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간증

癌환자들의 지푸라기가 되겠소, 위로만 된다면 / 김동호 목사

배남준 2020. 6. 12. 08:34

 

암 투병 돕는 암환자 김동호 목사

김동호(69) 목사는 면티, 면바지에 운동화 차림으로 나타났다. 그는 "이게 원래 제가 하고 싶었던 모습"이라고 했다. 정장에 넥타이가 일상이던 일선 목회 때보다 그의 표정은 훨씬 편안해 보였다.

40대에는 청년 부흥과 교회 개혁 운동에 앞장섰고, 50대엔 '높은뜻숭의교회'를 시작으로 교인이 일정 인원을 넘어서면 분립(分立)하는 운동을 벌였으며, 60대엔 개신교 NGO 운동을 폈다.

그러다 지난해 4월 폐암 진단을 받았다. 항암 치료를 받던 그는 지난해 6월 유튜브 '날마다 기막힌 새벽(날기새)'과 오프라인 모임 CMP(Comfort my people·내 백성을 위로하라)를 시작해 암 환자를 위로했다. 매일 새벽 20분 안팎의 동영상을 올리는 '날기새'는 최근 300회를 맞았다. CMP는 코로나 사태 전까지 500~600명씩 모이는 모임을 여섯 번 가졌다. 암 투병 과정의 페이스북 글을 모은 책 '패스 오버'(홍성사)도 펴냈다. 책의 부제는 '아픈 목사가 아픈 사람들에게'. 목회 일선을 떠나 암 환자를 위한 새 사역을 펴고 있는 김 목사를 만났다.

암 환자를 위로하는 유튜브 '날마다 기막힌 새벽' 300회를 맞은 김동호 목사. 김 목사는 "암 환자가 암을 생각하면 거기 갇혀 마음까지 무너지지만 하나님을 묵상하면 마음을 지킬 수 있다"고 말했다. /이진한 기자

 

―암 진단을 받았을 때 어떤 느낌이었나?

"목회자로서 수많은 임종과 장례를 치렀지만 객관적으로 보던 죽음이 나의 일, 주관적으로 코앞에 다가오니 당황스러웠다. '왜 나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이내 '너는 왜 안 되는데?'라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항암 치료 과정이 고통스러웠다고 들었다.

"수술은 3시간 만에 끝났다. 흉강경으로 2.6㎝ 정도의 암을 떼어냈다. 그 과정에서 임파선에 일부 전이된 것이 발견됐다. 그래서 4차례 걸쳐 항암 치료를 받았다. 항암 치료 받으러 갈 땐 도살장 끌려가는 심정이었다. 구토 때문에 먹지 못하니 기운이 없어 앉지도 눕지도 못했고, 잠도 못 잤다."

―항암 치료를 시작하면서 유튜브 '날마다 기막힌 새벽'과 CMP를 시작했다.

"수술 후 병실에 돌아왔는데 '내 백성을 위로하라'는 이사야서 말씀이 들려왔다. 처음엔 '내가 죽게 생겼는데 누굴 위로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네가 죽게 생겼으니 그 마음으로 위로하라'는 말씀이 들렸다. 수술 후 요양시설에서 3개월 정도 지냈다. 때때로 비명 소리가 들렸다. 얼마 후 앰뷸런스가 도착하고…. 그 무렵 요양하던 곳 풍경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용케 찾아오는 분들이 있었다.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심정들이었다. '그래, 지푸라기가 돼 드리자'라고 마음먹고 '날기새'와 CMP를 시작했다. 첫 모임 때는 서있기도 힘들었다. 그런데 내가 힘들어하는 모습 보면서 환자들이 위로받고 용기를 내더라."

―유튜브 방송엔 어려움이 없었나.

"일선 목회할 때 제일 좋았던 것이 새벽기도회였다. 은혜가 특별했다. '날기새'는 새벽기도를 온라인으로 옮겨온 것이다. 처음엔 3회분 촬영에 18시간이 걸렸다. 내가 겪어보니 암은 '걸린다'는 말이 맞더라. 그물에 걸리듯 원망, 걱정, 좌절에 걸려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그물에서 빠져나와 숨을 틔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암을 묵상하면 빠져나오지 못한다. 하나님을 묵상하면 풀려난다."

―댓글 사연이 절절하다.

"지난 2월 6일 별세한 분이 있다. 마지막엔 어떤 진통제도 안 들을 정도로 고통을 겪으셨다고 한다. 그런데 그 따님이 '아버지가 마지막엔 날기새 덕분에 천국처럼 지내다 가셨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단 한 사람이라도 날기새를 보면서 천국처럼 느낄 수 있다면 내 시간을 아끼지 않겠다' 마음먹었다."

―1년 만에 구독자가 12만명에 이르렀다.

"한 청각장애인 암 환자가 '자막이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 혼자 만드는 동영상이라 불가능했는데, 전문가들이 도움을 주셨다. 지금은 중국어, 영어, 일본어, 스페인어까지 봉사자들이 자막을 넣어주신다. 구독자가 늘면서 광고료도 받아 선교사 지원에 쓰고 있다. 바리스타 교육도 받고 있다."

―바리스타 교육은 왜 받나?

"카페를 열어 환자들 만나서 대화하고 등도 두드려 드리고 싶어서다. 나는 목회할 때 교인 중에 환자가 있어도 찾아가면 힘들까봐 잘 안 갔다. 그런데 내가 아파 보니 찾아와 주는 사람이 고맙더라. 카페가 그런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앞으로 계획은.

"'날기새'를 끝까지 하고 싶다. 과거엔 '소프트 랜딩'을 생각했는데, 이제는 '뷰티풀 랜딩', 즉 '이쁘게 죽자'고 마음먹었다."



                                                                                                               -   조선일보 6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