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높은 곳을
향하여
존 필립스
CHAPTER 2
천국에 들어 갈 수 있는 확신
Being Sure of Heaven
별로 많은 지식을 갖지 못한 한 노부인이 교회 집회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날 밤, 잠자리에 든 후, 그녀의 마음에 갑자기 의심이 밀물처럼 몰려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정말, 내가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이 분명한가?" "이와 같은 나의 경험은 진실로 믿을 수 있는 것일까?"
진실로 구원은 우리 자신 스스로가 확신할 수 있는 분명한 체험일까요? 실제로 이 노부인의 마음 가운데 일기 시작한 의심들은 바로 사탄이 쏘아대는 것들이었습니다. 순간 그녀는 성경을 열고 요한복음 3장 16절을 손가락으로 짚었습니다. 그리고 침대 천을 제키며 그밑에 숨어 있는 악마에게 그 성경 구절을 들이 대면서 "자, 여기다. 네 자신이 이것을 똑똑히 읽어 보아라"라고 소리쳤습니다. 이 노부인이 취한 행동은 참으로 현명한 방법이었습니다. 구원의 확신은 다음의 세 가지 진리에 근거할 때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함 (Besides in the Word of God)
그리스도의 사역을 의지함 (Rests on the work of Christ)
성령님의 증거를 받아드림 (Results from the witness of the Spirit)
본과에서는 구원의 확신에 관한 위의 세 가지 기본적인 진리들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보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The Word of God)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롬 10:17) 구원의 확신에 대한 모든 의문들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도구는 바로 성경말씀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사탄이 이브를 유혹할 때, 사탄은 제일 먼저 그녀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해제시켰습니다. 이브는 자신을 꾀는 사탄에게 반드시 이렇게 말해야 했습니다.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느니라." 그렇게 함으로써 그녀는 분명하게 사탄을 물리쳐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렇게 하는 대신에 자신의 합리적인 생각으로 사탄의 공격을 받아넘겨 보려고 하였습니다(창 3:1-3).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구원에 대한 의심에 빠지게 되는 가장 큰 원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붙잡는 대신 사탄에 의해 그 마음이 해이해진 까닭입니다.
1. 성경의 근본 저자 (The Authorship of the Bible)
만일 우리가 성경의 근본 저자에 대하여 의문을 가진다면 결코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없습니다. 성경의 궁극적인 저자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의 심령과 의지와 양심에 그의 절대적인 권위로 말씀하십니다.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벧후 1:21).
2. 성경의 절대 무오성 (The Accuracy of the Bible)
만일 성경의 절대 무오성을 의심하게 되면 결코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없습니다. 성경은 가장 오랜 세월 동안 그 원본의 내용을 유지하며 지켜져 내려오는 유일한 책입니다. 그리고 한 권으로 된 책이 아니라 크고 작은 여러 책들을 모은 방대한 책입니다. 그 내용은 구약 39권, 신약 27권 도합 총 66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책이면서도 시대를 초월하여 우리 인류 역사에 가장 크고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친 유일한 책입니다. 성경은 그 원본이 정확하며, 인간의 지혜와 명철도 초월하는 확고하고 절대적인 진리라는 점에 있습니다(고전 1:18-31).
성경에 오류와 모순이 있으리라고 가정하는 회의론자들의 끊임없는 공격이 있었으나 끈질긴 조사를 통하여 그와 같은 오해는 사라졌습니다. 저명한 학자 웨스트콧(Westcott)과 홀트(Hort)는 신약 성경에 관하여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신약성경에 사용된 낱말들 중에서 의문이 제기되는 낱말들의 비율은 사실상 무시할만하다. 실질적 변이로 볼 수 있는 것들은 전체 변이의 적은 분량에 불과하며, 전체 성경 원본의 1천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적어서 문제가 될 만한 여지가 없다" 또 다른 저명한 학자 역시 "신약 성경 사본들 간의 미세한 변이는 성경 전체의 풍부한 뒷받침으로 말미암아 의심의 여지 없이 단 하나의 믿음의 신조, 신앙적 교훈에 하등의 영향도 미칠 수 없다"고 단언하였습니다.
성경의 무오성에 대해서 우리 주 예수님도 증언하셨습니다. 그는 항상 성경을 통하여 우리를 감화시키셨고, 성경을 인용하셨으며, 성경의 권위를 확증하셨고, 친히 그 교훈을 따르셨습니다. 그는 "성경은 폐하지 못한다"(요한 10:35)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원의 확신이 흔들릴 때 오직 우리는 성경으로 되돌아가서 하나님께서 친히 성경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을 보고, 그 교훈 안에 거해야 할 것입니다.
3. 성경 말씀의 신뢰성 (The Acceptability of the Bible)
만일 성경 말씀에 대한 확실한 신뢰가 없다면 궁극적으로 우리는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없습니다. 성경의 교리나 명령은 종종 우리 자신의 본성적인 욕구나 인간적 지혜와 충돌합니다. 우리는 이미 배워서 알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을 무시하거나 부정하게 될 때 믿음의 확신을 가질 수 없습니다. 모든 성경은 오직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고, 뿐만 아니라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합니다. 그것의 궁극적 목표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 (딤후 3;16-17)에 있습니다.
구원의 확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마음으로 믿고 받아들임으로써 얻게 됩니다. 사도 요한은 "만일 우리가 사람의 증언을 받을 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요한일서 5:9)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 자신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터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요한 10:27-29).
그 외에도 구원의 확신에 도움을 주는 말씀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경 속에서 일부 난해한 구절들을 발견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하나님께서 거듭난 자들에게 주신 새 생명(eternal life)은 세상의 물질처럼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영원하신 우리 주 예수께로부터 온 불변의 것입니다. 언젠가 변하고 끝나는 것이라면 영생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듭난 자들에게 이러한 새 생명을 선물로 주십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들은 자신이 이러한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확신을 가진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은사(선물)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 6:23).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롬 11:29)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한 손으로 주시고 다른 손으로 빼앗아 가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로마서 8장은 구원의 확신을 위한 말씀 중의 하나입니다. 그 말씀은 "정죄함이 없다"로 시작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다시 한번 읽고, 묵상하고, 암기하면 많은 유익을 얻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역 (The Work of Christ)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6).
이 구절은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사역을 바라보게 하여 우리를 참된 구원으로 이끌어 주는 기쁜 소식(복음- Good news, Gospel)입니다.
1. 죄의 형벌로부터의 구원 (Salvation from Sin's Penalty)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하여 우리를 죄의 형벌로부터 구원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고전 15:3)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약 성경의 수많은 희생 제물들은 그리스도의 죽음에 관한 놀라운 예표입니다. 이들 희생 제물은 구약시대에 하나님에 의해 명해졌습니다. 유대인들은 속죄나 혹은 예배를 원할 때 하나님의 제단 앞으로 희생 제물을 가져왔습니다. 특별히 번제(burnt offerring)와 속죄제(sin offerring)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잘 예표해 줍니다. 이와같은 제사들에 관해서는 레위기 1장과 4장에서 읽어볼 수 있습니다. 번제나 속죄의 제물들을 가져올 때, 죄인은 그가 드리는 희생 동물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안수함으로써 자신의 죄를 위한 제물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상징적 행위들은 이제 끝이 났습니다. 속죄제는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예표하였고 번제는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의 상징이었습니다. 속죄제는 죄인을 위하여 준비된 하나님의 예물인 반면, 번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 위한 것입니다. 속죄제는 죄인의 모든 죄가 대속 제물인 동물에게로 전가되는 것을 나타내며, 번제는 대속물의 의가 죄인에게로 전가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 두 가지 제물들은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대속자와 구주로 영접하는 순간 그에게 주어지는 구원의 완전성과 확실성을 예시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희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후 5:20-21).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죄의 형벌로부터 우리를 완전히 구원해 주셨습니다.
2. 죄의 권능으로부터의 구원 (Salvation from Sin's Power)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 믿는 우리를 죄의 권능으로부터 구원해 주셨습니다. 주 예수께서는 "거룩하신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 되셨습니다"(롬 1:4).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장사 지낸 바 되었고,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연합된 그리스도인들은 사망을 이기신 우리 주 에수 그리스도의 승리의 생명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주장하는 죄의 권능까지도 이길 수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진실로 살아계십니다. 이는 기독교가 내세우는 단순한 신화나 무미건조한 종교적 교리에 불과한 것이 아닙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살아계심으로 지금도 우리를 위해 중보의 기도를 하고 계십니다. "예수는 영원히 계심으로 그 제사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히 7:24-25).
우리는 구원함을 받은 후에라도 우리 마음 속에 죄와 허물을 깨닫게 될 때 그에게로 나아가 고백해야만 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한1서 1:9, 2:1).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살아계심으로 우리 안에 지금 함께 계십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태 28:18,20). 이 세상 것들은 그 어떤 것도 우리가 예수님께로 가는 길을 막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어떠한 경우라도 항상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직접 나아갈 수 있는 것은 그가 곧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는 살아계셔서 인격적으로 우리 속에 함께 거하십니다. 성부와 성자께서 신비스러운 관계로 영원히 함께 하심 같이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 믿는 자들과 함께하신다는 사실은 정말 감격적인 일입니다. 예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요한 14:11,20).
3. 죄의 존재로부터의 구원 (Salvation from Sin's Presence)
또한 그리스도께서는 장차 이 세상에 다시 오셔서 죄의 존재로부터 우리를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천국은 준비된 백성들을 위해 예비 된 곳입니다. 그 곳은 현재에도 준비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라" (요한 14:2)고 말씀하셨습니다. 즐겁거나 슬프거나, 행복하거나 불행하거나, 믿는 자들이 이 세상의 삶을 통해 체험하는 모든 경험들은 장차 하늘나라의 기쁨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어 주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물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을 때, 하늘나라는 영구적으로 머무를 수 있는 집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죄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이미 모두 심판되었으며,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와 불법을 다시는 기억하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사 53:5; 히 10:17). 하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내 구주로부터 모든 죄 값을 취하시고 또 다시 나에게 죄 값을 요구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러나 장차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믿는 자들의 준비는 전 생애를 통하여 계속 진행됩니다. 다시 말해서 믿는 자들에게 주어진 천국에 대한 약속은 영구 불변적인 것이지만, 그러나 우리가 아직 이 세상에서 육체 가운데 머물고 있는 동안 현실적으로 우리의 상태는 종종 불완전하며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계속적인 준비가 요구됩니다(빌 2;12, 엡 4:15). 이러한 과정은 주님의 재림으로 비로소 완성될 것입니다. 그 날에야 우리들은 완전한 나라에서 완전한 백성들이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셔서 죄가 들어 올 수 없는 완전한 장소로 우리를 옮겨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라" (요한1서 3:2).
천국은 실제로 존재하는가? 여기서 잠시 천국의 실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합니다. 대부분의 우리는 원자(atom)를 본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과학자들의 설명으로 우리는 원자의 존재를 믿습니다. 현대의 어느 사람 중에 나폴레옹이나 아브라함 링컨과 악수해 본 사람이 있습니까? 그러나 이들의 존재를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것은 보존된 그들의 개인적인 기록들을 믿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북극에 가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북극의 존재를 믿습니다. 흥미 있는 보고중의 하나는 죽음의 문턱에 까지 이르렀던 사람들의 천국에 대한 증언입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체험을 실제적으로 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그들이 증언하는 천국에 대하여 전혀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당신은 초대형 망원경을 통해 우주 정거장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주시대를 여는 과학의 힘을 믿는 우리는 이를 믿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위해 마련하신 천국은 실제적으로 저곳(3층천)에 존재합니다. 망원경에 의해서가 아니라 믿음의 눈을 통해서만 우리는 실존하는 천국을 볼 수 있으며, 성경의 기록을 통하여 그 찬란함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장차 그 나라에 이르게 될 날을 믿음으로 기다립니다. 예수께서는 "내 아버지 집에는 우리가 거하기에 충분한 것 그 이상으로 많은 집이 있다.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너희를 위하여 내가 준비하러 가노라는 말을 내가 할 수 있었겠느냐?" (요 14:2 역자 의역)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 계시록의 마지막 장은 이 놀라운 천국에 대해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현재도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 그 집으로 불리움을 받고 있습니다. 만일 그 나라에 들어 갈 준비가 되었다면 언젠가 당신과 나도 그곳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아마 당신은 묻기를 "어떻게 하늘나라에 갈 수 있는 확신을 가질 수 있을까요?" 라고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지극히 사랑하심으로 하나뿐이신 그의 독자를 우리에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들은 멸망하지않고 그 대신 영원한 생명을 얻으리라" (요 3:16 역자 의역) 실존하는 보이는 것들을 믿는 것보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은 훨씬 더 큰 능력을 줍니다. 이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분명한 사실을 받아드릴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그가 죽으실 때 나의 죄를 지시고 내가 받을 형벌을 대신 받으셨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믿음은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된 삶을 시작하게 하는 첫 번째 단계이며 하늘나라에 들어 갈 수 있는 영생의 시작입니다. 천국의 실존은 사실이며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피로 구속하신 자들을 위해 그곳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당신은 그곳에 갈 준비가 되셨습니까? 바로 지금이 그 기회입니다.
"진실로, 절호의 때는 바로 지금이로다. 오늘이 바로 그 구원의 날이로다" (고후 6:2 역자 의역). (Have a Good Day, November 2006 중에서)
성령님의 증거 (The Witness of the Spirit)
진정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제 3의 위격이신 성령님을 그 마음에 소유하고 있습니다. 성령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의 육체를 성전 삼고(고전 3;16, 고후 6:16). 그 속에 함께 거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롬 8:9)고 단언하였고, 다른 구절에서도 동일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참조구절; 딤후 1:14, 요한 14:16 엡1;13 등) 그리스도인들이 때때로 그들의 신앙생활에서 실패할 때도 있지만 여전히 구원의 확신 중에 기뻐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우리를 위해 근심하며 기도하시기 때문입니다(엡 4;30, 롬 8:26). 우리가 성령님의 거룩한 성품과 일치하지 않은 행동을 하게 될 때 성령님은 탄식하고 근심하며 슬퍼하십니다. 근심한다(grieve)는 말은 사랑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우리는 오직 사랑하는 이를 위해 슬퍼하게 됩니다, 이미 구원 받은 자들은 어떤 경우에도 구원 그 자체를 잃어버릴 수 없습니다. 단지 구원의 기쁨을 잃는 상태가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한 번 얻은 구원은 결코 다시 잃어버릴 수 없다는 사실을 성경은 분명히 강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요 10:28, 요 5:24, 히 10:12-18).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구원 받은 자들 속에 들어오신 성령님도 결코 우리들에게서 다시 떠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잘못을 범하여 구원에 대한 믿음이 흔들릴 때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피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앞으로 나아가 아뢰어야 합니다(요한 1서 1:9-2:2).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먼저 우리 속에서 근심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곧 자신의 잘못을 자백하고 그 죄에서 돌이킴으로 깨끗함을 받은 후, 성령님의 충만하심을 간구해야 합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제 5과에서 더욱 자세히 공부하겠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의 구원의 확신을 위해 하시는 사역은 사실(Facts), 믿음(Faith), 감정(Feeling) 이 세 단어들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것들과 관련된 성령님의 세 가지 사역에 대해서 좀더 상고해 보겠습니다.
1. 성령과 사실 (The Holy Spirit and Facts)
첫째로, 성령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 확실한 사실(facts)을 보여 주십니다. 히브리 저자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게시며 그 후에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또한 성령이 우리에게 증거하시되 주께서 가라사대 그날 후로는 저희와 세울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또한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히 10:12-17).
여기에서 성령님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하나님의 말씀과 믿는자들의 죄 사함에 대한 사실(fact)들을 증거하고 계십니다.
2. 성령과 믿음 (The Holy Spirit and Faith)
둘째로, 성령님은 믿는 자들의 믿음에 대하여 확증해 주십니다.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만일 우리가 사람의 증언을 받을 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 아들에 관하여 증언하신 것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관하여 증언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요한1서 5:6, 9-11).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구원의 사역을 각자의 개인적인 축복으로 이어주는 생명의 고리가 믿음(believing)이며 성령님은 그러한 믿음을 확증해 주고 계십니다.
3. 성령과 감정 (The Holy Spirit and Feelings)
마지막으로, 성령님은 믿는 자들의 감정을 통해(feelings)역사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기록하기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빠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롬 8:15-17).
구속함을 받은 자들의 심령 속에 넘치는 기쁨, 평안, 사랑의 감정들은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향해 아바(Abba)라고 부르짖게 합니다. 아바란 어린 아기들의 부르짖음으로 오늘 날 아빠(papa 혹은 daddy)와 같은 말입니다. 그리고 장성한 자녀는 아버지(father)라고 부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앞으로 그 자신이 당하실 십자가의 고통을 내다보시고 동일한 감정으로 부르짖으셨습니다. 그와 같은 상황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우리 주님은 하나님을 향하여 자신의 감정을 달리 표현할 길이 없으셨습니다(막 14:36). 성령님은 주 예수님께서 그의 아버지를 향하여 가지셨던 똑같은 심정으로 우리 믿는 자들의 영과 더불어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도록 하십니다. 이 이상 우리가 더 바랄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구원의 확신은 인간의 생각 위에 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위에 두는 것이며, 인간의 노력이나 선행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역을 의지하는 것이며, 인간의 감정에 의한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증거에 의한 것입니다.
이제 당신 자신에게 자문해 보기 바랍니다. 나는 성경을 정기적으로 읽는가? 나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전적으로 의지하는가? 사람의 감정이 아니고, 성령의 증거에 의해 심령에 기쁨을 누리고 있는가? 만일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당신은 행복한 그리스도인의 간증을 다른 사람들에게 빛처럼 증거하고 자석처럼 영혼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이끄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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