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간증

실화 맹의순 선교사 - 내잔이 넘치나이다

배남준 2016. 2. 17. 15:58

[펌]

1975년 세례를 받고,
하용조 목사와 함께 성경공부를 시작하며
인격적인 하나님을 만나게 된
정연희 권사.

[내 잔이 넘치나이다],[양화진],[주기철] 등 신앙서적을 집필.

 

 

6.25전쟁 당시 거제도 중국군 포로수용소에서 포로들의 발을 씻기고 헌신적으로 환자들을 돌보다가 27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아름다운 청년 맹의순.
 

한 알의 밀알로 자신의 몸을 던져 헌신했던 맹의순의 이야기는 그의 친구들과 같은 포로수용소 환자들의 증언과 기록, 편지들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고 20년 전 정연희 작가에 의해 소설 <내 잔이 넘치나이다>로 출간되어 그동안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읽혀졌다.
 

일제강점기와 4.3제주도 폭동사건, 여순 반란사건, 6.25사변을 배경으로 많은 독자들에게 감동을 준 소설 <내 잔이 넘치나이다>는 지난 2005년 CTS방송국에서 연극으로 올려져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 소설는 오페라로 재 탄생되어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 오르기도 했다.
 

부유한 장로의 아들로 태어난 맹의순은 조선신학교를 다니며 남대문교회 전도사로 섬기던 중 6.25전쟁이 발발하고 인민군 패잔병으로 오인 받아 포로수용소에 갇히게 된다.
 

늘 찬송을 부르고 시편23편을 외우면서 중공군 포로 부상자들의 병간호를 위해 밤낮없이 봉사하고 복음 전파에 힘썼던 맹의순은 결국 과로로 쓰러지고 석방을 앞둔 채 죽음을 맞는다.

중공군 포로들은 맹의순의 모습을 통해 참된 천사를 보았노라고 고백한다.
 

 

얼마나 울며 기도했길래...

눈물로 얼룩진 정연희 권사의 기도골방

 

다음은 그의 돌봄을 받았던 중공군 포로 환자들이 맹의순의 죽음을 추도하며 쓴 글이다.

 

 

평화의 왕자, 화평의 사도, 인애의 왕, 우리에게 사랑의 주인이셨던 맹의순 선생이 가시다니. 오늘 밤, 귀교회에서 우리의 위로자였고, 사랑과 존경의 표적이었던 맹선생의 추도 예배를 드린다기에 우리 모든 사람들의 뜻을 모아 서둘러서 이 글월을 드립니다.

 

우리는 서로 말이 통하지 않던 이방인들이었습니다. 우리처럼 포로의 옷을 입은 그가 미국 군인 의사들을 도우며 우리의 병동을 찾아오던 초기에 우리는 그를 경멸하고 무시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얼굴은 늘 온화했고, 우리를 돕는 그의 행동은 희생정신으로 언제나 꾸밈없이 여일 했습니다.
 

선생은 새벽 한 시, 두 시면 늘 병동에 오셨습니다. 초저녁에 치료와 간병을 맡았던 사람들도 모두 물러가고 나서 중환자들이 심하고 무거운 고통에 시달리는 그 시간에 선생은 고통을 다스리는 천사로 우리들 앞에 오시는 것이었습니다.

 

선생은 하늘에서 보낸 천사였습니다. 깊은 밤 신음 소리가 낙수처럼 쏟아질 때 선생은 인자의 큰 그릇이 되어 우리들의 온갖 고통과 신음을 다 받아 담고 고통과 신음을 들어냄으로써 하나하나 편안히 잠들도록 잠재워주시는 천사로 오시는 것이었습니다.
 

선생의 한 손에는 성경책이 그리고 다른 한 손에는 물통이 들려져 있었습니다. 선생은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를 골고루 만져주고 주물러주면서 그렇게도 간절하게 기도를 하십니다.

우리는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의 기도를 듣고 있으면 기승하던 고통은 사라지고 신음과 함께 목이 타서 잠 못 이루던 육체가 편안한 잠의 품에 안기게 되고는 하였습니다. 겨울이면 따뜻한 물로 여름이면 시원한 물로 우리들의 얼굴을 씻어 주고 손을 닦아주십니다. 때로는 발도 씻겨 주십니다. 넉넉지 않은 수건을 정성껏 깨끗하게 빨아가며 한 사람 한 사람 고루 씻어 주십니다.
 

선생의 손에는 신비한 힘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 손이 얼굴에 닿으면 시원하고 가벼워지는 것입니다. 선생이 발을 씻겨 주시면 천상에나 오른 것처럼 평화로워지고 마음에 걸리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염치없이 한 번만 더 한 번만 더 그 분의 손으로 씻기는 것을 바랬습니다. 선생은 우리의 더러워진 육체를 구석구석 닦아주시면서 그 부드러운 음성으로 나직하게 노래하고는 하셨습니다. 눈을 감고 들으면 그 노래는 천사의 옷깃 스치는 소리 같기도 했고 천사가 안고 있는 하늘나라의 악기가 울리는 것 같은 소리이기도 했습니다.

-중략-

 

우리는 붙잡혀 포로가 되고, 팔 잘린 자, 다리 잘린 자, 눈 잃은 자, 살점 달아난 자, 동상으로 살이 문드러진 자가 되어 적군의 손으로 치료를 받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될 대로 되라는 심사와 끝없는 원망과 증오가 굳어져서 우리의 마음은 깜깜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그 자리에 맹선생이 오셨습니다. 맹선생의 숨결은 우리의 그 두꺼운 껍데기를 녹여 주셨습니다. 얼음장처럼 차고 두껍고 어둡던 그 마음의 문을 기도와 친미와 손을 대어 만져 주던 그 사랑으로 녹게 해주셨습니다. 그 사랑의 따뜻함이, 철문이 되어 단단하게 빗장 질러졌던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덥혀 주시고 빗장이 풀리게 해주셨습니다.

-중략-

 

마지막 환자를 다 씻기고 일어난 선생은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시편 23편을 우리말로 더듬더듬 읽어 주셨습니다. 다 봉독하신 뒤 높은 곳을 바라보시며 다시 한번 말씀하셨습니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우리는 다 그의 얼굴을 보며 그 말씀을 따라 외었습니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그 얼굴의 화평함이 우리를 안위해 주었습니다. 그 평화의 미소가 우리에게는 하나의 약속이었습니다. 선생은 마지막 환자를 씻겨낸 물통과 대야를 들고 일어나셨습니다. 그 순간 어딘지 먼 곳을 향해 높고 높은 그 곳을 바라보며 남겨두고 가시는 우리들을 부탁하시는 듯 높은 곳을 바라보시던 그대로 그 자리에 쓰러지셨습니다.
 

미국인 의사들이 달려오고 앰뷸런스가 와서 선생을 실어 간 뒤 우리는 자책하며 울부짖었습니다. 염치없는 우리들이 선생의 생명을 빼앗았다, 우리가 선생을 돌아가시게 했다고. 그 아침이 다 밝아 일과가 시작되었을 때 우리는 선생께서 우리에게 전해 주신 사랑의 신 예수께 간절하게 눈물로 기도했으나 우리에게 전해진 것은 선생이 운명하셨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우리는 통곡합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맹선생을 만나기 위해서라도 예수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제 버려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맹선생과 함께 주님 안에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통곡합니다.
 

거제리 포로 수용소 중공군 병동의 환자들 일동 -내 잔이 넘치나이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