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LA 패서디나 지역 외곽의 ‘마운틴 뷰’ 공용묘지에 있는 알렉산더 피터스 목사 묘지. 오른쪽 사진은 아르메니안 성경을 번역한 선교사 묘지로 큰 묘석과 잘 관리된 모습이 같은 공용묘지에 있는 피터스 목사의 무덤과 대조된다. 박준서 교수 제공
청년시절 알렉산더 피터스 목사의 모습(왼쪽 사진). 두 번째 부인 에바 필드 여사, 두 아들과 찍은 가족 사진(오른쪽 사진). 한국기독교사연구소 제공
알렉산더 피터스 목사가 1898년 한글로 번역한 ‘시편촬요’ 표지.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즐겨 부르는 찬송가 ‘눈을 들어 산을 보니’(383장)와 ‘주여 우리 무리를’(75장)의 작사가 역시 알렉산더 피터스 목사다. 찬송가에는 한글명 피득으로 표기돼 있다. 한국기독교사연구소 제공
미국 LA 패서디나 지역 외곽의 '마운틴 뷰' 공용묘지 입구에 선 박준서 연세대 명예교수. 박준서 교수 제공
청년시절 알렉산더 피터스 목사의 모습(왼쪽 사진). 두 번째 부인 에바 필드 여사, 두 아들과 찍은 가족 사진(오른쪽 사진). 한국기독교사연구소 제공
알렉산더 피터스 목사가 1898년 한글로 번역한 ‘시편촬요’ 표지.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즐겨 부르는 찬송가 ‘눈을 들어 산을 보니’(383장)와 ‘주여 우리 무리를’(75장)의 작사가 역시 알렉산더 피터스 목사다. 찬송가에는 한글명 피득으로 표기돼 있다. 한국기독교사연구소 제공
미국 LA 패서디나 지역 외곽의 '마운틴 뷰' 공용묘지 입구에 선 박준서 연세대 명예교수. 박준서 교수 제공
“알렉산더 피터스 목사가 누구입니까. 한국인이 구약 성경을 읽게 해 준 은인이에요. 그런데 우리가 이 분을 잊어버리고, 이 분의 묘지도 방치한 채 살고 있어요. 한국교회가 이렇게 은인을 대해서야 되겠습니까?”
박준서 연세대 명예교수는 27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안타까운 심경을 토로했다. 그의 손에는 그가 직접 찾아낸 피터스 목사의 묘지 사진이 들려있었다. 사진 속 묘지는 누가 봐도 찾는 이 없이 방치된 쓸쓸한 무덤이었다.
알렉산더 피터스(Alexander Albert Pieters·한국명 피득, 1871∼1958) 목사는 처음으로 구약 성경을 한국어로 번역한 인물이다. 권서인(勸書人)으로 한국에 들어와 한글을 배운 지 3년 만에 번역한 ‘시편촬요’는 구약성경 한글번역의 효시로 꼽힌다. 러시아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러시아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일본 나가사키로 갔다가,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났다. 그에게 세례를 준 미국 선교사 이름을 따라 ‘피터스’로 개명한 뒤 미국성서공회가 파송한 권서인 자격으로 한국에 들어왔다.
구약학을 전공한 박 교수는 올해 초 미국 풀러신학교에서 연구교수 생활을 마칠 무렵, 로스앤젤레스(LA) 인근에 은퇴선교사 시설이 있음을 알게 됐다. 그 때부터 피터스 목사의 묘지를 찾기 시작했다. 박 교수는 “LA에 그렇게 많은 한인교회가 있는데, 목사들에게 물으니 피터스 목사 묘지는커녕 피터스 목사를 아는 사람이 없더라”고 했다.
그는 온라인 검색을 통해 피터스 목사가 패서디나 인근 ‘마운틴 뷰’ 공용묘지에 안장됐음을 확인했다. 미국에 머물던 아들과 함께 지난 7월 땡볕에 공용묘지를 찾아갔다. 관리사무실에서도 피터스 목사의 묘지 위치를 정확히 알지 못해 대략적인 구역만 알 수 있었다. 묘역 구석에 잔디와 잡초로 덮여있는 묘비를 손으로 일일이 닦으며 이름을 확인하다 드디어 구석에서 피터스 목사의 묘비를 찾았다.
구약을 한글로 번역했다는 사실은커녕, 그가 목사였음을 알려주는 ‘Rev’ 표시 하나 없는 무덤 앞에서 박 교수는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는 같은 공용묘지에서 찍은 다른 사진 한 장을 보여줬다. 아르메니안 성경을 번역한 선교사의 묘비로, 깨끗하게 잘 관리된 묘비 위에 공적이 표시된 표석이 함께 갖춰져 있었다.
박 교수는 “한국교회가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라틴어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한 마르틴 루터는 기리면서, 정작 우리에게 처음 구약성경을 전해준 피터스 선교사를 거의 망각하고 있었다”며 “성경 없이 한국교회가 어떻게 성장하고 부흥할 수 있었겠느냐”고 말했다.
박 교수는 평생 구약학을 가르쳐온 학자이자 선생으로서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피터스 목사를 모르는 한국의 목사들이 “선생님이 왜 안 가르쳐주셨냐”고 반문하더라는 것이다. 피터스 목사는 구약 성경뿐만 아니라 ‘눈을 들어 산을 보니’(383장) 등 우리에게 친숙한 찬송가의 작사자이기도 하다. 또 서울 강남구 세곡교회를 비롯해 내곡교회 등 10여개 교회를 개척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의 생애가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은 그의 가족 역시 한국에서 선교 사역 중 먼저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의 아내 엘리자베스 캠벨은 한국에 온 지 얼마 안돼 33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피터스 목사는 세브란스 병원에 의료선교사로 와 있던 에바 필드와 재혼했지만 그녀 역시 암으로 숨을 거뒀다. 결국 피터스 목사는 1941년 은퇴한 뒤 미국 패서디나 소재 은퇴선교사 주거시설에서 여생을 보내다 1958년 하나님 품에 안겼던 것이다.
박 교수는 한국에 들어온 뒤 제자들과 함께 이달 초 ‘피터스 목사 기념사업회’를 만들었다. 박 교수는 “현지 묘역에 피터스 목사의 업적을 담은 기념비를 세워주고 싶다”고 했다. 아울러 현재 양화진 묘역에 안장돼있는 캠벨 여사와 에바 필드 여사 묘역에도 피터스 목사의 업적을 알리는 공적비를 세우고 싶다고 했다. 피터스 목사 기념 강좌 등도 계획하고 있다.
박 교수는 “한국교회가 피터스 목사를 이 땅에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가 이룩한 공적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며 “성경을 사랑하는 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피터스 목사 기념사업에 동참해주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박준서 연세대 명예교수는 27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안타까운 심경을 토로했다. 그의 손에는 그가 직접 찾아낸 피터스 목사의 묘지 사진이 들려있었다. 사진 속 묘지는 누가 봐도 찾는 이 없이 방치된 쓸쓸한 무덤이었다.
알렉산더 피터스(Alexander Albert Pieters·한국명 피득, 1871∼1958) 목사는 처음으로 구약 성경을 한국어로 번역한 인물이다. 권서인(勸書人)으로 한국에 들어와 한글을 배운 지 3년 만에 번역한 ‘시편촬요’는 구약성경 한글번역의 효시로 꼽힌다. 러시아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러시아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일본 나가사키로 갔다가,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났다. 그에게 세례를 준 미국 선교사 이름을 따라 ‘피터스’로 개명한 뒤 미국성서공회가 파송한 권서인 자격으로 한국에 들어왔다.
구약학을 전공한 박 교수는 올해 초 미국 풀러신학교에서 연구교수 생활을 마칠 무렵, 로스앤젤레스(LA) 인근에 은퇴선교사 시설이 있음을 알게 됐다. 그 때부터 피터스 목사의 묘지를 찾기 시작했다. 박 교수는 “LA에 그렇게 많은 한인교회가 있는데, 목사들에게 물으니 피터스 목사 묘지는커녕 피터스 목사를 아는 사람이 없더라”고 했다.
그는 온라인 검색을 통해 피터스 목사가 패서디나 인근 ‘마운틴 뷰’ 공용묘지에 안장됐음을 확인했다. 미국에 머물던 아들과 함께 지난 7월 땡볕에 공용묘지를 찾아갔다. 관리사무실에서도 피터스 목사의 묘지 위치를 정확히 알지 못해 대략적인 구역만 알 수 있었다. 묘역 구석에 잔디와 잡초로 덮여있는 묘비를 손으로 일일이 닦으며 이름을 확인하다 드디어 구석에서 피터스 목사의 묘비를 찾았다.
구약을 한글로 번역했다는 사실은커녕, 그가 목사였음을 알려주는 ‘Rev’ 표시 하나 없는 무덤 앞에서 박 교수는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는 같은 공용묘지에서 찍은 다른 사진 한 장을 보여줬다. 아르메니안 성경을 번역한 선교사의 묘비로, 깨끗하게 잘 관리된 묘비 위에 공적이 표시된 표석이 함께 갖춰져 있었다.
박 교수는 “한국교회가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라틴어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한 마르틴 루터는 기리면서, 정작 우리에게 처음 구약성경을 전해준 피터스 선교사를 거의 망각하고 있었다”며 “성경 없이 한국교회가 어떻게 성장하고 부흥할 수 있었겠느냐”고 말했다.
박 교수는 평생 구약학을 가르쳐온 학자이자 선생으로서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피터스 목사를 모르는 한국의 목사들이 “선생님이 왜 안 가르쳐주셨냐”고 반문하더라는 것이다. 피터스 목사는 구약 성경뿐만 아니라 ‘눈을 들어 산을 보니’(383장) 등 우리에게 친숙한 찬송가의 작사자이기도 하다. 또 서울 강남구 세곡교회를 비롯해 내곡교회 등 10여개 교회를 개척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의 생애가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은 그의 가족 역시 한국에서 선교 사역 중 먼저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의 아내 엘리자베스 캠벨은 한국에 온 지 얼마 안돼 33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피터스 목사는 세브란스 병원에 의료선교사로 와 있던 에바 필드와 재혼했지만 그녀 역시 암으로 숨을 거뒀다. 결국 피터스 목사는 1941년 은퇴한 뒤 미국 패서디나 소재 은퇴선교사 주거시설에서 여생을 보내다 1958년 하나님 품에 안겼던 것이다.
박 교수는 한국에 들어온 뒤 제자들과 함께 이달 초 ‘피터스 목사 기념사업회’를 만들었다. 박 교수는 “현지 묘역에 피터스 목사의 업적을 담은 기념비를 세워주고 싶다”고 했다. 아울러 현재 양화진 묘역에 안장돼있는 캠벨 여사와 에바 필드 여사 묘역에도 피터스 목사의 업적을 알리는 공적비를 세우고 싶다고 했다. 피터스 목사 기념 강좌 등도 계획하고 있다.
박 교수는 “한국교회가 피터스 목사를 이 땅에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가 이룩한 공적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며 “성경을 사랑하는 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피터스 목사 기념사업에 동참해주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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