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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예언"모래 속에 보배" ..유대인 반도체 /조선일보 2021.2.2

배남준 2021. 2. 2. 12:23

모세의 예언 "모래 속에 보배"  ...유대인이 유리, 반도체 만들었다 [홍익희: 3000년 시공 초월한 모세의 축복과 반도체]

 

  -요약 -   ( 한국 반도체에 공헌한 박정희와 이병철, 이건희) 

한국 경제의 무역 의존도는 63.5%(2019년)다. 무역이 우리 경제를 이끌어가고 있는 셈이다. 수출 품목 중 1등은 반도체다. 우리 수출의 5분의 1을 책임지고 있다. 반도체로 만드는 컴퓨터, 디스플레이, 휴대전화, 가전제품, 전기자동차 등 연관 제품들까지 포함하면 그 수치는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성경에 이런 구절이 있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죽기 전에 이스라엘 자손을 위해 축복함이 이러하니라. (중략) 바다의 풍부한 것, 모래에 감추어진 보배를 흡수하리로다.”(신명기 33장 1, 19) 여기서 모세는 후손들에게 모래를 콕 찍어 가르쳐주며 축복했다. 실제로 모래는 이후 많은 기적 같은 일을 해낸다.

 

                      -19세기 덴마크, 크리스토퍼 빌헬름 ‘홍해를 건넌 뒤 쉬는 이스라엘인들-

 

성경에 따르면, 모세의 인도로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민족에게 신(神)은“바다의 풍부한 것, 모래에 감추어진 보배를 흡수하리라”는 축복을 내렸다. 로마 시대 유대인 유리 세공업자들은 유리 공예품을 만들어 수출했고, 중세 네덜란드의 유대인 공동체는 독보적 유리 연마 기술로 안경·망원경·현미경을 만들었다. 현대에 이르러 모래의 주요 성분 규소로 반도체 기반의 증폭기‘트랜지스터’를 고안해낸 것은 미국의 유대인이었다.

가나안 사람들은 모래를 갖고 인류 최초로 유리를 만들었다..  그들은 값비싼 유리 제품 수출로 번영을 누렸다. 모세가 말한 축복의 첫 실현이었다.

 

모래의 축복은 계속되었다. 모래의 주요 성분인 실리콘(규소)으로 반도체가 만들어졌다.  1930~40년대 라디오, TV 등의 진공관은 부피가 크고, 전기 소비가 많고, 자주 꺼져 수시로 교체해야 했다. 미국 최대 통신회사 AT&T는 진공관을 대체할 깨지지 않고 오래가는 전자 증폭기를 원했다. 이를 해결한 과학자가 바로 유대인 윌리엄 쇼클리였다. 그는 반도체 기반의 증폭기 곧 ‘트랜지스터’의 기본 개념을 고안해내 1948년 벨연구소에서 진공관을 대체한 트랜지스터가 탄생하였다.  쇼클리와 그의 동료 2명은 ‘반도체 연구와 트랜지스터 효과 발견’에 대한 공로로 1956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그 뒤 쇼클리로부터 독립한 페어차일드사가 트랜지스터 회로를 실리콘웨이퍼에 집적시킨 ‘실리콘 집적회로’를 개발했다. 이후 반도체는 정보화 시대를 열었다.

 

 

‘트랜지스터’개념을 고안한 유대인 엔지니어 윌리엄 쇼클리(위 왼쪽)와 실리콘밸리 탄생의 주춧돌을 놓은 스탠퍼드대 프레더릭 터먼(위 오른쪽 ) 교수. 아래 사진은 놀라운 단결력으로‘페이팔 마피아’로 불렸던 실리콘밸리 젊은 사업가들의 2007년 모습.

 

미국 정부의 막대한 연구 자금을 지원받은 스탠퍼드 대학은 실리콘밸리를 조성하는 첫발을 내딛는다.

                                        -차세대 지능형 반도체 기술 -

1970년대 미국 반도체 회사 45개 가운데 페어차일드, 인텔 등 40개가 실리콘밸리에 모여들었다. 실리콘밸리는 신기술을 주도해 정보화 시대를 열었다. 모세의 축복이 실현되고 있는 곳이 실리콘밸리다.

 

   -박정희 대통령의 과학입국과 이건희 회장의 반도체 혜안  

박정희 대통령 시절 미국 정부는 베트남전 파병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개발 차관과 과학연구소 설립 원조를 제의했다. 한국정부는 스탠퍼드 산업단지의 성공을 한국에서도 실현하기 위해 터먼 교수를 초청해 1971년 한국과학기술원과 대덕연구단지를 설립했다.

삼성의 반도체 산업 진출은 이병철이 1983년에 선언했지만, 그 뿌리는 1974년 이건희에게서 시작되었다. 당시 30대의 이건희는 반도체가 가져올 미래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그는 아버지에게 반도체 산업 진출을 건의했으나 무산되자, 사재 4억원을 털어서 파산 직전의 한국 반도체 지분 50%를 인수했다. 이건희는 아버지에게 반도체의 미래에 대한 설득을 멈추지 않았다. 마침 이병철이 18년 만에 미국 나들이를 할 일이 생겼다. 이건희는 실리콘밸리 견학을 주선해 아버지를 모시고 갔다.

이병철이 충격받은 것은 휴렛패커드 사무실이었다. 직원들이 컴퓨터 하나로 계산, 기획, 보고까지 거의 모든 일을 해내고 있었다. 두 눈으로 직접 보니 정신이 확 들었다. 컴퓨터와 반도체가 예상보다 빠르게 핵심 산업으로 클 것을 직감했다. 이병철은 결심했다. “반도체 사업은 나의 마지막 사업이자 삼성의 대들보가 될 사업이다.” 미국에서 돌아오자마자 이병철은 불도저 같은 추진력으로 인재를 끌어모아 1983년 2월 반도체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바로 그해 말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 세 번째로 64KD램 개발에 성공했다. 공장도 지어지지 않았을 때였다.

모래에서 추출한 실리콘이 반도체를, 반도체가 실리콘밸리를 만들었고, 실리콘밸리의 구글, 페이스북 등 많은 유대인 기업이 주축이 되어 인류의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다. ‘모래에 감추어진 보배를 흡수하리로다’의 축복은 현재진행형이다. 축복의 과실을 유대인뿐 아니라 우리 한국인도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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