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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년 지켜온 미국 '정교 분리' 전통 깨지나

배남준 2017. 5. 8. 06:47


트럼프 대통령, 종교인 정치참여 제한 완화한 행정명령 서명 논란


200년 지켜온 미국 ‘정교 분리’ 전통 깨지나 기사의 사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4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종교 지도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성직자와 종교단체의 정치 참여를 제한하는 ‘존슨 수정헌법’을 완화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이를 보여주고 있다. AP뉴시스




200년 이상 지켜져 왔던 미국의 ‘정교(政敎) 분리’ 원칙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깨질 상황에 처했다. 지난 4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성직자와 종교단체의 정치활동을 제한하는 수정 연방헌법 ‘존슨 조항’을 무력화하는 ‘종교자유 보호에 관한 행정명령’에 서명했기 때문이다. 그는 서명 직후 “종교의 자유 보호를 위한 역사적 발걸음을 내디뎠다”고 자찬했지만, 미국 정계에선 “1802년 토머스 제퍼슨 3대 대통령 이후 엄격하게 지켜졌던 정교 분리의 전통이 상실되게 생겼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당장 미국 기독교 복음주의자들 내부에서도 찬반 논란이 거세게 불타오르는 분위기다. 

행정명령은 종교기관 세제법 완화 

트럼프 대통령이 이 행정명령에 서명한 날은 미국정부가 정한 ‘국가 기도의 날’이었다. 백악관에서 개신교와 로마가톨릭 유대교 성직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사인을 한 것이다. 행정명령 내용은 국세청(IRS)이 최대한의 행정적 재량권을 발휘해 정치적 견해를 표방하는 종교단체나 비영리단체를 조사·추적하지 않도록 지시하는 것이다. 정책 원리 등을 담은 2페이지짜리 문서다. 이 명령 안에는 버락 오바마 정부의 건강보험인 오바마케어를 통한 여성들의 피임 접근 기회를 제한하는 내용도 담겼다.  

존슨 조항은 1954년 당시 텍사스 상원의원이던 린든 존슨 전 대통령이 주도한 헌법 내용을 말한다. 성직자가 선거에 출마한 특정 후보에 대해 지지나 반대 발언을 하면 그가 속한 교회나 단체의 면세혜택이 박탈되도록 한 것이다. 미국의 엄격한 정교분리 원칙을 강화하기 위해 도입됐다. 


하지만 미국 보수 교계와 단체들은 이 조항이 언론자유를 보장하는 수정헌법 1조를 위반한다고 주장해왔다. 지난해 대선에서 트럼프 후보를 지지한 개신교 복음주의 교단과 로마가톨릭, 모르몬교, 정통 유대교 등이 이 조항을 비롯한 각종 관련 법규의 철폐를 요구해왔다. 

정교 분리의 역사로 채워진 미국  

이번 행정명령으로 성직자에 대한 정치활동이 보장됨에 따라 정교 분리 위반 논란도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정교 분리는 정치와 종교는 엄격하게 구별돼야 한다는 것으로, 1802년 제퍼슨 전 대통령의 편지에서 처음 언급됐다. 그는 “국교를 수립하거나 종교의 자유를 금지하는 법을 제정할 수 없다. 교회와 국가 사이엔 분리 장벽이 세워져있다”고 밝혔다. 종교는 개인의 문제이기에 법적으로 이를 보장할 필요가 없으며, 나아가 각 개인의 종교활동 자체도 제도적으로 제한될 수 없다는 의미였다.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13개 주로 이뤄진 미국 연방은 기독교가 국가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내용과 함께 영국처럼 국교회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두 가지 입장이 존재해왔다. 주마다 대표 종교가 달라 전체를 아우르는 교파도 없었다. 메릴랜드는 로마가톨릭, 펜실베이니아는 퀘이커교, 버지니아와 뉴욕, 조지아 등은 영국성공회가 공식 종교였다.  

제퍼슨은 이런 상황에서 “진리는 위대해 홀로 내버려둬도 승리한다” “우리는 성공회도, 가톨릭도 침례교도 아니다. 모두 크리스천”이라는 말을 남기며 공화주의자들과 함께 국교제 폐지를 주장했고 정교분리 원칙을 표방했던 것이다. 

복음주의 안에서도 논란 가열 

한편 미국 크리스채너티투데이는 ‘트럼프의 종교자유 행정명령은 대부분 복음주의자들이 기도했던 응답이 아니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성 소수자나 싱글맘 등을 종교적 신념에 따라 채용을 거부할 수 있게 한 조항은 이번 행정명령에선 삭제됐다”고 보도했다. 오히려 대다수 복음주의자들은 정교분리 원칙을 이어가길 바란다고 전했다. 크리스천월드뷰콜슨센터 존 스톤스트리트 대표는 “목회자들이 정치에 대해 자유롭게 말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이 공공장소에서 자신의 신앙에 따라 자유롭게 사는 것”이라고 했다.

미국 보수 기독교계에선 이번 행정명령으로 일부 주가 추진하는 종교자유법 제정에 탄력을 받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인디애나주는 사업자가 종교자유를 근거로 동성애자 고객의 요구를 거절해도 처벌받지 않도록 하고 있다.

행정명령은 트럼프의 반이민 행정명령처럼 법적 소송에 직면할 가능성도 많다. 존슨조항이 헌법이기 때문에 이를 폐기하기 위해선 엄격한 의회의 승인 절차가 필요하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