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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들에게 식사와 말씀의 양식 전해

배남준 2016. 12. 17. 10:47

'거리의 천사들' 사역에 나선 서울 소망교회 청년들이 14일 밤 서울 지하철2호선 을지로입구역 역사 안에서 노숙인들에게 한 끼 식사와 생필품을 나눠주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14일 밤 11시40분 서울 지하철2호선 을지로입구역. 영하 1도까지 떨어진 기온에 찬바람이 더해져 행인들은 몸을 잔뜩 옹송그린 채 걷고 있었다. 역사 안으로 들어가자 추위를 피하고 있던 노숙인들이 보였다. 50대 후반, 많으면 60대 초반쯤 돼 보이는 한 어르신은 점퍼에 달린 모자를 눌러쓰고 삶에 대한 의욕을 잃은 듯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그때 4번 출구 쪽에서 들려온 찬양소리. '천사들의 노래가 하늘에서 들리니 산과 들이 기뻐서 메아리쳐 울린다.' 

노숙인들의 자립을 돕는 단체인 ‘거리의 천사들’ 사역에 동참하러 나온 서울 소망교회(김지철 목사) 청년들이었다. 20여명의 청년들은 갈 곳 없는 이들에게 흰 쌀밥과 깍두기, 사발면과 따뜻한 보리차를 건넸다.

노숙인들은 역사 안의 차가운 바닥에서 이날 밤을 보내야 했다. 대부분 냉기를 막기 위한 골판지 재질 박스와 신문지를 손에 들고 있었다. 한 60대 어르신은 갈라진 틈으로 찬바람이 새어들어오는 걸 막기 위해 비닐로 꽁꽁 싸맨 신발을 신고 있었다. 청년들이 손난로를 건네자 이들은 주머니 깊숙한 곳에 푹 쑤셔 넣었다. 2008년부터 꾸준히 이 사역을 해온 조한원(33)씨는 “노숙인들은 겨울에도 추위를 피할 곳이 마땅치 않기 때문에 역사 안에서 주무시는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노숙인들은 각자 자리로 돌아가 바닥에 박스를 깔고 벽을 향해 앉은 채 한 끼를 때웠다. 손에 장애가 있어 물건을 들 수 없는 노숙인에게 김성광(36)씨가 사발면에 뜨거운 물을 부어 가져다줬다. 사발면 두 개를 달라고 조르는 노숙인도 있었다. 내일 아침 동료의 끼니까지 챙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누군가에게만 많이 주면 너도나도 더 달라고 할 게 분명했다. 난처해하던 봉사자는 이목이 있는 곳에선 한사코 거절하다가 다른 노숙인들이 보지 않을 때 몰래 한 개를 더 챙겨줬다. 뚜껑이 있는 통조림통을 내밀며 “깍두기를 채워 달라”는 이도 있었고, “조금 더 큰 귤을 주면 안 되겠냐”는 사람도 있었다.  

거리의 천사들 이창성 자립지원팀장은 “이분들도 하나님이 만드신 귀한 분들”이라며 “우리의 가족인 노숙인들에게 외롭고 어두운 밤길의 따스한 별빛이 돼 달라”고 부탁했다. 

소망교회 청년들은 자정이 넘어 시청역으로 이동했다. 역사 안에 누워 있는 노숙인들을 향해 두 손을 내밀고 찬양으로 축복했다. ‘사랑의 나눔 있는 곳에 새로운 희망 시작되도다.’(사랑의 나눔) 노래를 마친 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사랑합니다”라고 인사했다. 그 뒤론 혹시 잠든 이들에게 방해가 될까봐 웬만하면 휴대전화 통화도 하지 않았다.  

지난해 11월부터 사역에 참여한 송나영(37·여)씨는 “처음엔 노숙인들과 눈을 마주치는 것도 낯설고 무서웠지만 우리가 웃으며 인사했을 때, 이분들의 굳어 있던 표정이 풀리는 것을 본 뒤 계속 동참하게 됐다”며 “거리에 계신 분들이 따뜻한 정을 그리워하고 계신다는 걸 느꼈다”고 전했다. 

“5년째 이 바지를 입고 있는데 찢어져서 더 이상은 입기가 힘들 것 같아요.” 한 노숙인이 호소하자 이 팀장이 남자의 치수를 적었다. 거리의 천사들은 물품을 후원받아 노숙인들에게 옷과 신발 등을 지원하는 사역도 하고 있다. 청년들은 노숙인들에게 빠짐없이 음식과 생필품을 나눠준 뒤 큰 봉지에 쓰레기를 담았고, 바닥에 흘린 깍두기 국물을 휴지로 닦았다. 

청년들은 지하철역으로 나서기 전 서울 종로구 이화장길에 있는 거리의 천사들 사무실에 들러 각자 역할을 나누고 소외된 이들을 위해 기도했다. 거리의 천사들은 노숙인들에게 주거와 일자리를 마련해줌으로써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비영리 민간단체다. 이 단체를 소개하는 안내지엔 “우리 곁에 연약한 지체를 보내주시는 것은 사랑하는 법을 배우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스며들어 있다”며 “이럴 때 누군가 작은 관심과 사랑의 손길을 내밀어 준다면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날 처음으로 사역에 동참한 백우현(30)씨는 “나눔은 사과 한쪽을 반으로 나누는 게 아니라 자기가 가진 사과 반쪽 전부를 드리는 것”이라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런 나눔을 실천하는 이들이 우리 주변에 많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 사진=강민석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