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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정근모박사간증

배남준 2016. 2. 2. 06:32
“나는 과학자보다 신실한 기독인 되고 싶다” 정근모 박사 | 신앙간증
2005.08.16 14:26

 
“나는 과학자보다 신실한 기독인 되고 싶다” 정근모 박사 신앙고백론 출간

여기 한 과학자의 절절한 신앙고백이 있다.“저는 위대한 과학자가 되기보다 신실한 크리스천이 되고 싶습니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원자력학자 정근모 박사(63·호서대 총장·한국해비타트이사장).

24세에 미국 플로리다주립대 교수,한국인 최초의 국제원자력기구 의장,한국인 최초의 미국립공학 한림원 회원,KAIST 창립의 숨은 공신,두 차례 과기처 장관 역임….그를 따라다니는 이력은 화려함 그 자체다.

그러나 정박사는 그 어떤 경력보다 크리스천인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한다.그에게 크리스천됨은 과연 어떤 의미였을까.정박사는 최근 자전적 신앙고백록 ‘나는 위대한 과학자보다 신실한 크리스천이고 싶다’를 국민일보사에서 출간,자신의 인생속에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진솔하게 간증하고 있다.

경기고와 서울대,미시건대 박사를 거쳐 세계적인 핵물리학자로 탄탄대로를 걷던 그를 신앙의 깊은 세계로 인도한 것은 아들이었다.아들 진후는 그에게 말할 수 없는 역경이자 축복이었다.그는 아들이 10세 때 만성 신장염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그리곤 자신의 신장을 떼내 아들에게 이식했다.그러나 진후는 이후 26년을 병과 싸워야 했고 죽음과 삶을 넘나드는 고통을 못이겨 자동차로 자살을 기도한 적도 있었다.

이런 고통의 나날을 통해 정박사 가족은 하나님께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진후를 통해 영혼의 호흡인 기도를 배웠고,하나님과 진실하게 대화하는 법을 깨달았으며 신앙의 동역자들과 교제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다.

정박사는 어려움 가운데서도 과학자로서의 임무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지난 86년,그는 미국 원자력학회가 현저한 업적을 이룬 회원에게 주는 영예의 ‘펠로(fellow)’ 호칭을 받았다.그리고 89년 한국인 최초로 국제원자력기구 의장으로 당선돼 한국의 위상을 높였다.세계원자력 한림원 회장도 연임한 그는 지난 98년 세계원자력 한림원에서 제정한 공로상과 국제원자력상을 잇따라 수상,국제적 인물이 됐다.

정박사는 특히 98년 10월4일을 잊을 수 없다.미국 한림원 회의장에 사상 처음으로 태극기가 게양된 날이기 때문이다.학자들에게는 최고 권위의 상징인 미 한림원.그곳엔 이미 5명의 한국인이 회원으로 있었지만 모두 미국시민권자들이었다.한국시민 자격으론 정박사가 처음이었기에 한림원에 태극기가 처음으로 게양된 것이었다.

2001년 3월23일.미국에 있던 아내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병세가 악화된 진후가 심한 뇌출혈을 일으켜 죽음의 문턱에 있다는 것이었다.숱한 세월을 기도줄을 간절히 붙들고 살게 했던 아들.“아버지,내 죽음을 축복해 주세요.힘들고 고통스런 여행은 모두 끝났어요.이젠 그분 곁으로 가게 됐으니 얼마나 행복한가요.저로 인해 절대로 눈물을 흘리지 마세요” 6번의 대수술.비관과 절망속에 절규했던 아들은 오히려 성령충만한 모습으로 정박사 부부를 위로했다.

평소 질병의 고통속에서도 ‘한·일 기도모임’을 이끌고 좋은 남편과 아빠 노릇을 하며 신심을 다해 주님을 섬겼던 아들.정박사는 지난 8월 한국에서 개최된 ‘지미 카터 특별건축사업 2001’을 준비하던 중 아들 진후를 하나님께 떠나보냈다.그러나 아무에게도 내색하지 않고 홀로 미국으로 건너가 임종을 지켜본 뒤 이별예배를 드리고 돌아와 주변사람들의 가슴을 아리게 했다.

이 책엔 최선을 다해 자신의 길을 간 과학도,한 아들을 극진히 사랑한 한 아버지,그 아들로부터 하나님의 사랑과 신앙의 길을 발견하고 고난과 역경의 순간에도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참된 크리스천의 모습이 감동적으로 녹아있다.이 땅의 기독인들,특히 부모들이면 누구나 읽어볼 만한 책이다. 



출처 : 꿈과희망을 주는 꿈돌이
글쓴이 : 좋은사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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