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간증

한국 최고의 지성 이어령 박사 - "나는 실패자" / 고등학교 스승의 추억 일화

배남준 2020. 2. 14. 12:05


할렐루야!

선생님의 솔직한 고백에 머리가 숙여집니다.

그러나 이제 선생님에게는 예수님이라는 영적인 동행자가 있으십니다.

그분과 함께 빛과 사랑 속에서 영원한 하늘 평안을 누리십시요

암 투별중에 계신 선생님!  주안에서 더욱 건강하시고 행복하십시요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2007년 4월"이어령씨 개신교에 귀의 기사를 읽으며" 컬럼 중에서 발췌 -  하늘소망   


이어령 교수님은 저의 고등학교 은사이셨고, 평생에 그분의 책과 강연을 통하여 제가 세상에서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몇분중에 한분이십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크리스천이 된다는 사실은 너무나 반갑고 놀라운 사건이였습니다. 

이 뉴스야말로 우리 크리스천들에게 박주영이가 골을 넣고 기도하는 장면만큼이나 신선하고 멋있는 화제가 될 것이 분명합니다.

 

1959년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이어령 선생님은 국어 선생님으로 부임하셨습니다.

약관 나이 26세, 서울대 국문과 대학원을 갓 졸업한 신출내기였습니다.      

우리 2학년 7반은 그의 첫 수업시간에 음모를 꾸미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어린 나이, 어쩌면 형님같은 청년을 우리 선생님으로 받아들이기에 우리는 너무 어렸고

사춘기 반항기 절정의 시기에 있었습니다.

으레 손 꼽히는  장난꾼들의 주도하에, 소리를 내서 떠들기 시작했습니다.

선생님이 야단쳐도 우리는 아랑곳 없이 소란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선생님이 강의를 포기하고, 겨울이었는데, 교단을 내려와 스팀난로곁 창가에서, 밖을 내다보시며, 노여운 자세로 등짐을 지고 그렇게 첫 시간이 끝났습니다. 우리의 완전한 승리였습니다.

실력이 없는 선생님들은 학생들 등쌀에 결코 배겨날 수 없는, 그런 학교의 전통적인 분위기가 늘 맥맥히 우리 마음 속 긍지로

흐르고 있던 학창 시절이었습니다.

 

월요일 조회시간, 김원규 교장선생님으로 부터 불같은 노여움의 질책을 받았습니다.

김교장 선생님은 이제 세월이 흘러, 반세기 가까이 우리나라 교육계에 전설적으로 회자되어 오시는 분이십니다.

그런 순수한 열정의 교육자가 아쉬운 시대에 우리는 안타깝게 살고 있습니다.

김교장 선생님은 전국을 훑어, 내로라는 선생님들을 스카웉해서 뽑아 올렸습니다.

지각생을 쫓다 넘어져 다리를 다쳐서, 평생을 지팡이를  집고 다니신 그 일화가 새삼 그리워 지는 순간입니다. 

  

존경하는 교장 선생님의 노여움에 머리를 숙인 우리 반은, 다음 국어 시간에 우선 선생님의 수업을 듣고 실력을 평가하기로

합의를 보았습니다.     

 

우리는 흥미를 가지고 다음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수업이 시작되자, 이어령 성생님의 현란한 말 솜씨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박학한 실력이 동서고금을 휘젓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넋을 잃고 있었습니다.

수업이 끝나고 우리는 선생님에게 참으로 미안스러워 했습니다.

그후 이 선생님 시간은 물론 항상 조용했습니다.

재미있었으니까.

 

대학시절,  젊은 선생님은 벌써 당대에 안병욱 교수와 쌍벽을 이루는, 대학가에 최고의 인기 강사가 되어 있었습니다.      

          

지성의 오솔길, 흙속에 저 바람속에, 축소 지향의 일본인등은 그의 유명한 저서입니다.

그분의 글은, 어느 날  호수 가에서 찬란하게 부서지던 햇살의 환희와 수면 위에서  번쩍이던 물고기의 편린처럼

빛나는 예지들이 숨어있기에, 숨을 죽이고 읽어야 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잘 모르는 그분의 글들을 읽었으면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