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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년만에 되살린 '포로수용소의 성자'

배남준 2017. 7. 24. 13:03

65년만에 되살린 ‘포로수용소의 성자’ 기사의 사진

한국전쟁 때 포로수용소에서 사역하다 쓰러진 맹의순의 제자들이 23일 서울 중구 남대문교회 역사사료관에서 그의 유품을 살펴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신현가 인턴기자

 

정연희 작가의 소설 ‘내 잔이 넘치나이다’의 주인공이자 20세기의 성자로 꼽히는 맹의순(1926∼1952)의 삶이 65년 만에 되살아났다. 그가 숨지던 해인 1952년 3개월간 써내려간 육필일기를 묶은 책 ‘십자가의 길’(홍성사) 출간을 통해서다. 1940년대 맹의순이 중등부 교사로 섬겼던 서울 남대문교회(손윤탁 목사)는 23일 출간기념 예배를 드리고 그의 삶을 기리는 시간을 가졌다.

한국전쟁 당시 조선신학교 학생이던 맹의순은 피난길에 올랐지만 미군의 오해로 부산 거제리 포로수용소에 억류됐다. 석방될 기회를 마다하고 포로들에게 복음을 전하다 26세에 생을 마감했다. 대중들에겐 1983년 발간된 소설과 2009년 동명의 창작오페라 주인공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존 인물로서의 그의 삶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65년 만에 빛을 본 일기를 통해 열악한 수용소 안에서 암살 위협을 받으며 전도를 하고 제대로 자지도 먹지도 못하면서 중공군 포로부터 보살피던 젊은 신학도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절망적인 수용소 생활 중에도 그는 “참말로 하나님은 평시나 환란의 날에나 늘 너무나 과분한 특별한 은혜로 싸매 주신다”고 고백했다.  


이날 예배에는 1940년대 맹의순에게 복음을 전해 들었던 제자 7명이 참석했다. 아흔 고개를 넘어섰거나 바라보고 있는 노인들이었지만 하나같이 맹의순의 모습과 가르침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남대문교회 배명준 목사와 함께 맹의순의 석방을 위해 애썼던 정창원 장로는 65년 전 면회 갔던 날의 풍경을 생생히 떠올렸다. “야외에 묘지가 있는 잔디밭에서 맹 선생을 면회했어요. 포로수용소 석방자 명단에 포함됐다고 했더니 ‘나는 안 갑니다’라고 하는 거야. ‘어디 가서 이보다 더 큰 전도를 할 수 있겠느냐고, 나를 여기 들어오게 한 것은 다 하나님의 뜻’이라며 한사코 거부했어요. 납득이 안 됐지. 나와서 사역하시면 되지 않느냐고 했지만 끝까지 완강했어요.”

맹의순과 광야교회에서 함께 사역했던 이희원 장로도 그의 삶을 가슴속 깊이 새겨놓고 있었다. 맹의순은 석방을 사흘 앞두고 중공군 포로들의 얼굴과 발을 씻겨주고, 시편 23편을 중국어로 읽어줬다고 한다. 그 중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는 대목을 큰 소리로 읽어준 뒤 쓰러져 미군 병원으로 후송됐으나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이 장로는 “미군 병원에서 혼자 쓸쓸히 소천하셨는데 임종을 못한 게 지금도 후회된다”며 “앞으로 순교자 맹의순의 삶을 나누는 역사가 계속 이어지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번 책의 발간은 지난해 이원식(서울 국일교회 원로) 목사가 맹의순의 육필일기 원본을 남대문교회 역사위원회에 기증함으로써 가능해졌다. 이 목사는 수용소에서 맹의순으로부터 복음을 듣고 불교도에서 개종한 사람으로부터 일기를 건네받았다고 한다. 영어와 일본어, 한문이 섞인 원고를 이 교회 손호인 집사가 한글로 번역했다. 신재의 원로장로가 일기와 교인들의 증언을 토대로 맹의순의 삶을 되살려냈다. 남대문교회는 내년부터 해마다 맹의순 기념장학생을 선발하고 그가 숨진 8월 둘째 주에 기념예배를 드림으로써 그의 삶과 신앙을 후대에 전해나갈 계획이다.

손윤탁 목사는 “많은 사람들이 맹의순의 삶을 소설로 먼저 접해 역사적 실존인물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지만 그의 순교는 생생한 우리의 역사”라며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한국교회가 그의 삶과 신앙을 알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글=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 사진=신현가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