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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영혼을 죽이는 설교, 살리는 설교

배남준 2019. 1. 22. 20:03



[특별기고] 영혼을 죽이는 설교, 살리는 설교 기사의 사진
하나님은 인간에게 직접 말씀하지 않고 주의 종들을 세워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 전하는 방법을 즐겨 사용하신다. 예전엔 선지자가 있었고 지금은 목회자가 있다. 선지자 중에 하나님의 뜻대로 말하지 않고 사사로이 전한 자는 죽임을 당했다. 목회자들은 자기 뜻대로 설교를 사사로이 전해도 되는가.

예를 들어 어떤 목회자가 종교다원주의 지지자로서 모든 종교에 다 구원이 있다고 믿고 ‘하나님 외에 부처님이나 알라를 믿어도 결국 모두가 구원을 받는다’고 설교했다고 하자. 구약의 선지자들을 살펴보면 이 목회자는 거짓 선지자로 취급돼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죽어갔을 것이다.

목회자들의 설교는 인간 만사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해 전해야 한다. 의사는 수술에 대한 도의적인 책임과 법적인 책임을 동시에 진다. 오른쪽 다리를 절단해야 하는데 왼쪽 다리를 절단하는 잘못을 했다면 물질적 보상과 함께 법적인 처벌을 받는 게 상식이다.

목회자의 설교는 영혼의 수술이다. 영혼의 수술을 하는데 하나님 나라의 법에 따라 모든 처벌에서 면제받는다고 생각한다면 현대판 면죄부와 같은, 매우 잘못된 생각이다. 목회자 설교의 무오류를 주장하는 것과 같은, 무책임한 주장으로 이어진다. 사도 바울은 그의 여러 서신에서 복음을 흔드는 설교자들을 책망했다.

교회사를 보면 기독교가 쇠퇴하고 교회가 죽어갈 때 무지한 거짓 설교자가 많이 일어났다. 중세시대 천주교는 연옥설을 만든 뒤 면죄부에 대한 거짓 설교를 통해 가난한 농민들의 재산을 빼앗았다. 베드로성당을 호화롭게 짓는 데 이를 썼다. 거짓 설교자들을 능숙한 말 기술의 전위부대로 앞장세운 것이다.

요즘은 불교와 천주교와 기독교의 경계가 사라진 설교가 예배당에서 거침없이 울려 퍼진다. 복음이 사라진 설교, 구원이 사라진 설교, 죄인이 대가 없이 예수로 인해 용서받은 은혜가 사라진 설교, 세상적인 예화와 윤리의 설법이 불교계에만 머물지 않고 기독교의 설교까지 오염시켰다.

어떤 목사가 다윗과 골리앗에 대해 신나게 설교했다. “다윗은 골리앗과 맞설 수 없는 작은 자였다. 골리앗처럼 놋 갑옷과 놋 방패와 놋 투구와 놋 창도 없었다. 하지만 목동이 무장할 수 있는 물맷돌을 갖고 골리앗을 물리쳤다. 우리가 가진 게 보잘것없어도 잘 이용하면 갑옷으로 무장한 골리앗도 무너뜨릴 수 있다. 작은 물매와 흔한 돌을 갖고도 매일 돌리고 돌려서 연습을 잘하면 큰 골리앗도 이길 수 있다. 날마다 돌리고 또 돌려서 달인이 될 때까지 50만번을 돌리면 하나님도 어쩔 수 없이 우리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날마다 돌리고 돌리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

이 말씀을 듣고 김 집사는 자신의 보잘것없는 인생에서 물맷돌을 찾았다. 스스로 가진 것을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둘러보니 자신은 가요 중에 트로트를 잘 불렀다. 설교에 큰 은혜를 받은 그는 날마다 트로트를 연습해 50만번을 연습하면 자신의 인생에 복된 날이 올 것이라 굳게 믿었다.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날마다 트로트를 부르며 돌리기 시작했다.

다른 설교자는 다윗과 골리앗의 본문을 놓고 하나님의 관점에서 설교했다. “커다란 골리앗이 당시 최신의 기술인 놋으로 만든 전신갑주를 입고 놋 창과 칼로 완전 무장하고 지극히 천하고 어리고 작은 다윗과 불쾌하게 싸웠다. 하지만 다윗은 오히려 사울 왕의 갑옷을 던져버렸다. 그는 하나님의 갑옷을 입고 하나님의 이름을 무기 삼았다. 예리한 칼은 없었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을 갖고 도무지 무기라고 할 수 없는 작은 돌로 전쟁터에 나가서 골리앗을 망설임 없이 단번에 쓰러뜨렸다. 다윗의 무기는 물맷돌이 아니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이 최강의 무기였다. 다윗은 그 물맷돌로 한 방에 중무장한 골리앗을 쓰러뜨렸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여호와 하나님으로 무장하면, 칼과 창으로 학벌로 금수저로 무장하지 않아도 초라한 인생일지라도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해주시기 때문에 다윗처럼 인생의 커다란 난제들이 골리앗처럼 매일 다가와도 단번에 그 문제들을 쓰러뜨릴 수 있다. 하나님을 찬양하며 자신과 가족을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구원할 수 있는 주의 자녀가 될 수 있다.”

이런 설교를 들은 최 집사는 그날부터 학벌로, 직장과 혈연으로, 돈과 건강으로 무장하려 했던 지난날을 눈물로 회개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만이 자신의 인생에서 유일하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가장 강력한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인생의 어떤 문제도 쓰러뜨릴 수 있는 다윗과 같은 신앙인으로 거듭나기 위해 하나님의 이름의 권세와 능력 앞에 더욱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로 크게 변화됐다.

김 집사와 최 집사는 똑같은 본문에 대한 다른 관점의 설교를 들었다. 김 집사의 영혼은 이 땅에서 방황하다가 결국 하나님을 모르고 지옥으로 들어갔고 최 집사의 영혼은 이 땅에서 움츠리고 살았지만 올바른 진리의 설교를 듣고 전능한 하나님을 만나서 그 하나님을 신뢰하고 잘 믿다가 영원한 천국으로 들어갔다.

요즘 목회자들은 영혼의 수술가이기를 포기하고 불교의 설법과 유사한 설교를 하면서 자신의 설교를 제대로 듣지 않는 교인들을 책망하고 꾸짖기에 바쁘다. 유럽 교회가 망한 길이다.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의 도덕과 윤리와 율법과 처세술로 설교를 무장하고 예배당을 짓고 프로그램을 돌리고 교인들을 모으는 데 혈안이 돼 있다. 이렇게 모인 교인들을 세상의 달인으로 만들기에 급급한 설교를 하고 있다.

목회자는 자신의 설교가 얼마나 급하게 바뀌어야 하는지 그 긴박성을 체감하지 못한다. 하나님께서 ‘너에게 말씀의 검을 주겠노라’고 급하게 말씀하셨지만 ‘일단 예배당을 짓고 봅시다’ ‘일단 프로그램 끝나고 봅시다’ ‘천천히 은퇴한 후에 시간 되면 그때 봅시다’라고 한다.

목회자에게 가장 중요한 ‘영혼을 살리는 설교’라는 도구가 하나님을 목적으로 삼지 않는다면 그 설교를 들은 자들은 모두 죽임을 당하는 대살육이 일어난다. 반대로 하나님을 전하는 도구가 된다면 하나님께 영광이고 성도들의 영혼을 풍성히 살찌우는 영혼의 큰 축제가 일어난다. 한국교회는 설교에서 복음도 구원도 예수도 사라져 유럽교회처럼 처참하게 침몰하고 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다시 살아나기를 간절히 바란다.

‘광해’라는 영화에 나온 대사가 설교자의 심금을 울린다. “임금이라면, 백성이 지아비라 부르는 왕이라면 빼앗고 훔치고 빌어먹을지언정 내 그들을 살려야겠소. 그대들이 죽고 못 사는 사대의 예보다 내 나라 내 백성이 열 갑절, 백 갑절은 더 소중하오.”

영혼의 수술가라는 설교자는 자신에게 맡겨진 양떼를 살리기 위해 올바른 진리의 말씀 설교로 예수님을 전해서 교인들을 살려야 한다. 목회자는 가난하고 무시당하고 빌어먹을지언정 영혼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온몸을 불사르는 자가 돼야 한다. 죽어가는 영혼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피눈물이 있어야 한다. 대형교회와 대형목회만 꿈꾸는 헛된 꿈과 비전과 멋보다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는 일이 열 갑절, 백 갑절 더 소중한 일이 돼야 한다.

영혼의 수술가이고 영적인 목자로서 교인들이 말씀의 기갈을 느껴서 죽어가는데도 바쁘다고 핑계 대는 것을 하나님은 얼마나 관대하게 이해해주실까. 천국과 지옥이 있고 상과 벌의 심판이 있다는 성경 말씀을 갈아엎지 않고 부정하지 않는다면 쓰러져가는 한국교회와 죽어가는 교인들을 위해 목회자에겐 영혼을 살리는 것보다 더 소중하고 급한 일이 없어야 한다.

다윗과 골리앗을 제 마음대로 설교하는 것은 목회자의 결정이고 영혼을 죽이는 설교와 살리는 설교에 대해서 심판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결정이다. 언젠가 다시 삼천리 금수강산에 예수의 복음이 울려 퍼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분들에게 이 글을 드린다.

                                                                           서대천 목사(홀리씨즈교회)

                                                                           [출처] - 국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