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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시인 이영도를 사랑한 청마 유치환의 행복

배남준 2017. 5. 13. 20:28

여류시조시인 이영도(李永道) 

              -정운 이영도 시조 시인 -

  

청마 유치환은 정운 이영도 선생에게 20여년 5000통의 사랑의 편지를 우체통에 부쳤다



                          

청마 유치환  

행복(幸

" 행 복 "


福)   --청청마 마 청마

행복(幸福)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리라

오늘도 나는

에머랄드 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더 의지 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망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20여 년간 한 여인,

오직 이영도만을 향한 마음을 담아 청마는 5천여 통의 편지를 썼다.

과부였던 이영도는,

기혼자였던 유치환을 향한 마음을 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20여년을 흔드는데 어느 여자인들 흔들리지 않을 수 있으랴

마침내 이영도는 그에게 마음을 열어

유치환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3년 동안

이들은 편지만 오가는 플라토닉한 사랑을 했다.

보다못한 청마의 아내가 만날 자리를 마련해 주기 위해 집을 비우며

이영도를 불러 함께 지내보라고 하고는

친정으로 가버린 일도 있었다고 한다.

 

청마가 죽고 난 뒤 이영도는 그와 주고받은 편지를 묶어 책으로 펴냈다

청마가 그에게 보낸 ‘행복’에서 제목을 뽑아

책의 이름은 ‘사랑하였음으로 행복하였네라’였다

                                                                         [출처] 청마 유치환 / 이영도|작성자 도현




[이영도처럼 생각하기]  
“무릎 꿇고 간구할 신앙이 있음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행복이란 지극히 주관적인 자기 인식이다. 이영도(사진) 시인은 자신을 행복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이유는 분명했다. 자신의 모든 걸 맡기고 간구할 수 있는 하나님을 가슴속에 지녔기 때문이었다.

“인간으로서의 내 힘이 미치지 못할 때, 인간으로서의 내 가슴을 스스로 다스리기 어려울 때 겸손히 무릎을 꿇고 간구할 신앙이 있음은 얼마나 다행한 일이며 스스로의 구원이 될 수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기에 나는 새벽마다 밤마다, 그것이 자신에게 타이르는 스스로의 교훈이든 하루 동안의 자기 행위에 대한 반성이든 간에 버릇처럼 가슴에 손을 모으고 조용히 눈을 감는 기도의 자세를 취하게 되는 것이며 그러므로 하여 스스로 심신의 안위를 얻어 오고 있는 것입니다.”(수필 ‘진실한 행복’ 중에서)  

그는 분노도 사랑도 고운 꿈도 ‘죽음의 권위’ 앞에선 한 자락 스쳐가는 감정의 사치로 여겼다. “이제는 정말 찬란하게 삶을 누려야겠다고 생각한다. 모든 실재 위에 신의 이름이 영광되듯, 내게 허락된 남은 세월은 기쁘고 슬프고 또한 아름다운 생명의 자취를 나의 문학으로 윤색하고 조각하며 회한 없는 목숨을 누려야겠다. 크나큰 은총은 죽음의 피안에서뿐 아니라 바로 오늘의 삶 위에 받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수필 ‘생사의 갈림길에서’ 중에서)

그는 폐침윤으로 두 번의 요양생활을 했다. 이 시간을 통해 죽음에 대한 생각과 준비를 했을 것이다. 그가 별세하기 5년 전 딸에게 쓴 편지를 보면 죽음을 초월한 시인의 마음을 알 수 있다.

“진아. 내 사랑하는 딸아. 71년 11월 7일 1시에 엄마가 네게 마지막 부탁을 쓴다. 엄마가 죽은 뒤 울음을 삼가고 엄마가 소속한 교회(현동교회, 은산교회)에 기별해서 찬송가 419장 ‘주 날개 밑에 내가 쉬며’를 불러 주도록 부탁하고, 진아 너도 울음 대신 이 찬송가로 엄마의 마지막 영혼을 축복해다오. 오직 하나인 내 혈육 진아의 행복과 자손들의 번영과 평강을 엄마는 하늘나라에서 빌며 지낼 것이다.”(박옥금의 ‘내가 아는 이영도, 그 달빛같은’ 중에서)

                                                                                              청도=글·사진 이지현 선임기자 jeeh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