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간증

호흡하고 있음에 하나님 감사합니다 -권욥 선교사 이야기

배남준 2017. 6. 3. 08:23

오늘 CBS  새롭게하소서-  선교사님의  삶을 통하여

이렇게 잘 살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사치스러웠습니다    


하나님 앞에 너무나 부끄럽습니다

오직 하나님 영광과 기쁨을 위하여

새롭게 인도하소서!




[이 땅의 희망지기-권욥 선교사] 내 한 걸음이, 복음 전하는 큰 도구 된다면… 기사의 사진

넘어지면 다리뼈가 부서질까, 목발에 의지한 채 조심스럽게 걷고 있는 권욥 선교사는 말한다. “이렇게 병든 몸이라도 주님께 드릴 수 있어 감사합니다.” 지난 19일 권 선교사는 “햇빛이 참 좋다”며 서울 여의도공원을 산책했다. 허란 인턴기자

                     


복음을 자유롭게 전할 수 없는 아시아의 C국에서 불편한 몸으로 장애인 사역을 하는 권욥(가명·44) 선교사는 ‘진정한 철인’ 같았다. 그는 다리뼈가 휘어지고 부서지는 선천성 희귀병에도 불구하고 대지진으로 폐허가 된 도시로 들어갔다. “아무것도 없는 병든 몸이라도 주님께 드릴 게 있어 감사하다”는 그의 고백이 마음을 울렸다. 낡은 목발에 의지한 채 환하게 웃는 권 선교사를 19일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만났다.

얼굴은 까맸고 옷차림은 허름했다. 한쪽 귀가 안 들리다 보니 그의 목소리는 인터뷰 중간 중간 점점 커졌다. 많이 지쳐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안식년을 맞아 지난달 말 귀국한 이래 제대로 쉬지 못했다. 아내 조에스더(가명·44) 사모가 아프고, 두 자녀도 이비인후과 치료를 받았다. 한국에 온 뒤로 계속 병원에 다니고 있다. 1주일간 홀로 묵상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중 지난 17일 조 사모의 조직검사 결과가 나왔다. 유방암. 수술을 받아야 한다. 정말 ‘욥’같이 끝없는 고난의 연속이다. 그럼에도 권 선교사는 말한다. “오히려 한국에 있는 동안 치료받을 수 있어 감사하지요. 또 하나의 기적을 만드는 안식년이 될 것 같은데요.” 권 선교사는 오랜만에 향긋한 녹음을 마음껏 들이키며 모처럼 기지개를 켰다. 

오직 하나님 만을 위해서 


높은 산세, 습한 날씨, 겨울엔 거의 해를 보기 힘들 정도로 선교지의 환경은 열악하다. 게다가 2008년 대지진까지 일어났다. “한국에서 선교훈련을 받는 중에 제가 파송될 그곳에서 지진이 발생한 겁니다. 막 기어다니기 시작하는 둘째아들을 보면서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지요. 하나님께 기도하는 중에 다시금 결단하게 됐습니다. ‘내가 거기에 가는 것은 일을 하러 가는 것도,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것도 아니다. 그곳에 들어가는 이유는 오직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다’라고 말입니다.” 

권 선교사는 2009년 1월 선교지에 정착했다.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그런데 1년이 채 안됐을 무렵, 아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급히 귀국했다. 고국 땅을 밟은 순간 힘겨워하던 아내가 고개를 들면서 말했다. “여보, 숨쉬기가 참 편해요.” 조 사모의 위와 갑상선에서 종양이 발견됐다. 피로가 쌓여 몸과 마음이 탈진한 상태였다. 자신의 오기 때문에 온 가족이 고생하는 것은 아닌지…. 마음이 아팠다.

지난해 봄에는 누워 있는데 침대가 심하게 덜컹거렸다. 그새 잦은 지진을 경험했던 그는 본능적으로 강진임을 알아차렸다. 함께 있던 둘째를 안고 밖으로 나갔는데, 아파트 복도 벽에 붙어 있던 타일이 와르르 쏟아져내렸다. 엘리베이터를 타려는 순간 누군가 그의 목덜미를 잡아챘다. 이웃 현지인이 “지진이 났을 때 엘리베이터를 타는 건 위험하다”고 계단을 가리켰다. 하지만 권 선교사는 위험을 알면서도 엘리베이터를 택했다. 목발을 짚어야 하는 그로선 사람들이 쏟아져나오는 계단으로 내려가다 넘어질 확률이 더 컸기 때문이다. 이렇게 죽나, 저렇게 죽나 매한가지였다. 권 선교사는 그렇게 죽음의 문턱을 수차례 넘었다. 

교회는 참 좋은 곳 

1994년 7월, ‘빠지직’ 소리와 함께 권 선교사는 서울 종로 한복판에서 그대로 주저앉았다. 20세 때 수술했던 두 다리가 한계를 이기지 못하고 그만 부러지고 만 것이다. 그날 하늘을 보고 외쳤다. “하나님, 저를 보고 계십니까? 이제 그만 저 좀 데려가주세요.” 

권 선교사는 3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가난과 아버지의 외도, 폭력 등으로 심신이 지쳤던 어머니는 임신한 몸으로 독한 약을 먹고 말았다. 아픈 배를 부여잡고 어머니는 태중 아기와 작별인사를 나눴지만, 그 아기는 질긴 생명력으로 살아남았다. 뱃속에서부터 버림 받은 그 아기가 권 선교사다. 그가 희귀병을 안고 태어났다는 것을 처음 안 것은 네 살 때였다. 넘어졌는데 그만 허벅지뼈가 부러지고 만 것이다. 여섯 살 때 처음 수술을 받았다. 이후로 수차례 버거운 수술을 거듭했다. “중학교에 입학했는데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다 보니 학교에 적응할 수 없었어요. 친구들이 ‘절뚝발이’라고 놀리는 것도 싫었고요. 그래서 집을 나왔습니다. 나가서 돈이나 벌자는 심산이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장애까지, 취업은 쉽지 않았다. 겨우 들어간 곳이 가죽 공장. 구부정한 자세로 하루 18시간씩 한 달 동안 일해서 번 돈 9만원을 봉투째 어머니께 드렸다. 대형 커피숍에 들어가 3년 동안 쭈그리고 앉아 그릇만 닦았다. 그렇게 일할수록 그의 몸은 병들어갔다. 급기야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 좁은 방구석에서 늘 누워 지냈다. 휠체어 없이는 밖에 나갈 수도 없었다. 그때 처음으로 집 근처 교회에 나갔다. 성도들은 휠체어 탄 그에게 관심을 보였다. 찬양을 불러주고 박수로 환영했다. 맛있는 점심도 함께 먹었다. 19세 청년은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사실 저는 벌레보다 못한 존재였어요. 벌레는 움직이며 먹이를 찾아다니는데, 저는 누워 천장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잖아요. 몸이 불편하니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평생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 생각했지요. 그런데 태어나 처음 교회에서 황송한 대접을 받은 겁니다. 교회는 참 좋은 집단이었어요. 힘들지만 열심히 교회에 나갔어요. 그렇게 하나님을 만나고 비로소 살아갈 이유를 찾았습니다.” 

이런 병든 몸이라도 

하나님은 자포자기할 때마다 그에게 사정하듯 말씀하셨다.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만 있으라!” 주님의 간절한 부탁에 목숨줄 부여잡는 심정으로 권 선교사는 야간 신학대학에 입학했다. 낮에는 복권 파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밤에는 신학생으로 열심히 공부했다. 하지만 또다시 무리를 하자 몸에 이상이 생겼다. 허벅지 다리가 기역자처럼 휘어져가고 대퇴골을 받치고 있던 스틸이 부러져 2002년 다리를 펴는 수술을 받았다. 예전 같으면 포기한 채 누워만 있었을 텐데, 그는 교회에서 재활훈련을 시작했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성도들이 모두 돌아가면 장의자를 붙잡고 앉았다 일어서는 것을 반복했다. 얼마나 연습했을까. 목발 없이 똑바로 설 수 있었다. 용기를 내어 한걸음씩 내디뎠다. 다음날도, 또 다음날도. 두 다리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꼈다. 그는 두 다리로 걷게 해주신 하나님을 생생히 만났다. 그리고 이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까를 고민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하지만 하나님께 제 병든 몸을 드려야 한다는 게 죄송스러웠지요. 그럼에도 하나님이 나를 일으켜 세워주셨으니 연약하고 부족한 몸이라도 산 제물로 드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단기 선교를 준비했습니다. 장애인으로는 과감한 도전이었지요. 역시나 선교의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습니다.”

2003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로 선교사들이 급히 귀국한 게 오히려 그에겐 기회가 됐다. 싱가포르, 인도네시아에서 단기 선교사로 헌신하며 삶의 비전을 구체화했다. 장신대 신대원을 졸업한 그는 2006년 목사 안수를 받았고 국립한국복지대에서 의수족 공부도 마쳤다. 장애인 사역을 위한 도구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나를 드립니다 

권 선교사는 장애인과 가족, 그 이웃들에게 복음을 전한다. 장애인 공동체에는 지진으로 장애를 입은 이들도 있다. 두 다리를 잃은 15세 소녀는 대인기피증과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아무도 만나지 않고 지내던 중 권 선교사가 자신 같은 장애인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열었다. 어렸을 때부터 제대로 걷지 못하고 수없이 넘어진 일, 수술도 여러 번 했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소녀의 어머니도 어느 순간 곁에서 권 선교사의 말을 듣고 있었다. “엄마가 어떻게 교육하느냐에 따라 딸이 회복됩니다. 복음으로 생각의 틀을 바꾸고 아이를 대하세요”라고 권면했다. 그 소녀는 요즘 밖으로 나가 사람들을 만나자고 떼를 쓸 만큼 건강해졌다.

현지어를 배우면서 자연스레 젊은이들과도 교제했다. 1년 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하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쌓였을 때 성경을 선물하고 복음을 전했다. 처음엔 거절하는 게 미안해 말씀을 듣다가 이내 주님께 사로잡혔다. 5개 가정교회에서 15명의 젊은이, 장애인들이 일대일 양육을 받고 있다. 

권 선교사의 다리는 인공 고관절과 철심에 철사줄까지 얽히고설켜 있다. 가끔은 목발 없이도 걷지만 조심해야 한다. 자칫 넘어져 뼈가 부러지기라도 하면 생명까지도 위험하다. 그렇다면 조금은 평탄한 곳, 굳이 선교지가 아니어도 되지 않을까. 

“건강하다고 하나님 일 잘하는 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은 믿음과 열정으로 감당할 수 있어요. 믿음과 열정은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겁니다. 우리는 깨어 있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내 옆에 있는 한 영혼을 귀히 여겨야 해요. 작고 보잘것없어 쉽게 지나칠 수 있는 그 사람 안에 하나님의 은혜가 담겨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항상 깨어서 믿음을 지키고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다 보면 은혜는 뜻하지 않은 때에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