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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의 소리 - 오직 하나님께 영광

배남준 2017. 12. 1. 15:12

 

 

[시온의 소리] 오직 하나님께 영광 (Soli Deo Gloria) 기사의 사진 

 정민영 선교사

 

500년 전, 믿음의 선진들은 이른바 암흑기로부터 기독교 복음을 되살리는 개혁운동을 일으켰고 회복된 개혁신학의 튼실한 토대 위에 교회가 세워졌다. 유럽의 개혁운동이 본격화되면서 개혁자들과 로마교회 신학자들 사이에 수많은 신학논쟁이 불거졌고 이어지는 한 세기 동안 치열한 토론과 연구를 통해 지금 우리가 붙들고 있는 다양한 신앙고백이 완성됐다.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 벨직 신앙고백, 도르트 신앙고백,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등이 바로 그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Sola Scriptura) 개혁운동의 핵심은 한마디로 인본주의 무당종교로 전락한 중세교회로부터 하나님 중심의 신본주의 복음을 회복한 일이었다. 개혁자들의 신학을 요약한 다섯 가지 ‘오직(Sola)’ 중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 개혁신학의 근간이자 기독교 복음의 본질인 것이다.

개신교회에 입교하려는 성도에게 던지는 첫 질문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소요리문답 제1번인데 인생의 본분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라 대답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초자연적 힘을 끌어당겨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는 인본주의 종교와 달리 기독교는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피조물이 찬양하고 예배하는 신본주의 종교다. 기독교가 유독 예배를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고, 인본주의 종교에는 예배가 존재할 수 없다. 운 좋게 예수 만나 횡재했다는 식의 인본주의적 구원관이 팽배한 현대교회에서 진정한 예배를 찾아보기 어려운 이유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위해 그리스도의 피값을 지불하고 친히 세우신 교회가 종교 소비자들을 만족시키는 쇼핑몰이 되고 오직 하나님만 찬양하고 경배해야 할 예배의식이 사람을 높이고 인간의 욕심을 챙기는 푸닥거리가 되어서야 되겠는가. 그래서 요즘 젊은이들이 “교회가 교회되게 하시고, 예배가 예배되게 하소서”라는 찬양을 절규하듯 부르짖는 게 아닐까 싶다.

인간의 본분에 합당하게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해야 할 기도가 ‘이방인들이 구하는’(마 6:32) 인본주의적 기도로 대치될 때 주님께서 탄식하시며 신본주의적 기도(주기도문)로 교정해주시지 않았던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이 단지 우리가 구원받고 공짜로 천당 가는 복권이 아니라 구원받은 우리가 참된 예배자가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함이라는 신본주의 구원론의 회복(개혁)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가 되었다. 계시록은 유사 이래 구원받은 모든 사람 곧 모든 나라와 백성과 종족과 언어집단이 어린양 보좌를 둘러싸고 천군천사들과 함께 영원히 하나님을 찬양하는 장면을 역사의 클라이맥스로 묘사한다(계 5:9∼14, 7:9∼12).  

따라서 선교의 개념도 신본주의 관점에서 다시 정의해야 한다. 선교는 불쌍한 미전도종족을 구제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들도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되어 하나님께 합당한 예배를 드리기 위함이다. 백두대간에 거하는 산신령 정도로 하나님을 폄하해서는 안 된다. 만유의 주재이신 그분의 신분에 합당한 예배가 회복되기 위해 선교가 필요한 것이다. 존 파이퍼가 바르게 지적한대로 선교가 존재하는 이유는 하나님께 합당한 예배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삶은 비참한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정반대다. 하나님께서 원래 인간을 그분의 형상대로 지으셨다. 삼위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의 관계(코이노니아)처럼 우리도 그분을 사랑하고 우러르며 예배할 때 비로소 우리의 만족감과 행복이 절정에 달하도록 만드셨다. 그래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소요리문답 제1번은 인생의 본분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을 영원히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께 영광, 땅에는 평화’(눅 2:14).  

                                                                                                 정민영(성경번역선교회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