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목사의 딸과 루터교 목사의 딸이 유럽의 미래를 짊어졌다.’
- 메이는 지리학 전공 메르켈은 양자물리학 박사
13일(현지시간) 영국 총리로 취임한 테레사 메이(59)와 앙겔라 메르켈(61) 독일 총리가 짊어진 역사적 과업과 그들의 신앙적 배경을 요약한 표현이다. 이들 총리는 이른바 ‘PK(Pastor’s Kid)’, 목회자의 자녀로서 엄격한 신앙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는 점에서 ‘기독교적 정치’를 실현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
영국 언론 ‘가디언’은 “이들 여성 지도자는 모두 교회 성직자들의 딸들이라는 공통점을 가진다”고 보도하고, “루터교 목회자의 아들이었으나 ‘신은 죽었다’고 선언했던 니체 같은 ‘반역 사례’도 있지만 목회자 자녀가 정치가일 때는 특별한 무늬가 있다. 세심하며 떠벌리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특징을 갖는다. 메이 총리는 이러한 무늬를 비롯해, ‘브렉시트’라는 괴물을 정면으로 맞서 잘 조준된 기도까지 모든 것을 필요로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메이 총리는 런던 남동쪽 이스트본 석세스에서 태어나 옥스퍼드셔 주의 시골 마을인 위틀리에서 자랐다. 부친은 영국성공회의 휴버트 브레시어 목사로, 교구를 담당하면서 이스트본병원의 원목으로 활동했다. 메이 총리는 목회자의 딸로서 대중 앞에 항상 노출돼 있었다. 부친은 엄격한 분위기 속에 신앙교육을 시켰으며 도덕적 나침반으로서 청교도적 신앙을 가르쳤던 것으로 알려졌다. 메이 총리의 지인들은 부친의 신앙적 영향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옥스퍼드대(지리학) 졸업 후 1977년 영국중앙은행, 85년부터 영국지급관리협회에 근무하면서 중산층으로 살았지만 삶은 녹록지 않았다. 25세 때인 81년, 부친이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고 모친도 이듬해 다발성 경화증으로 사망했다. 결혼은 했지만 아이가 없었다. 이러한 고난은 메이 총리를 내적으로 단단하게 만들었고 이전 총리와는 다른 정치가의 면모를 갖게 했다고 영국 언론들은 분석했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문제를 놓고 메이 총리와 협상을 벌여야 하는 메르켈 총리의 부친은 루터교회 목회자 호르스트 카스너 목사다. 함부르크에서 신학을 공부한 그는 고향에서 목회하기 위해 옛 동독 브란덴부르크 주의 작은 마을인 템플린으로 이주했다. 카스너 목사는 템플린의 목회자 교육기관인 설교 아카데미 원장으로도 재직했는데, 목사관에는 유명 신학자들의 왕래가 잦았고 다양한 신학서적들이 있었다. 어린 메르켈은 이 같은 환경에서 성장하며 부친으로부터 신앙과 함께 이성적이며 냉철한 면을 많이 물려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메르켈은 아버지의 조언에 따라 기술고교에 진학했고, 라이프치히대에서는 물리학을 전공했다. 석박사 학위를 받고 연구원으로 지내다 독일 통일 후엔 기독교민주당 당원으로 활동했다. 2000년 기독민주당 최초의 여성의장을 맡았고, 헬무트 콜 총리의 총애 속에 여성부 장관과 환경부 장관을 지낸 뒤 2005년 독일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됐다.
정치인으로서 메르켈 총리는 자신의 신앙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는 않는 편이다. 이는 메이 총리도 비슷하다. 그러나 정책 수행에 있어서 둘 다 신중한 실용주의 노선을 구가했다. 이는 기독교적 신앙과 서민적 출신 배경이 빚어낸 경륜 덕일 수 있다. 메이 총리가 최장수 내무부 장관을 역임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메르켈 총리는 현실주의자이며 검소하고 소탈하다. 공약도 묵묵히 추진하면서 시간과 노력을 쏟고 있다. 메이 총리는 이민문제와 안보에 대해선 강경한 편이지만, 인신매매 등에 대해선 지속적인 반대 캠페인을 벌여왔다.
메이 총리는 취임연설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소수 특권층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한 영국을 만들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이끄는 정부의 사명입니다. 우리는 함께 더 나은 영국을 만들어 갈 것입니다.” 브렉시트 결정 직후인 지난달 24일 영국성공회 수장들이 주문한 통합의 요청과도 일치하는 부분이다.
대한성공회 김근상 주교는 14일 “메이 총리의 신앙이 총리직 수행에 전반적으로 영향을 끼칠 것이라 기대한다”며 “유럽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브렉시트의 대안을 모색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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