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너무 힘들어요, 목사님. 그냥 잠만 자고 싶어요.”
2000년 9월 영국 런던 히드로 공항에 마중 나온 런던순복음교회 김용복 목사님에게 난 어린아이 투정부리듯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인도사역 7년을 마친 나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선교국으로부터 6개월간의 안식월을 허가 받았다.
그랬다. 난 아팠다. 심한 몸살에 걸렸다. 감기 몸살이 아니라 ‘마음의 몸살’이었다. 육체적으로 탈진 직전까지 왔다. 인도에서 1994년부터 2000년까지 7년간 열심히 달려왔다. 부르심에 순종하며 인도에 갔지만 현실의 벽은 너무나 컸다. 카스트 제도라는 질긴 뿌리에 심겨진 검은 세계관 속에서 살고 있는 인도 사람들에게 접근하기가 어려웠다. 그들과 관계 맺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선교 제한 국가인 인도에선 내놓고 복음을 전할 수도 없었다. 모든 상황이 긴장의 연속이었다. 매일 새로운 사건이 발생했다. 한국과는 판이한 문화와 생활의 현실에서 영적 전쟁을 치러야 했다. 질병과 자연재해도 수시로 찾아왔다. 물론 이런 상황을 예상 못한 것도 아니었다.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난 선교사 이전에 한 명의 여성이었다. 그것도 독신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벗어나고만 싶었다. 마음이 약해져갔다. 거의 탈진상태가 됐다. 육신의 몸살은 좀 쉬면 나아졌지만 마음의 몸살은 좀체 낫지 않았다. 남모르게 ‘꺼이꺼이’ 운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보통 선교사들은 7년을 한 주기로 보고 이후 재충전을 위한 안식년을 갖는다. 인도생활 7년이 지나자 나는 무조건 쉬고 싶었다. 부르심을 재차 확인해 보기 원했다. 쉬면서 다음 사역 준비를 하고자했다. 난 한국과 인도가 아닌 다른 곳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싶었다. 그 다른 곳으로 선택한 나라가 영국이었다.
런던 외곽의 국제YWAM(예수전도단) 베이스에서 시니어들을 위한 훈련과정인 CDTS를 6개월 동안 받았다. 전 세계에서 온 시니어 크리스천들과 함께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 집중했다. 말씀과 찬양 가운데 거하면서 진정한 회복이 시작됐다. CDTS 훈련을 마치고 WEC국제선교회에 가서 국제적인 리더십을 배웠다. 영국에서의 6개월이란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이제 인도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그 전에 다시 한 번 인도를 향한 부르심을 확인하고 싶었다. 떠나기 전에 영국 교회의 집회에 참석했다. 영국 목사님이 참석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기도해 주셨다. 나도 그 앞에 섰다. 목사님의 기도가 내 맘에 박혔다. “인도로 돌아가십시오. 하나님도 기다리고, 인도 성도들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 큰 부르심이 있을 것입니다.” 그 순간 성령의 불이 나를 훑고 지나갔다. 다시 뜨거워졌다.
‘나를 기다린다’는 말이 크게 와 닿았다. 누군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거 하나로 갈 이유는 충분하지 않은가. 이제 확인은 끝났다. 뒤를 돌아 볼 필요가 없다. ‘가야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아니다. 난 거기로 가는 것이다. 그것이 나의 소명이요, 숙명이다. 그 소명에 순명(順命)해야 한다. 인도로 돌아왔다.
“시스터, 잘 오셨어요.”
인도 도착 후 맞은 첫 주일에 인도 성도들이 한 아름 꽃을 내게 안겨주며 “우리가 시스터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요”라고 말했다. 눈물이 났다. 그것은 어느 날 천국에서 그 분이 내게 해 줄 말이었다.
정리=이지현 선임기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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