 원하지 않았다. 그녀가 원했던 것은 '고통에 익숙해지는 것'이었다. 더불어 평생의 연인이자 멕시코 국민화가 디에고 리베라가 곁에 있어주기를 바랐다. 소아마비와 교통사고는 그녀의 육체에 상처를 주었고, 디에고와 이별은 그녀의 영혼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디에고 리베라. 프리다의 연인, 멕시코 국민화가, 뭇 여성의 사랑을 받았던 남자다. 그가 무척 미남인 줄 알았다. 프리다가 그린 디에고는 틀림없이 멋쟁이였으니까. 그러나 김병종은 냉정하게 본다. '두터운 살집…. 결코 잘 생겼다고 할 수 없는 저 남자의 어떤 면이 그토록 많은 사람들과 뭇 여인들을 사로잡았을까.' 뒤이어 첨부한 디에고의 자화상은 프리다가 그렸던 것보다 확실히 덜 멋있다. 쿠바의 연인, 세계의 혁명가 체 게바라. 김병종의 눈에 체는 어떨까?
'음영 짙은 서늘한 눈매, 시가를 꼬나 문 모습, 낭만적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 권총 차고 무게 잔뜩 잡은 얼굴을 보고 김병종은 낭만을 말한다. 그는 체의 군복과 늘 부여잡고 다니는 총을 과격과 혁명의 상징으로 보는 대신 '낭만의 소도구'로 본다. 체 게바라는 젊어서 죽었다.(39세). 그래서 늙지 않는다. 또한 그는 죽지 않는다. 김병종의 화첩기행은 '체가 쿠바의 거리마다 광장마다 동상으로 서서 그윽한 눈길로 사람을 본다.' 고 전한다. 서점마다 체의 책과 사진이 넘쳐난다. 작가는 체를 늙지 않는 연인이며 임기 없는 대통령이라고 말한다.
놓친 물고기에 대해 허풍치던 헤밍웨이. 아무도 본 사람이 없으니 제 마음대로 덩치를 키웠을지도 모른다. 헤밍웨이는 네 번 결혼했다. 하지만 열정의 시간이 지나자 아내들은 그의 음주벽과 무질서한 생활에 진저리치며 떠나갔다. 헤밍웨이는 쿠바에서 좋은 시절을 살았다. 노벨문학상과 퓰리처상을 받으며 생애 가장 화려하고 빛나는 날들을 쿠바에서 보냈다. 그러나 그의 불빛은 이제 희미하다. '헤밍웨이가 살았던 곳이라기에는 이제 너무 초라하다. 파삭 주저앉을 듯 노후된 집은 창문이 깨지고 회벽이 군데군데 떨어져 나갔다. 비가 오면 지붕과 벽에 물이 샌다니 주인 떠난 집의 쓸쓸함은 쳐다보기가 민망할 정도다.'
'아바나 거리를 10분만 걷는다면 누구나 곤궁의 기미를 읽게 된다. 아무리 원색 판넬로 붙여놓아도 어둡고 눅눅한 안쪽으로부터 스며 나오는 가난의 냄새만은 가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리는 활기에 차 있고, 사람들의 표정은 밝다. 그 뿐인가 춤추고 노래한다. ….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본문 104p, 105p)
김병종은 양립하기 어려운 쿠바의 '가난과 행복'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인도라면 종교의 힘이라고 생각할 텐데 그것도 아니다.' 김병종이 그 말을 꺼내지 않았으면 생각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굳이 말을 꺼냈으니 책에 답이 있겠지, 싶었다. 책에 답은 없었다. 전작 '화첩기행'도 그랬지만 김병종은 이번에도 대답대신 질문을 던진다. '독자제위께서 답을 생각하시라.' 얼마나 듣기 좋은가…. '라틴화첩기행'에는 80여 편의 매혹적인 그림과 유명 인물뿐만 아니라 라틴의 열정, 문화, 역사가 있다. 더불어 그 속에는 라틴만큼이나 궁금한 김병종이 있다. |
'생활 > 감동글,영상,사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메이징 그레이스 곡에 한(恨)맺힌 체로키 인디언의 사연 (0) | 2016.07.19 |
---|---|
세상과 담을 쌓고 살던 노인 - 전재산 기부하고 떠나다 (0) | 2016.07.18 |
녹원의 천사 - 엘리자베스 테일러 12세 데뷰 (0) | 2016.07.11 |
강아지 똥, 몽실언니 아동문학가 - 하나님의 사람 -권정생님 (0) | 2016.07.09 |
하버드대 최연소 교수 조세핀 김 - 어머니의 기도와 기르침 (0) | 2016.06.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