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희정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2002년 한국에 정착한 탈북 청년 이성주 씨의 ‘별똥별’이라는 의미를 지닌 영문 자서전 ‘Every Falling Star’가 미국의 학부모협회가 선정한 2016권장도서상(Parents’ Choice Awards) 비소설분야 은상을 받았습니다.
- 탈북 꽃제비 출신 이성주씨 -
새삶 일군 이성주 씨
“희망 안 버리면 꿈은 이뤄집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닥쳐도 삶에 대한 의지를 포기하지 않으면 희망은 늘 우리 옆에 있습니다.”
탈북민 이성주(30·사진) 씨는 북한에서 불과 11세 나이에 가족과 뿔뿔이 흩어지고 죽을 고비도 숱하게 넘기는 등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 한국에서라면 부모에게 한창 응석을 부릴 나이지만 그는 15세가 될 때까지 4년간 ‘꽃제비’(북한에서 거리를 떠도는 노숙 아동) 생활을 하며 살기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쳐야 했다. 이보다 더 최악일 수는 없었지만 주린 배를 움켜쥔 채 길거리를 떠돌며 훔치고, 싸우고, 맞으면서도 생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살아남아야 아버지와 어머니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었다.
이 씨는 5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밤마다 깜깜한 하늘에 떠 있는 수많은 별을 바라보며 수천 번도 넘게 부모님을 보게 해 달라고 소원을 빌었다”며 “희망을 놓는 순간 현실에 절망하고 죽음과 가까워질 수 있다는 생각에 매일 마음을 다잡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2002년 탈북해 한국에 정착한 그는 2009년 서강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 2012년 조기졸업을 거쳐 영국 정부 장학금을 받고 2015∼2016년 영국 워릭대에서 석사과정을 마쳤다. 현재는 미국이나 영국에서 통일·외교 부문 박사과정 입학을 준비하고 있다.
수도 평양의 군인 가정 출신인 이 씨의 삶이 순탄치 못한 길을 걷게 된 것은 10세 때 일이다. 1997년 이 씨의 부친이 “북한에는 희망이 없다”고 발언한 사실이 북한 당국에 적발됐다. 졸지에 세 식구가 정치범수용소가 있는 함경북도 경성군 관모리로 추방돼 추위와 배고픔에 시달려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1998년 2월과 6월 중국으로 식량을 구한다며 각각 집을 나섰던 아버지와 어머니가 연이어 행방불명됐다. 이때부터 이 씨는 살기 위해 또래 꽃제비들과 어울려 다니며 낮에는 장마당에서 구걸이나 소매치기를 하고, 밤에는 역전에서 쪽잠을 자면서 4년을 버텼다. 이 씨는 “애석하게도 동료 꽃제비 2명은 운명을 달리해 직접 땅에 묻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 씨는 2002년 2월, 추방당한 딸 내외와 손자를 찾아다녔던 외할아버지와 기적적으로 상봉하게 된다. 그러던 중 같은 해 10월 그에게 “아버지의 ‘딱친구’(친한 친구)인데, 아버지가 다급히 찾고 있다”며 낯선 사람이 접근했다. 이 씨는 외할아버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에 대한 증오심과 그리움이 교차하는 마음에 “아버지 얼굴에 주먹 한 방을 날리고 3일 안에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긴 채 탈북 브로커를 따라나섰다. 이후 힘겹게 두만강을 건너고 수차례 산을 넘고 나서 중국 다롄(大連)에 도착한 뒤 위조 여권을 통해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게 됐다. 이 씨는 “4년 만에 아버지와 극적으로 상봉한 뒤 미움보다는 반가움이 커 서로 껴안고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고 말했다.
이 씨는 한국에서 난생처음 자유를 경험하고 기쁨을 느꼈지만, “편견과 멸시에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깊은 상처를 입었다”고 전했다. 아르바이트를 구하려고 해도 북한 출신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이 씨는 “당시 외국인 노동자 또는 그 이하 취급을 받고 북한에 있을 때보다 심리적으로는 오히려 더 힘들었다”며 “2∼3년간 깊은 고민을 거친 뒤에야 나는 ‘한반도인’이라는 나름의 정체성을 세우고 꿈을 향해 죽기 살기로 노력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10시간 이상 책상에 앉아 우직하게 공부하는 습관을 유지한 결과, 서강대에서의 학업을 마치고 영국 유학까지 떠나게 됐다. 특히 그를 그토록 괴롭혔던 영어 실력이 일취월장해 영어 논문은 물론, 자신의 삶을 담은 책까지 영어로 집필했다.
이 씨는 “젊은 탈북민을 포함한 한국 청년들이 쉬운 길만 찾으려고 애를 쓰는 데, 소가 밭을 갈듯 우직하게 갈 길을 가다 보면 언젠가는 밭을 다 갈고 씨앗을 심고 열매도 거두게 될 날이 반드시 온다는 점을 깨달았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탈북민이라는 이점을 살려 앞으로 통일이라는 집을 지을 때 비가 새지 않도록 작은 기왓장을 얹는 역할을 했으면 한다”며 “어머니를 만날 때까지 희망을 잃지 않고 꿈을 향해 매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최준영 기자 cjy324@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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