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간증

탈북민 정요한 바이올리니스트(김정일 악단장)/하나님이 공짜로 주신 바이올린

배남준 2017. 1. 29. 16:55




탈북민, 바이올리니스트 정요한의 서재는 ‘기도실’이다

탈북민 정요한 바이올리니스트의 서재는 ‘기도실’이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데살로니가 전서 5장 말씀을 목사님께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기뻐하라’는 말이 굉장히 거슬리더군요. 북한에서는 뭐든지 명령입니다. 정책적으로 이끌어 내기 위해서 많은 것을 제시하는데 명령으로 하지요. 그런데 성경에서도 기뻐하라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그게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회개 기도를 하기 시작하니까 감사 기도가 나오더군요. 그리고 기쁨이 넘치고 평강이 임했습니다. 예전에는 제 자신이 드러날수록 사회와 교회를 비판하고 정죄하고, 비교했어요. 저도 모르게 교만해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선데이 크리스천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게 제일 무서운 것이지요. 그런데 회개 기도를 하니 가슴이 찢어지더군요. 주안에서 기도하면서 회개하다 보니 정죄하던 마음이 사라지고 감사하고 기뻐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2009년에 탈북했으니 북에 있는 부모 형제가 얼마나 그립겠습니까. 부모 형제를 생각하면 통일에 대한 열망이 더욱 간절해집니다. 회개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나를 이곳까지 이끄신 은혜를 생각하게 되면서 첫사랑이 회복됩니다. 저는 십자가 보혈을 의지해 이렇게 회개 기도합니다. ‘나 때문에 통일이 안 되는구나. 나 때문에 많은 영혼이 죽는구나’ 그런 기도를 몸서리치면서 드리며 또다시 회개 기도를 합니다. 이제는 나의 죄 문제를 회개하지 않고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이렇게 나의 서재는 계속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회개 기도하면서 나를 새롭게 하는 곳입니다.


북한에서 핍박받은 할아버지의 신앙

저는 꿈에도 제가 탈북하게 될 줄은 생각하지 못 했습니다. 제가 예전에 탈북자들을 얼마나 증오하고 저주했냐면 교수 대표단으로 해외에 나와 있을 때 지나가다가 교회 십자가만 봐도 일행들에게 그랬습니다. 저기 가까이 가지 말라고. 저 교회 안에 남조선 괴뢰들이 숨어있어서 북한 사람들을 유괴한다고, 더 나쁘게는 나라를 배반하고 당을 배반한 탈북자들이 숨어있다고. 가까이 가지 말라고. 그렇게 얘기했었습니다.
제가 있던 외국 대학에 한 유럽인 교수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분이 저에게 “얼굴색이 안 좋으시네요. 교회에 한번 가보세요”하고 불쑥 던진 말이 마음에 와 닿더라고요. 유학 생활하거나 외국 공연 나왔을 때 신앙을 접할 기회가 많았는데도 단호하게 거절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만큼은 나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가정의 비밀, 평생 입 밖에 내지 않았던 말을 하게 되더군요. 우리 할아버지가 기독교 장로였다고. 그분이 벌떡 일어나더니 내 손목을 잡고 분명 이건 하나님의 섭리라고. 꼭 교회 나가시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일에 비밀리에 택시를 타고 교회를 갔어요. 다른 북한 사람들에게 들키면 안 되는 정말 정말 위험한 행동이었습니다. 택시 타고 2층짜리 건물 앞에 딱 내리는 순간에 겁도 나고 오만가지 생각이 났지요. 이거 무슨 함정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4살에 바이올린을 시작할 때 할아버지가 나를 무릎에 앉혀놓고 머리를 감싸고 중얼거리셨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기도였지요. 그때 나는 철이 없어서 막 뿌리치고 뛰어가 버리고 그랬습니다. 그리고 바이올린 레슨이 끝나고 나오면 할아버지가 또 기도해주셨습니다.
할아버지가 장로였고 예수쟁이 집안이었다는 얘기를 부모님이나 고모 통해서 들은 적이 있긴 했습니다. 할아버님은 기독교 장로라는 사실 때문에 평양에서 추방돼서 지방에서 핍박과 어려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다행히 할아버지가 계시던 김일성 시대와 제가 있던 김정일 시대는 달랐습니다. 김일성 시대까지는 과거의 문건을 가지고 어려움을 당했지만 김정일은 새로 태어난 사람들은 과거가 아니라 실력 위주로 대하자는 주의였지요.
제가 전국 어린이방송예술 경연대회에서 1등을 수상하면서 유명세를 탔고 6살에는 예술영화의 아역배우로도 출연하면서 김정일의 눈에 들었지요. 김정일이 예술을 좋아하고 영화를 좋아해서 저는 할아버지가 기독교 장로인 것과는 관계없이 쭉 승승장구를 할 수 있었습니다.

뜻밖의 선물로 받은 300만 원 바이올린

대한민국에 올 때 목숨 값으로 가지고 있던 바이올린을 저당 잡혔습니다. 저는 탈북하는 데 돈이 그렇게 많이 필요한지 몰랐습니다. 20년 가까이 연주하던 제 개인 바이올린이었습니다. 그래도 팔지 않고 저당 잡혔다는 게 참 감사하지요. 그렇게 바이올린을 맡겨두고 제 몸만 한국에 왔습니다. 대한민국에 와서 교회에서 찬양을 하려는데 저는 북한처럼 생각했습니다. 북한은 개인의 급수에 따라서 악기를 국가에서 대여해줍니다. 저는 남한도 그렇다고 생각을 했지요. 교회에 오케스트라도 있고 하니 제가 찬양한다고 하면 악기를 대여해준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연주는 고사하고 세례를 안 받으면 찬양대에 못 선다고 목사님께서 말씀하시더군요. 그래서 2달 반 동안 교육을 받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자기 악기가 있어야 찬양을 할 수 있다고 해서 바이올린을 사려고 예술의 전당 앞 악기 가게에 갔습니다. 그때 손에 10만 원을 들고 갔습니다. 바이올린을 쭉 살펴보다 이 정도면 괜찮겠다 싶어서 얼마냐고 물어봤지요. 그랬더니 300만 원이라는 겁니다. 조용히 바이올린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런데 가게 사장님이 선물로 줄 테니 가져가라고 그러시는 것입니다.

저는 믿어지지 않아서 “네?” 하고 다시 물었습니다. 전에 만나본 적도 없는 분이었어요. 저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시는 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에게 어떤 마음을 주셨는지 바이올린을 그냥 저에게 주시더라고요. 바이올리니스트들의 최고의 로망은 좋은 비싼 악기를 연주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미 북한에서 김정일 악장단을 하면서 이탈리아산의 세계에 몇 대 안 되는 고가의 바이올린을 연주했습니다. 김정일이 예술 분야에 관심이 있어서 거금을 들여서 사온 악기였습니다. 북한에서 제가 연주하던 바이올린과 비교하면 300만 원짜리 바이올린은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10만 원을 생각하고 간 저에게 50만 원도 아닌 300만 원이나 되는 큰 가격의 악기를 공짜로 주시니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이 분을 통해서 나에게 바이올린을 선물로 주시는구나 생각하며 은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시더군요. 상상하지 않은 방법으로 말입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날이 가면 갈수록 느껴짐에 따라서 대한민국이 보였습니다.

순교자 집안에서 자란 피아니스트 아내

제 아내도 피아니스트인데 평양 음악대학을 졸업한 동문입니다. 결혼을 하고 알았는데 아내도 순교자 집안이었습니다. 너무 감사한 게 하나님의 축복이 온 가족에게 있었다는 것이지요. 아내도 저도 순교자의 후손이라고 생각하니 하나님의 섭리가 더 와 닿았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아니면 어떻게 이런 아내를 만났겠습니까. 아내랑 결혼하면서 어떤 확신을 가졌냐 하면 과거 현재 미래를 주관하시는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피부로 느꼈습니다. 기적 중의 기적이었지요. 2만 8천명 아니 3만 명 가까이 있는 대한민국의 탈북자 중에 클래식을 어렸을 때부터 체계적으로 배운 사람이 몇 명이나 있겠습니까. 저는 그런 피아니스트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놀랐는데 또 이런 사람이 순교자 집안이고, 장모님도 지하교회의 교인이셨던 것입니다. 아내는 굉장히 신실한 집안에서 자란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 대한민국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믿음의 가정까지 갖게 된 것이 저에게는 천국입니다. 그 기쁨, 평강, 말씀 안에서 사는 삶이 천국과 같습니다.
저희 부부가 같이 할 수 있는 세상 일은 많았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습니다. 통일도 가까워오니 통일을 위해 할 일이 많았습니다. 특히 우리와 같은 처지에 있는 탈북자들이 많이 있지 않습니까. 북한에서 우상을 숭배하면서 절대적으로 우상에 세뇌되어 살아온 탈북자들이 대한민국에 와서 단시간에 변화되는 게 쉽지 않아요. 저는 대한민국이 주님의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탈북자들도 대한민국에서 주님을 만나야 삶의 의미를 찾을 수가 있습니다. 저는 탈북자들이 대한민국에 잘 정착하도록 돕고 싶습니다.


주님에 대해 알려 준 두 권의 책

북한의 책은 하나부터 열까지 정치 서적입니다. 소설도 그렇습니다. 제가 대한민국에 와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성경 말씀이에요. 그래서 책도 성경 말씀을 풀어서 설명해주는 책을 좋아합니다. 김형준 목사님의 '삶의 틀을 바꾸는 사람 느헤미야'라는 책은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서 필요한 9가지 성령의 열매 내용들이 다 복합적으로 들어가 있더군요.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로 집이 생기고 성공했다 그런 내용이 아니라 성경 말씀을 그대로 설명해주는 책이어서 좋았습니다. 신앙의 기본을 설명해주는 클래식 같은 책이지요.
남한에 오기 전 외국에 있을 때 우연히 '나는 할렐루야 아줌마였다'책을 본 적이 있습니다. 글자가 세로로 된 아주 오래된 책이었지요. 많은 사람들이 봤는지 이미 너덜너덜해진 상태였습니다. 지금도 그때 책을 보면서 심장이 벌렁벌렁하던 느낌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한국에 와서 그 책을 쓴 최자실 씨가 조용기 목사님의 장모님인 걸 알았습니다. 그분이 평안북도에서 내려와서 서울역에 천막 치고 교회를 세워서 별의별 고생을 다하고, 별의별 일을 다 겪은 내용이 책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앙을 가지고 북한에서 남한으로 내려와 겪은 일들을 쭉 풀어낸 책이다 보니 더욱 마음에 와 닿더군요.

내게 가장 귀한 직함은 ‘집사’

저는 주로 군부대를 방문해서 안보 강연, 찬양 간증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대학, 학교에서도 간증을 합니다. 얼마 전에는 호주 시드니에서 열흘 동안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했지요. 살아 역사하는 주님, 내가 만난 예수님이란 제목으로 간증했습니다. 물론 바이올린 연주는 간증 집회에서 떼려야 땔 수 없는 부분입니다. 저는 신학을 공부해서 사역하는 사람도 아니고, 바이올린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났고, 주님 나라 확장을 위해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북한에 있는 동안 세계 음악 콩쿠르에서 여러 번 입상했고 김정일 음악단의 악장으로 8년간 활동도 했습니다. 당의 인정을 받아 동유럽 대학의 교환 교수로도 있었고요. 북한에 있을 때는 직함이 많았지만 남한에 온 뒤 제게 제일 귀하고 소중한 직함이 ‘집사’입니다. 한국에 와서 그거 이상 최고의 직함이 없습니다. 주변 분들이 집사 말고 다른 직함을 내세우라고도 말씀하시는데 저는 하나님을 마음껏 믿는 세상에 살고 싶어서 탈북한 사람이다 보니 집사라고 하는 직함이 제일 귀합니다. 대한민국에 와서 힘들었던 적도 있었지만 깨어지고 부서지며 사명감을 갖게 되니 ‘집사’란 직함이 제일 귀합니다.
KBS교향악단, 대학에서도 섭외를 받기도 했지만 제가 다 사양하고 거절한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남한에 제 인지도를 높이고, 제 명성을 높이고, 먹고 살아가는 데 새로운 길을 개척하기 위해 온 게 아니거든요. 처음에는 인간적으로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 든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살면 살수록 하나님의 섭리는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루빨리 조국 통일이 되기 위해서, 평화 통일을 위해서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집사로, 하나님의 종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최선을 다해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하면 또 얼마나 하겠습니까. 하나님이 능력 주시는 대로 하는 거지요. 그렇게 살다 보니 연주와 간증을 하게 되었습니다.

작은 통일이란 탈북자를 끌어안는 것

저는 지금 한국탈북민정착지원협의회에서 홍보대사를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래요. 바이올린 하고 이 단체가 무슨 상관이냐고. ‘탈북민’이라는 세 글자 때문입니다. 탈북자들이 제일 힘들 때 와서 하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 안에서, 말씀 안에서 살려고 해도 이단이 많고 유혹이 많잖아요. 탈북자들은 북한에 두고 온 부모 형제를 생각하며 늘 보고 싶고 걱정합니다. ‘나 때문에 얼마나 힘들까? 정치범 수용소에나 가지 않았을까? 나 때문에 죽지 않았을까?’
그런 어려움 속에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그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을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정말 삶이 힘들어집니다. 탈북자들은 우상을 절대화하던 곳에서 살았기 때문에 우상 섬기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상 섬기는 것을 제일 싫어하시잖아요. 십계명에도 그렇게 쓰여 있고요. 모든 우상을 떠나 탈북민들이 평강의 하나님을 느낄 수 있도록 말씀으로 양육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경험하고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제가 정말 감사한 게 처음에 대한민국에 왔을 때보다 탈북자 사역하시는 분들이 굉장히 많이 늘어난 것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선교사님들, 목회자님들 몇 백 명이 할 몫을 통일이 되면 탈북자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습니다. 북한에 들어가서 북한 사람한테 누가 말발이 서겠습니까. 나 같아도 내 부모 형제, 친구들이 말하는 게 신뢰가 되겠지요.
저는 가는 곳마다 호소하는 게 있습니다. “탈북자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 탈북자들을 말씀으로 양육시켜서 통일되었을 때 복음 전하는 자로 보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다. 통일 한국을 크게 생각하지 말라. 탈북자들을 끌어안는 게 작은 통일이다.” 이런 말은 탈북자인 제가 말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이 이끄시는 통일 한국

저는 통일을 얘기할 때 늘 “예수 주권, 통일 한국”이라고 말합니다. 예수 주권과 통일 한국은 떼래야 뗄 수 없습니다. 통일이라는 말은 이단도 그렇고 북한도 사용을 합니다. 사랑이란 말도 그렇고. 사탄, 마귀, 귀신들도 통일이라는 말을 똑같이 사용합니다. 그런데 그 통일하고 예수 주권의 통일하고는 전혀 다릅니다. 한반도는 70년 동안 갈라져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는 대한민국에 와서 세례 받고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게 됐습니다. 물론 할아버지의 기도가 있었지요. 저는 하나님의 스케줄에 따라서 강권적으로 선택 받아서 여기까지 와서 신앙을 갖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대한민국에 와서 힘들고 방황했던 시간도 있습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 고난이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있는 연단이라고 생각되고 점점 날이 갈수록 마음이 너무 편안해지더군요. 처음 대한민국에 왔을 때는 탈북자란 이름만 들어도 경계를 하고 두려워했습니다. 나를 테러하기 위해 북에서 내려 보내지 않을까 해서요. 그런 압박감, 두려움이 있었지요. 이 부분은 물질이나 명예, 돈으로는 해결이 안됐을 것입니다. 철저하게 성령님의 감동으로 거듭난 상태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녹아져 내리고 부서지고 하면서 해결되었지요. 그게 너무 감사합니다.

기도 제목과 비전

기도 제목은 두 가지입니다. 북한 정권이 속히 무너지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탈북민이 말씀 안에서 양육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북한은 하나님이 다 준비해놓으셨습니다. 옛날 교회 자리에다 우상을 세워뒀거든요. 그 자리에 십자가만 가지고 가서 세우면 됩니다. 2~3년 전보다는 지금 상황을 보면 통일이 곧 오겠구나 싶습니다. 기도로 협력해서 선을 이뤄야지요. 하나님이 어떤 방법으로 통일을 이루 실지 모르니까요. 평화적으로 통일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저의 비전은 그저 주님이 이끄시는 대로 그 길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 인터뷰 진행&정리 : 이음 작가
- 사진 : 이요셉 작가
- 인터뷰 장소 : 포커스 카페
- 기획.제작 : 사랑의교회 인터넷사역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