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일보 역경의 열매 (2016.11.18)중에서
신군부 시절은 목회자로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참으로 힘든 때였다. 아마 나도 부지불식중에 신군부가 하는 일들이 옳지 않다고 지적하는 일이 있었을 것이다.
당시 교회에서 설교를 하면 설교·강해집을 출간하곤 했다. 그런데 발행을 맡은 출판사 사장이 “설교 내용 그대로는 도저히 출판허가를 받기 어렵다”면서 검열에 걸릴 만한 부분은 빼고 인쇄해야겠다고 요청하곤 했다. 그래서 알아서 하라고 전한 뒤 나중에 출판된 설교·강해집을 읽어보니 도무지 나 자신도 무슨 내용인지 모를 정도로 말이 통하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았다. 불쾌하고 씁쓸했다.
신군부는 나에게 여러 요청을 해왔다. 그러나 나는 그때마다 “도와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며 정중히 거절했다. 어떤 분들은 위대한 지도자를 하나님이 보내주셔서 감사하다고 치켜세우기도 했지만, 내가 옹졸해서인지 그럴 수 없었다. 목회자의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느 날이었다. 청와대에서 연락이 왔다. 전두환 대통령이 미국 순방을 한다며 “각하께서 목사님을 꼭 모시고 가셨으면 하는 부탁”이라며 동행을 요청해왔다. 정중히 사양하자 ‘어디 두고 봅시다’하는 반응이었다. 또 한 번은 대통령이 참석하는 국가조찬기도회 설교 청탁이 왔다. 그 요청 역시 사양하자 불쾌하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대한민국 목사로 국가조찬기도회 설교를 맡게 되면 최고의 영광인데 왜 못 하겠다고 하시는 겁니까. 정 그러시면 조만간 신라호텔에서 기도회 관련 인사들이 모이니 거기 와서 말씀해 주십시오.”
모임 당일, 약속된 장소로 찾아갔다. 나는 앉지도 않고 일어선 채 여러 인사들 앞에서 양해의 말씀을 드렸다. “부족한 사람이 귀한 자리에서 말씀을 전할 특권을 주신 데 대해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 일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그랬더니 “도대체 못하시겠다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따지는 것이었다.
나는 도저히 응할 수가 없었기에 이렇게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설교는 그냥 하는 것이 아니고 영감이 떠올라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 영감이 제게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랬더니 그때도 “어디 두고 봅시다”하는 반응이었다.
정권과 등을 지는 일 때문이었는지 예상치 못한 사건에 휘말리기도 했다.
1984년 6월 중순쯤이었다. 위 수술을 다시 받아야 할 상황이었다. 미국에서 수술을 받기로 해서 출국하는데 휠체어를 탈 만큼 몸이 좋지 않았다. 모든 수속을 마치고 기내에 앉아있는데 밖으로 불려 나왔다. 공항의 한 장소에 가니 수십 명의 기자들이 나와 있었다.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내가 거액을 외국으로 빼돌리려 했다니. 나는 그만한 돈이 필요할 리 없었다. 만져볼 수도 없는 액수의 돈이다. 수술비는 교회에서 지급해줬기 때문에 결코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았다.
훗날 여러 정황을 살펴봤을 때 사건 배후는 정보당국이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신군부가 보기에는 대통령이 참석하는 해외순방과 국가조찬기도회까지 거부한 내가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그로 인해 원치 않는 곳에서 ‘좋은’ 경험을 하고 나온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결국은 하나님께서 나를 유익한 방향으로 인도해 주셨음을 깨달았다.
정리=박재찬 기자 jeep@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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