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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도박하라 - 하나님 쪽에 모든것 걸어라!

배남준 2018. 1. 12. 21:23


[크리스천 인문학] 하나님에게 몰빵한 천재적 수학자 파스칼 (上) 기사의 사진
 
도박하라∼ 하나님 쪽에 모든것 걸어라!
 
“자, 신이 존재하는지, 아니면 존재하지 않는지, 어디에 내기를 거시겠습니까?”
 
블레즈 파스칼(Blaise Pascal·1623∼1662)은 우리에게 도박을 제안한다. 도박은 확률게임이다. 잘 알려진 논리학의 오류 중 도박사의 오류라는 게 있다. 도박사의 오류는 “모든 사건은 앞에 일어난 사건과 독립되어 있다”는 확률이론의 가정을 무시하는 데서 벌어지는 오류이다. 예를 들면, 동전 던지기에서 앞면이나 뒷면이 나올 확률은 2분의 1이다. 그런데 앞면이 5회 연속으로 나오면 그 다음 뒷면이 나올 확률이 높아질 것으로 착각하는 오류이다. 그런 착각 때문에 다음 내기에서 뒷면에 베팅을 하게 된다. 그러나 뒷면이 나올 확률은 처음 판과 같이 반반이다. 도박사의 오류를 통해 도박의 위험성을 깨닫는다면 다음에는 대박이 터질 거야 하는 헛된 환상을 품지 않게 될 것이다. 그리고 도박으로 패가망신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데 파스칼은 우리에게 신을 두고 도박을 하라고 권한다. 그는 이 도박에서 신에게 우리 인생을 ‘몰빵’하라고 권한다. 신이 존재한다면, 영생과 지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그가 하는 말을 들어보자. 

“그렇다면 이 점을 음미하여 ‘신은 있는가 혹은 없는가’를 말해 보도록 하자. 그러나 우리는 어느 쪽으로 기울어질 것인가? 이성은 여기서 아무런 결정을 할 수 없다. 거기에는 우리를 격리시켜 놓는 그지없는 혼돈이 있을 뿐이다. 이 무한의 거리가 끝나는 곳에서는 한 판의 도박이 벌어지고 있다…. 신이 있다면 앞면을 취하면서 득실을 달아보고 두 가지 경우를 생각해 보자. 만약 당신이 이긴다면 당신은 모든 것을 딸 것이다. 져도 아무것도 잃지 않는다.” 

파스칼은 도박을 통해 신을 믿어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 논증하고자 했다. 그에 따르면 우리가 신이 존재하는 쪽에 걸 경우 정말 신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신을 믿었기에 영생과 지복을 얻게 된다. 만약 우리가 신이 존재하지 않는 쪽에 걸 경우 정말 신이 존재한다면, 그때는 신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신이 존재하는 쪽에 걸었는데도 정말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떠한 일이 벌어질까? 파스칼은 이렇게 대답한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아무런 영향도 없을 것이다. 따라서 신을 안 믿을 이유가 없다. 신을 믿는다고 해서 손해 볼 것이 전혀 없고, 오히려 영생과 지복이라는 대박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파스칼은 신을 믿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의 문제를 왜 도박의 내기로 비유한 것일까? 그에 의하면 신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물음에 대해 우리 인간의 이성은 전혀 대답할 수 없다. 이성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 단계는 기껏해야 이성이 대답할 수 없는 무한한 것들이 존재한다는 인식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이성을 초월한 신의 존재를 인간의 이성이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파스칼이 생각하는 하나님은 합리적으로 설명 가능한 신, 즉 ‘철학자의 신’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 이해하기 어려운, 신비스러운 신이다. 그 신은 성경에서 말하는 신이다. 그러기에 파스칼은 신의 존재 문제를 ‘도박판에서의 내기’를 통해 설명했다. 그런데 파스칼이 이 ‘내기’에서 신이 존재하는 쪽을 선택해야 한다는 논증 과정만을 놓고 보면, 그가 매우 합리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파스칼은 수학의 천재였다. 수학은 합리성의 학문이다. 그가 수학에 이끌린 것은 수학이 세계에 대한 합리적인 질서 원리와 구조를 이해할 수 있는 학문이었기 때문이다. 11세 때 그는 식탁에서 수저가 그릇에 부딪치는 소리를 듣고 ‘소리의 전파에 대한 논고’라는 논문을 썼다. 그리고 12세 때 유클리드 기하학 제1권 32정리를 혼자서 찾아냈다. 아버지는 아들의 놀라운 재능을 발견하고, 아들을 당시 유명한 학자들 모임인 메르센느 신부가 주도하는 모임에 데리고 갔다. 이곳에서 어린 파스칼은 당대의 대수학자들과 토론을 했다. 이 석학들 중에는 페르마의 정리로 유명한 수학자 페르마도 있었다. 페르마는 후일 파스칼과 더불어 수학에서 확률 계산법을 창안해 내는 영광을 함께 가지게 된다.

파스칼은 16세 때 ‘원뿔곡선시론’을 발표했다. 물론 대수학자들의 찬사가 이어졌다. 19세 때 그는 계산기를 만들어 냈다. 파스칼의 아버지는 루앙지역의 관세 및 재산세 징수 감독관이었다. 그가 아버지의 세금 계산을 도와줄 생각으로 만든 이 계산기는 컴퓨터의 효시가 되었다. 파스칼은 수학뿐만 아니라 당시 부상하던 자연과학에도 일찍부터 매료되었다. 그는 진공의 존재 여부 등 수많은 물리학적 실험들을 행했다. 그리고 실험 결과를 대단한 자부심과 함께 대중에게 소개했다. 뛰어난 지적 재능을 가진 그는 항상 새로운 기획을 했다. 그가 사망하던 해에도 그는 파리의 여객 운송을 효율적으로 조직하기 위해 운송망을 새롭게 기획했고, 이에 대한 특허를 획득했다.

이렇게 누구보다 뛰어난 이성을 부여받고, 그 혜택을 본 사람인 파스칼은 정작 이성의 한계를 주장한다. 그는 인간이 향해야 할 최고 목표는 진리가 아니라 종교적 성스러움이라고 주장한다. 파스칼이 살던 시대는 오랜 종교 전쟁으로 인해 종교적 믿음이 쇠퇴하고, 이성과 합리성이 그 자리를 대신하던 시대였다. 이성과 합리성이 가져다 준 놀라운 발전을 가장 가까이에서 접한 그는 왜 그런 주장을 하게 된 것일까? 

파스칼이 볼 때 이성적 자연탐구의 결과로 우리는 새로운 수학적·자연과학적 세계상을 얻게 되었지만 그 새로운 세계상은 시간과 공간은 무한하고 인간은 유한하다는 것만을 알려 줄 뿐이다. 파스칼은 우리를 둘러싼 무한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나를 에워싸고 있는 우주의 무서운 공간을 본다. 그리고 나 자신이 이 망막한 넓이의 한 귀퉁이에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고 있지만, 왜 다른 곳이 아니고 여기에 놓여 있는지, 왜 내가 살기 위하여 나에게 부여된 이 근소한 시간이 나보다 앞에 있었던 모든 영원과 내 뒤에 잇닿아 있는 모든 영원의 어디에도 지정되지 않고 바로 이 시점에 지정되었는지를 모른다. 내가 도처에서 보는 것은 무한뿐이며, 이 무한은 나를 일개 미립자처럼… 둘러싸고 있다.” 

파스칼에 따르면 인간은 이성을 통해 이 무한한 우주에서 자신의 위치를 발견하고 의식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다. 그러나 그 이성은 인간 자신이 본래 어디에 속하는지 알려 줄 수 없다. 그 이성이 인간과 신을 분리해 놓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이성을 통해 세상을 모두 얻은 것처럼 기고만장하지만 파스칼이 볼 때 무한한 우주 속에서 인간은 쉽게 바스러질 수 있는 갈대와 같이 연약한 존재에 불과하다.

“인간은 한 개의 갈대에 지나지 않으며 자연 가운데서 가장 약한 자이다. 그러나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이다. 그를 짓눌러 버리는 데는 전 우주가 무장할 필요가 없다. 한 줄기의 증기, 한 방울의 물도 그를 죽이는 데는 충분하다. 그러나 우주가 그를 짓눌러 버릴지라도 인간은 그를 죽이는 자보다 더 한층 고귀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가 죽는 것과 우주가 자기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우주는 그것들을 하나도 모르기 때문이다.” 

생각하는 연약한 갈대의 모습에서 파스칼은 인간을 이성에 의해 더 이상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존재로 묘사한다. 인간은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하지만 우주에서는 가장 무기력한 존재에 불과하다. 그런 인간의 모습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절망뿐이다. 이 절망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인가?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선임연구원 

                                                                                                                                   [출처] - 국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