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철규 집사는 얼마전 오른손 검지를 다쳐 한동안 그림을 그리지 못했지만 최근 구입한 태블릿 덕분에 다시 작업이 가능하게 됐다며 기쁜 마음을 전했다. 태블릿이 손가락에 가해지는 압력을 상당히 줄여주기 때문이다. 그 전까지는 모든 작업을 종이에 직접 그려 스캔하는 방식으로 해왔다고 한다. |
만화가 최철규 집사(44살, 영동중앙교회)가 아내와 딸과 함께 살고 있는 경기도 광주의 한적한 마을을 찾은 날은 유난히 하늘이 맑고 깨끗했다. 청명한 가을하늘만큼이나 깨끗하고 순수한 웃음과 따뜻한 목소리를 가진 최 집사를 만나 은혜로운 수다를 떨다보니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마냥 앉아서 간증을 나누고 싶은 생각이 든다.
하도 열심히 작품에 매달리다 보니 그림을 그리는 오른쪽 검지 인대가 파열되는지도 몰랐다는 그를 보니 ‘미련하다’는 생각보다 ‘은혜롭다’는 마음이 앞선다. 이번 기사는 ‘만화 천로역정’을 그리며 “이제 절반가량 왔다”고 말하는 최 작가를 응원하기 위해 쓰였다. 또한 글을 통해 기자가 받은 ‘은혜’의 십분의 일이라도 독자들에게 전해진다면 그보다 기쁜 일이 없으리라 생각된다.
데뷔작은 성인만화
지금은 각종 기독포털사이트에 간증 만화와 성경 만화를 그려 올리며 은혜를 나누는 일에 앞장서고 있지만 그의 데뷔작은 성인만화였다. 모태신앙으로 자랐지만 신앙은 그의 삶에서 그다지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머리 속이 음란으로 가득 차 있었다”고 회상했다. 음란한 것을 더 잘 그리기 위해 수많은 야한 그림과 사진, 동영상을 보면서 인체 연습에 몰두했다. 선정적인 구도가 나오면 스캔을 받아 놓고 그 그림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그리고 또 그렸다.
“제 목표는 선배작가보다 더 야하게 그리는 것이었어요. 늘 목표만을 생각하다보니 음란한 것들이 다 내 것이 되더군요. 그래서 어느 정도 제가 원하는 수준의 그림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내 머리 속이 음란의 그림으로 충만하니 그림 뿐 아니라 모든 것이 다 음란으로 표현됐습니다. 그게 너무 좋았어요. 책을 보지도 않고도 인체를 외우니 여러 구도에서 그림이 그려지더군요. 당시에는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그림만 그렸습니다”
갑자기 찾아온 절망의 병
이런 날들이 계속되는 가운데 군복무를 마친 1998년 이현세 작가 문하에서 ‘천국의 신화’라는 만화를 그리던 때였다. 화장실에서 소변을 볼 때나 계단을 내려갈 때 자신도 모르게 쓰러져 기절하는 일이 생겼다. 급기야 각혈을 하기 시작했고, 가슴을 찢어내는 통증이 계속됐다. 몸살이겠거니 하고 병원에 들렀는데 의사로부터 충격적인 말을 듣게 된다. 오른쪽 폐에 구멍이 나서 공기가 꽉 차있으니 병원에서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것. 당장 수술을 받지 않으면 일주일도 살지 못한다는 청천병력같은 말에 그는 큰 실의에 빠지게 된다.
큰 병원으로 옮겨 폐에 튜브를 박는 수술을 받고 그날로부터 진통제와 각가지 약물, 산소 호흡기에 의존해 겨우 숨을 쉬는 지경이 됐다. 28살, 건강을 과신했던 그는 고무호스를 가슴에 박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초라하고 불쌍하기 그지없었다.
“고무호스를 가슴에 박고 공기를 빼내도 폐는 정상으로 돌아오기는커녕 호수를 타고 노란 고름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기흉이 농흉으로 변했습니다. 한마디로 폐가 썩어가고 있었어요. 그렇게 한 달을 누워있었지만 차도가 없었습니다.”
결국 대수술이 결정됐다. 드릴로 가슴을 열고 오른쪽 폐를 절개하기로 한 것. 의사는 최 집사의 어머니에게 “수술 뒤 6시간을 버티면 5년을 더 살고 못 버티면 하늘나라로 간다”고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당부했다.
최 집사는 당시 심정을 ‘마치 사형수가 목메는 틀에 서기 전까지의 두려움’이라고 표현했다. 수술을 8시간 앞두고 잠을 이루지 못한 그는 병원 2층에 있는 예배당을 기어가다시피 해서 들어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하나님. 이번에 저를 살려주신다면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겠습니다’라고 기도를 드리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는데 입에서 더 심하게 피가 뿜어 나오고 기침이 나와 숨을 쉴 수 없었습니다.”
썩은 폐를 되살리신 하나님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수술용 링거를 꼽은 채 수술실로 내려가 엑스레이를 한 번 더 찍고 마취를 하려는 순간 수술실로 들어오는 젊은 의사가 마취를 하려는 의사를 저지했다. “선생님 이 사진 좀 보세요. 폐가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차디찬 수술대에서 그는 이런 기적과 같은 일이 자신에게 일어났다는 사실에 어안이 벙벙했다. 의사들도 다들 놀란 가운데 급하게 기침을 해보라고 했다. 그런데 기침을 해도 가슴에 통증이 크게 오지 않고 편하게 숨이 쉬어지고, 또 고무호스에 연결된 통에서도 기포가 올라오지 않았다. 그때서야 의사는 수술을 취소하고 최 집사를 병실로 올려 보냈다.
“간의 경우 절개를 하고 시간이 지나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지만 폐는 썩으면 새 살이 자라나는 장기가 아니기에 의사들은 더 지켜보자는 분위기였어요.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었죠. 그렇게 8일이 지나서야 한 달 넘게 박혀있던 고무호스를 뽑을 수 있었습니다. 이후 병원에 더 머물며 회복을 하던 어느 날 성경을 읽다가 바닥에 떨어트리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떨어져 펼쳐진 성경책을 집어보니 시편 3장 3절 말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여호와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 내가 나의 목소리를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 성상에서 응답하시는 도다.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그 자리에서 최 집사는 대성통곡을 하며 하나님께 감사 기도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추한 죄를 사하여 주시고 천국 백성으로 만들어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부족한 저를 사용하시고자 수많은 연단을 통해 주님이 원하시는 길로 이끌어 주셨음을 고백합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그리며 살겠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살겠습니다.”
▲ 최 집사가 만들고 있는 '만화 천로역정.' 만화에는 현대적인 감각뿐 아니라 한국적 정서도 상당부분 가미됐다. |
좁은 길 걸어가며 그리는 천로역정
이후 최 집사는 기독교포털 사이트에 ‘작은 나의 고백’이라는 간증 성격의 만화를 그려 올리기 시작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높은 조회 수를 올리며 만화를 각 교회 주보에 담아 나누고 싶다는 요청이 이어졌다. 경제적으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그는 꾸준히 작품을 올려 은혜를 나눴다. 2년 전부터는 함께 일하던 이현세 작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홀로서기에 나섰다. 집도 조용한 경기도 광주로 옮겼다. 온전히 ‘만화 천로역정’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원래는 5부작으로 계획했던 작품이 출판사 사정에 의해 3부작으로 축소되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작품을 최고의 퀄리티로 완성하겠다는 각오다. 모든 면을 컬러로 제작하다보니 원고료보다 제작비가 더 많이 드는 세상 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작업이지만 그의 의지는 확고하다.
“이현세 선생님께 작품을 보여드렸더니 ‘미쳤냐’고 하시더라고요. 이렇게 해서 뭐가 남느냐는 거죠. 그런데 저는 ‘이거 해야됩니다’ 하고 대답했어요. 이현세 선생님은 '언제라도 돌아오라'고 하시지만 선생님 집에 있으면(최 집사는 이현세 작가의 밑에서 일하는 것을 ‘선생님 집에 있는 것’으로 표현했다) 경제적으로는 안정적일 지 모르지만 천로역정에 최선을 다할 수 없을 것 같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아내와 작품과 진로를 놓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이 작품에 대한 거룩한 부담감을 주십니다. 그러니 어쩌겠어요. 순종해야지요.”
최 집사와 이야기하다 보니 최 집사의 얼굴에서 짐을 지고 좁은 길을 걸으며 천성을 향해가는 주인공 크리스천의 모습이 보인다. 그 말에 최 집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천로역정에는 많은 등장인물이 나옵니다. 주인공 크리스천을 비롯해 고집불통, 변덕쟁이, 재물, 절망, 속이는 자 등… 처음에는 제가 크리스천(주인공)인줄 알았는데 계속 그리다보니 그 등장인물들 모두가 제 모습이더군요. 천로역정은 특별한 작품입니다. 한국 근대사의 첫 번역소설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성경 다음으로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책이 기도하죠. 제 작품을 통해 많은 성도들이 크리스천으로 살아가는 삶이 무엇인지 발견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작품이 제 생전에 빛을 보지 못하더라도 책으로 남아 누군가의 신앙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면 저는 그보다 좋을 것이 없습니다.”
손동준 기자 djson@igoodnew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