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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9명의 유대인 어린이들을 구한 니콜라스 윈턴

배남준 2019. 12. 31. 17:20


니콜라스 윈턴


니콜라스 윈턴은 1909년 5월 19일에 독일계 유태인 금융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부유한 집안에서 어려움 없이 자라난 니콜라스 윈턴은 성장한 후, 증권거래소에서 주식 중개인으로 근무하며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며 지냈다. 그의 인생을 바꾼 1938년. 니콜라스는 크리스마스 휴가로 스위스에 스키를 타러 갈 계획을 세우게 되는데, 마침 그 순간에 당시 체코슬로바키아 동부 유태인 수용소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자신의 친구에게 '휴가를 취소하고 날 좀 도와달라'라는 전화를 받게 되었다.



친구의 연락을 받은 니콜라스 윈턴은 친구가 근무하던 체코슬로바키아의 유태인 수용소로 가게 되는데, 난민캠프의 현실을 본 그는 경악하게 된다.


당시 체코슬로바키아는 나치 독일에 의해 점령 된 상태였으며, 유태인들이 나치 독일에 의해 수용소로 보내지며 탄압받던 상황이었다. 이러한 참상을 본 니콜라스 윈턴은 이 사람들을 도와야겠다고 결심하게 된다. 그는 전쟁이 코앞에 닥친것을 직감했고, 수용소의 어린 아이들을 가장 걱정하였다.


영국으로 돌아간 그는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영국으로 입양시키는 방법을 택했다. 그때 당시 영국에서는 유태인 아이들을 나치로부터 구하기 위해 해외입양을 하였는데, 체코슬로바키아는 그러한 방법들이 전혀 시행되지 않았다.



니콜라스 윈턴은 체코슬로바키아 수용소에서 탄압받던 아이들을 영국으로 입양시키기 위해서 영국 기관을 찾아가 수없이 설득하고, 사비를 털어 절차에 필요한 비용을 댔으며, 광고를 내며 아이들이 영국에서 보살핌을 받게 후원가정을 찾는데 몰두하였다.

마침내  비밀리에 준비한 열차에 아이들을 태울 방법을 찾았다. 체코에서 아이들을 도우며, 수없는 나치의 위협으로 위험한 상황이 오기도 했다. 그렇지만 나치 장교들에게 사비로 뇌물을 주며 그런 상황들을 넘겨가면서 아이들을 기차에 태워 영국으로 보냈다. 그 방법으로 9번을 열차로 아이들을 태워 보냈다. 니콜라스 윈턴은 결과적으로 9번의 열차를 보냈고, 영국에 무사히 입양된 아이들의 수는 총 669명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9번째 열차에 250명의 아이들을 태워 보냈는데, 불행하게도 히틀러의 폴란드 침공으로 2차대전이 시작되는 바람에 국경이 봉쇄되고, 열차에 태웠던 250명의 마지막 아이들은 끝내 행방불명 처리가 되었다. 수용소로 보내져 모두 사망했다고 추정된다.



니콜라스 윈턴은 2차대전 당시 영국 공군에 입대하여 활약하기도 했다.

2차세계대전 직전 699명의 아이들 목숨을 구한 니콜라스 윈턴. 니콜라스 윈턴은 자신의 선행을 가족은 물론,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자신이 마지막으로 보낸 9번째 기차에 탄 250명의 아이들의 생명을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이었다.

그 후 수십년이 지난 1988년 그의 선행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1988년 그의 아내가 집 다락방 정리를 하다가 우연히 어떤 가방을 발견하였고, 그 가방속에는 그 당시 니콜라스 윈턴이 영국으로 입양을 보내는 모든 아이들의 인적사항을 적어놓은 스크랩북이 들었다.



아내는 곧바로 니콜라스 윈턴에게 이게 뭐냐며 물었고, 니콜라스 윈턴은 아내의 끈질긴 질문에 그때 당시의 자신이 했던 일을 전부 털어놓았다. 그리고 아내에게 이젠 시간이 많이 지났고, 아이들도 다 기억하지 못한다면

그냥 버리라고 했다. 그러나 그의 아내는 말도 안 된다며 이 스크랩북은 이 아이들의 삶이나 마찬가지라며 반대했다.
아내는 기자에게 이 사실을 제보하였고, 이 이야기는 방송국에까지 전해지게 된다. 1988년 그해, 영국 BBC의 TV 프로그램 'that's life'에 니콜라스 윈턴은 방청객으로 초청받아 방청하러 갔는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이렇게 방송에 나가게 된 후에야 자신이 선행이 전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방송이 나간 뒤로 전세계 각지에서 그에게서 생명을 구했던 아이들로부터 연락을 받게 되었다. 그가 구한 669명의 아이들은 가족을 이루고 후손까지 6000여명으로 불어났다. 그는 방송에서 자신의 선행을 밝히면서도 끝까지 겸손한 자세를 유지하며, 자신을 낮추었고, '내게는 과분한 찬사이며 나는 쉰들러가 아니다'라고 말하였다.

그 후 니콜라스 윈턴은 2003년 영국에서 기사 작위를 받았으며, 그 후 질병없이 건강하게 살다가 106세가 되던 2015년 7월 1일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잠을 자다가 별세했다.


사람의 목숨을 단 1명만 구해줘도 지인들에게 말하며 자랑하는 이야깃거리인데, 669명의 아이들의 목숨을 구하고도 50년 동안 입을 열지 않은 니콜라스 윈턴의 마지막 기차에 탔던 250명의 목숨을 지키지 못한 그의 죄책감이 얼마나 컸는지 느껴진다.

                                      

                                         -박종국의 일상 다반사 블로그에서 옮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