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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주님의 것입니다 / 천정은 -80차 항암치료

배남준 2020. 10. 27. 14:06

 

 

 

아 오늘을 넘기기 어려울 수 있겠구나

그동안 죽음에 직면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인지

그들에게서 보았던 익숙한 느낌을 찾을 수 있었다

병원에 여러 번 전화해서 몸 상태를 알렸다

이미 패혈증이 진행된 것 같으니

빨리 병원으로 오라는 말도 들었다

통화 중에 열이 38도에서 39.2도까지

순식간에 치솟았다

정말 다급한 상황이었지만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암 환자를 만날때마다

비상시에는 119를 부르라고 말했는데

정작 나는 그 생각을 하지 못했다

잠깐 누워야 나갈 힘이 생길 것 같아

침대에 쓰러지듯 누워 방안을 천천히 둘러 보았다

내가 다시 이곳에 돌아올 수 있을까

방 현켠에는 그 해 여름을 대비해 사둔

아직 뜯지 않은 택배 상자가 눈에 들어왔다

한 계절을 지낼 수 있을 거라고

철저하게 믿은 나 자신에게 기가 찼다

천천히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는데

벽에 걸린 십자수 액자에 예수님이 얼굴이 보였다

아 내가 지금 이럴때가 아니지

나는 잠잠히 눈을 감았다

주님 제가 오늘 병원에 가면

다시는 이방에 돌아오지 못할수도 있겠지요

그러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나요

제 마지막 사명은 무엇인가요

교회 공동체를 위해 할 일을 알려 주세요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그의 인생이 180도로 바뀌어

이방인의 사도로

평생을 숱한 고난과 어려움속에서도

많은 교회를 개척하고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의 사람들을 길러내었던 사도바울의 삶이 있지만

누구나 사도바울처럼 살아야만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것은 아닐 것이다

또한 하나님을 알고 믿어서

기적과도 같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말기암이라는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하나님을 만나 그 은혜를 전하고 나누며

한 생명에 대한 큰 부담감을 가지며

"암 환자를 전도하는 암 환자"가 되신

천정은 자매님의 사역이 너무나 귀한것이지만

누구나 부활의 은혜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말기 암환자가 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닐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바울처럼

천정은 자매처럼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 전하는 자라면

그 마음의 중심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동일하신 예수님, 동일하신 성령님을 경험하며

한 복음을 따라 살아가는 신자의 삶은

세속에 묻혀 살아가는 삶과는 전혀 거리가 먼 삶인것이 분명히 드러나게 될 것이다

아픈 분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마음을 저리게 하지만

젊고 유능했던 이의 아픔의 고백은 더 아프다

그런데 그가 하나님을 만나 은혜를 고백하면서

온 몸으로 투병생활을 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전하는 자의 모습은 감동적이면서도 눈물겹다

더욱이 그의 신앙이

지난한 영적 자만과 익숙함에 길들어진

여느 신앙인과 같지 않고

처음 주님을 만나

그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첫 마음"의 신앙인이기에

감동과 함께 더 마음이 아프다

타인의 시선으로

하나님께서 자매를 좀 덜 아프게 하시기를

하나님의 은혜로 좀 치유해 주시기를

그래서 남은 인생,

마음껏 하나님 주신 삶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복음을 전하는 인생을 살게 하시면 안되나

이런 탄식 어린 한숨도 나왔지만

그래도 내가 알지 못하는

하나님과의 관계속에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자매를 사랑하시는지를

나 같은것은 알수도 없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자매에게 부어 주시겠지 하는 마음으로

작은 기도를 그녀와 그녀의 사역에 보태어 본다

암 환자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무리한 일정을 강행하는데도

에너지가 더욱 넘치는 걸 경험한다

온종일 환자를 만나러 다니고

밤새 말씀으로 교제해도

끄떡없이 다음 날 새벽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빡빡한 일정을 감당한다

반면 쉬는 날은 밀린 잠을 몰아서 잔다

몸 상태와 상관없이 복음을 전하는 일이

힘든 순간도 있었지만 지금은 익숙하다

쉬고 싶을 때 쉬어도

주님이 기뻐하시겠지만

내 몸은 주님의 것이니

오늘 하루 주님이 원하시는 일을 해드리고 싶다고

기도하고 움직인다

그러면 놀랍게도 최상의 몸 상태로 돌아온다

몸을 버리는 선택이

결국 내 몸을 살리는 결과를 낳는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오직 주를 위해서도

주님이 허락하신 이 자리에서

복음을 전하고

내 뜻이 아닌 오직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며 나아간다

이 소망의 삶을 마지막 한 호흡이 다할 때까지

놓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행1:22

오늘 예수님과 어떤 대화를 하셨나요?

내가 암 환자와 교제하며 꼭 묻는 말이다

예수님이 살아계신다고 믿으면 쌍방대화가 가능하다

그러나 대부분 자신의 처지를 바꿔주시지 않는다고

불평만 할 뿐 정작 그분과 대화하지 않는다

이 사실을 깨닫고 인정하면

염려와 불안으로 힘들어하던 이들이 눈물로 회개하며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된다

나는 잘 죽기 위해 오늘을 삽니다

나는 세상에서 만족스럽게 살기 위해

끊임없이 헤매다가 덜컥 암에 걸렸다

그리고 예수님을 통해

진짜 삶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음을 알게 됐다

천국에서의 새 출발을 이 땅에서 철저하게 준비하는 게

내 삶의 진짜 목표임을 깨닫고

잘 죽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살자 라고 다짐한다

                                                                        [출처] 나는 주님의 것입니다|작성자 유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