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신앙칼럼,뉴스,시,그림

“번역의 노동강도, 매일 입시생 같지만 저자와 기독인 독자를 잇는 일에 보람”

배남준 2018. 5. 27. 06:50
“번역의 노동강도, 매일 입시생 같지만 저자와 기독인 독자를 잇는 일에 보람” 기사의 사진
번역가 전의우(왼쪽), 박규태 목사가 지난 21일 서울 마포구 북카페 ‘산책’에서 기독출판 번역가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신현가 인턴기자


지난 3월, 페이스북 ‘번역이네 집’에 제1회 이음 번역대회 알림 공고가 떴다. 미국 작가이자 설교가인 프레더릭 비크너의 원고 중 일부를 한글로 번역해 응모하는 대회. 기독교 출판계에서 그동안 찾아볼 수 없던 새로운 시도였다. 번역가 모임 ‘이음’에서 내놓은 아이디어를 출판사 비아토르(대표 김도완)가 받아서 후원하며 성사됐다.

기독 번역대회를 개최한 이유

지난 21일 대회 수상자를 발표한 날, 서울 마포구 홍대의 한 북카페에서 이음 모임의 회원이자 목사 출신인 전의우(53) 박규태(52) 두 번역가를 만났다. 박 목사는 “원고 마감 일주일 전까지 하나도 안 들어와서 포기하려 했는데 마지막 주에 17명이 응모했다”며 “기대 이상의 원고들이 들어왔다”고 말했다. 두 사람과 오현미 홍종락 이지혜 전경훈까지 총 6명의 번역가가 블라인드 심사를 통해 수상자 3명을 선정했다. 시상식은 25일 열린다.

책 읽는 사람은 갈수록 줄고 있고, 번역은 구글번역기 같은 인공지능이 맡게 되리란 암울한 전망이 나온다. 박 목사는 “출판계가 어려우니 번역자든 저자든 편집자든 젊은 사람들은 안 하려고 한다”며 “아무리 인공지능 번역이 인간을 대체한다 해도 끝까지 대체 불가능한 측면이 있고, 그래서 우리는 다음세대 번역가들이 나와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업 번역가의 길에 들어서긴 쉽지 않다. 출판사 편집부에 이력서를 담아 이메일을 보내는 데도 용기가 필요하다. 번역 테스트 기회를 받기도 어렵다. 박 목사는 “이번 번역 대회는 공정한 심사를 통해 번역계에서 오래 일한 사람들이 인정해준 것인 만큼 이를 자격증 삼아 번역계에 진출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며 “후배들에게 그런 길을 열어줄 수 있다면 우리가 헛되게 산 건 아니지 않으냐”며 웃었다.

“번역 노동, 입시생의 삶과 같아”

26년간 번역가의 길을 걸은 전 목사는 최신작인 ‘달라스 윌라드의 부족함 없는 삶’ 등 170여권을 번역했다. 존 파이퍼, 마틴 로이드 존스 등 해외 주요 목회자들의 작품이 그의 손을 거쳤다. 2002년 전업 번역가가 된 박 목사는 화제작 앤터니 티슬턴의 ‘두 지평’ 등 어렵기로 소문난 소위 ‘벽돌책’을 다수 번역했다. 46권이 출간됐고 특히 영국의 알래스터 맥그라스 교수의 저서 여러 권이 눈에 띈다.

번역가의 일상은 어떨까. 매일 정해진 분량을 번역하느라 하루 종일 책과 씨름한다. 대다수 번역가가 홀로 집에서 작업한다. 박 목사는 “번역은 가장 치밀한 독서라고 생각한다”며 “외국 도서를 한국어로 번역하면서 누구보다 세밀하게 한 문장 한 문장을 들여다보며 읽는다”고 했다. 전 목사는 “아무리 읽어도 한글로 옮겨 쓸 수 없으면 저자 머릿속을 상상하고 구글 등으로 정보를 검색하며 엄청나게 궁리를 해야 한다”며 “노동 강도로 보면 매일 매일이 입시생의 삶과 같다”고 했다.

요즘엔 깐깐한 독자도 적잖다. 오타나 오역이 발견되면 곧바로 연락이 온다. 박 목사는 “소위 ‘원서와 대조해 봤습니다’로 시작하는 글이 제일 무섭다”며 “반대로 책을 번역해준 덕분에 공부 기간이 단축됐다고 인사하는 유학생, 어려운 책 쉽게 번역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받을 때 행복감을 느낀다”고 했다.

“기독교 출판 번역 관심 절실”

보람도 크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한 달에 23∼25일 동안 매일 평균 200자 원고지 30∼40매를 번역해야 어느 정도 먹고살 수 있다. 하지만 10년째 번역 원고료는 동결 상태고, 베테랑 번역가도 1년에 대졸 초임 수준의 연봉 벌기가 쉽지 않다. 이들은 5년 전부터 SNS로 소통하기 위해 페이스북에 ‘번역이네 집’을 만들었다. 오프라인에서도 정례 모임을 갖고 있다.

기독 번역가들은 신학 발전과 목회 쇄신을 위해 기독교 출판 번역에 대한 지원 필요성을 제기했다. ‘번역청’이나 ‘번역가 하우스’ 같은 번역인력을 위한 일에 한국교회나 크리스천들의 관심을 요청했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