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의 역사는 교회의 역사보다 길다. 찬양이라는 말이 성경에 처음 등장한 것은 노아가 셈을 축복할 때다.(창 9:26) 노아는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라고 시작하며 그의 아들 셈과 야벳을 축복한다. 성경은 개인적인 찬양과 집단적인 찬양을 모두 말씀하고 있다. 노아의 찬양과 같은 개인적인 찬양 외에 이스라엘 민족 전체의 찬양이 등장하는 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의 오랜 노예생활을 청산하고 출애굽할 때다.(출 15:1∼22)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승리의 노래’를 부를 때는 악기도 등장하고 미디암과 여인들은 소고를 치며 춤을 췄다.(출 15:20) 이후 이스라엘의 찬양은 다윗 시대에 들어와 절정기를 맞게 됐다. 다윗은 레위인을 중심으로 찬양대를 조직했으며(대상 6:31∼48), 다윗 스스로 90여곡의 찬양을 지었다. 초대 교회에서도 찬양은 예배의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라”(엡 5:19)고 권면하고 있다.
찬양은 신앙고백이며 그 자체로 기도이다. 중세시대 수도사들은 악기나 반주가 없는 찬양을 했다. 이것을 찬트(Chant)라고 한다. 그중에서 9∼10세기 가장 잘 알려진 것이 그레고리안 찬트이다. 수도사들은 항상 찬트를 읊조리며 수도 생활을 했고 찬트는 그들의 기도이며 신앙고백이었다. 교회의 역사에서 찬양이 예배의 부수적인 요소가 된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에서는 ‘준비 찬양’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보통 ‘준비 찬양’은 예배가 시작되기 전에 부르는 찬양을 일컫는다. 그러나 종종 계획에 없던 막간의 시간이나 자리를 정돈할 때, 준비한 순서가 늦어질 때 시간을 메우기 위해 ‘준비 찬양’을 부른다. 그리고 순서가 준비되면 부르던 찬양을 다 부르지도 않고 중간에 끊어 버리기도 한다. 찬양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무엇을 준비하기 위한 찬양인지를 분명히 생각해야 한다.
찬양은 예배의 근본적인 행위이며 속성이다. 찬양은 결코 예배의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것이나 준비하기 위한 도구가 될 수 없다. 흔히 쓰고 있는 ‘준비 찬양’이라는 말 대신 ‘예배 전 찬양’이라는 말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찬양은 그 무엇보다 시간을 때우기 위한 찬양이 아니라 곡조 있는 기도로 또한 예배 전 모든 성도의 신앙고백으로 불러야 한다.
이상윤 목사(한세대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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