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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빛- 선교사 美 스탠리 존스 목사와 간디

배남준 2017. 12. 7. 13:10

 

스탠리 존스 목사 이미지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나는 찾지 않았습니다.

그분께서 나를 찾아 오셨습니다.

 

      1928년 미국 감리교회 총회는 “스탠리 존스” 목사님을 미국 감리교회를 대표하는 감독에 선출합니다. 성직자로서 최고의 영예이자 가장 무거운 짐을 지는 감독직에 선출된 그는 다음 날 감독직을 사양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겨주신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 선교사로 사역하던 인도로 돌아갔습니다.

그의 회고록 『순례자의 노래 (A Song of Ascents)』에 따르면, 목사로 부름 받았을 때 그가 받은 말씀입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요15:16)

 

      이 말씀에 근거해서 여든 아홉해를 사셨던 그리스도의 제자 스탠리 존스는 미국감리교회의 최고 지도자인 감독직을 미련없이 던져 버리고 자신의 인생을 통해서 맺어질 열매를 기대하며 다시 인도로 떠나 평생을 헌신합니다. 1959년 미국 감리교회는 스탠리 존스를 “사도 바울 이후 가장 위대한 기독교 선교사”로 인정합니다.

      1884년 1월 3일, 미국 동부 메릴랜드 주 볼티모어에서 태어난 스탠리존스는 열 일곱 살이된 1901년 순회 설교자인 로버트 베이트먼이 인도하던 집회에서 회심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1906년 에즈베리 대학을 졸업하고 다음 해에 스물 넷의 나이에 미국 감리교회 선교국에서 인도 선교사로 파송을 받습니다.

      인도의 최하층 계급 불가촉 천민들 한 가운데서 선교사역을 시작한 그는 인도에 와서 진정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됩니다. 그는 힌두교, 불교, 이슬람교를 공격하지 않고, 인도인들의 문화와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있는 그대로의 예수 그리스도, 서구의 체제와 문화를 벗어버린 예수 그리스도를 제시함으로써 인도 고위층 지식인들에게 영향을 줍니다.

      스탠리 존스와 삶을 나눈 인물이 바로 ‘인도의 성자’로 추앙받는 간디입니다. 잘알려진대로 간디는 기독교인이 아니면서도 기독교 정신을 잘 이해했고 자신의 평화운동에 그 원리를 적용한 분입니다. 그러나 간디는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중심으로, 믿음의 중심으로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간디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잘 알고 있으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했던 이유에 대해서 스탠리 존스는 『순례자의 노래』에서 명쾌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267-270). 스탠리 존스는 간디와 함께 한 아슈람(수양관)에서 열흘을 보내며 삶과 신앙을 나누었습니다. 그 때 한 수행자가 찾아와 간디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하나님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간디는 대답하기를 “하나님을 발견하고자 한다면, 어떤 사람이 바닷가에 앉아서 빨대 끝으로 물방울을 빨아올려 바다를 비우는 것 만큼이나 많은 인내심을 가져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수행을 통해서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견해입니다.

 

      스탠리 존스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그분께서 나를 찾으셨습니다. 회개와 신앙을 통해서 돌아서고 보니, 내가 그 분의 품안에 있었습니다. 종교들은 인간이 하나님을 찾아가야 한다고 가르치지만, 복음은 하나님이 인간을 찾아오신다고 가르칩니다. 하나님이 떼시는 한 걸음보다 멀리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회개와 신앙을 통해서 돌아서십시오. 그러면 그 분께서 당신을 찾아오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건네시는 한 마디의 긍정(Yes)보다 더 나은 것은 없습니다. 당신은 이제까지 ‘아니’라고만 말해왔습니다. 이제는 ‘예’라고 말해보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그 분 것이 될 것입니다.”

                                                                                               -이웅천 목사 서신에서 옮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