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예레미아 33장 2,3절)
배우 송채환이 어린 시절 죽음 앞에 있던 자신의 어머니를 살려준 예수님을 고백했다.
송채환은 지난해 10월 1일 유튜브에 게재된 간증영상에서 2남 2녀 중 셋째로 태어나 어릴 때 죽일 고비가 왔던 엄마가 살아나게 된 이야기, 부산 판자촌에서 가난하게 살았던 시절의 과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송채환은 “제가 5살 때 아버지가 저를 데리고 엄마가 있는 중환자실로 데리고 갔다”며 “엄마가 수술을 했는데 꿰맨 부분이 터져서 매트리스가 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그때 너무 놀라서 ‘으악’하고 많이 울었다”고 전했다.
매일 같이 어머니를 부르며 집에서 울었던 송채환은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어머니가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그렇게 1년 동안 누워있었고 송채환이 6살 때 퇴원을 했다.
그리고 이들은 서울에서 먹고 살기가 어려워 부산으로 모두 이사를 갔다. 송채환의 나이 7살 때 부산의 판자촌으로 갔고 아버지는 버스 운전을 하면서 생계를 꾸려갔다.
그는 “엄마가 어떤 날은 괜찮고 어느 날은 아팠는데 예전처럼 심하게 아프지는 않았었다”며 “근데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엄마가 다시 심하게 아팠다. 이번엔 병원에서 병명을 못 찾아 낼 정도로 심각했었다”고 회상했다. “지금은 어머니가 75살이 되셨지만 당시에 배를 5번을 열었습니다. 부산의 한 병원에서도 더 (살기가)힘들다고 하셨고요.”
죽을 날만 기다리는 사람처럼 가족들은 침통에 빠졌고 송채환의 친할머니는 죽을 며느리를 대신할 새 엄마를 찾으러 다녔다. “엄마 이대로 죽으면 안돼. 할머니가 새 엄마 찾아놨데.” 어린 송채환은 어머니를 붙들고 울었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죠? 병원에서 병명을 알 수 없다고 했는데 엄마가 집에 가서 죽겠다고 했습니다. 산송장이나 마찬가지인데요.”
다시 판자촌으로 돌아갔고 송채환의 어머니가 죽어간다는 것을 알게 된 판자촌 이웃들이 굿을 해봐라 무당을 만나보라고 제안들을 해서 여러 번 굿도 했다고 전했다.
그래도 전혀 차도가 없었던 차에 누워계신 송채환의 어머니가 “나 죽을 때 죽더라도 교회나 한번 가보자”는 이야기를 했던 것. 송채환의 어머니 입에서 처음 교회라는 단어가 나온 것이었다.
“사실 내가 너를 뱄을 때 교회를 다녔고 너에게 유아세례도 받게 했었는데 할머니가 너무 핍박을 해서 못 다녔었다.”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게 되고 송채환은 오빠들과 엄마를 부축해서 고 옥한흠 목사님의 동생 옥치상 목사님 교회인 부산성동교회에 가게 된다.
“엄마를 모시고 가서 예배당 맨 끝자리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더니 어머나가 목사님을 불러달라고 하셨는데, 남루하고 누추한 차림으로 목사님을 부르는 게 말이 되나. 그래도 제가 쫓아갔고 한번만 우리 엄마를 위해서 기도해달라고 했습니다. 목사님이 오셔서 기도해주시고 불쌍히 여겨주셨습니다.”
그날부터 어머니는 예수의 안에 거하게 됐고 반대하던 시어머니도 곧 죽을 건데 반대해서 뭐하냐 하는 심정으로 교회 가는 것을 반대하지 않고 내버려두셨다고.
“교회에서 살다시피 했습니다. 철야 예배도 가고 싶고 새벽기도도 가고 싶다고 해서 철야부터 새벽 예배가 올 때까지 교회에 있다가 다시 씻겨드리고 모시고 가고. 그렇게 저도 엄마와 함께 새벽예배부터 주님 안에 거하게 됐습니다.”
이때부터 어머니의 병이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저희 어머니가 교회를 사모하고 이 안으로 들어오면서 아주 신기하게 물도 못 삼켰는데 물도 삼키고, 미음도 못 삼켰는데 미음도 삼키고 몸이 나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부산의 그 병원에서 ‘뭘 했나요?’ 라고 물어보셨습니다.”
송채환의 어머니와 그녀가 예배당에서 한 일이라고는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살려주세요.”이 말을 부르 짓으며 “잘못했습니다. 불쌍히 여겨달라”고 기도했던 것 뿐었다.
“주님에게 잘못했다고 하면 속을 거뻔히 알면서 또 안아주세요. 그냥 안으십니다. 주님은 녹으세요. 어머니가 천천히 교회 안에서 나음을 받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몰라보게 달려졌습니다.”
송채환은 어머니의 병 고치심을 보면서 “하나님은 살아 계시다”는 것을 직접 체험하게 됐다. 그때부터 여동생과 함께 교회를 다니기 시작해 나중에는 오빠들도 교회에 다니게 됐다. 현재는 여동생이 신학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왜 우리 엄마를 그렇게 아프게 하셨어요? 주님이 예정하신 게 있었던 겁니다. 그건 저희를 향한 축복이었습니다. 상상하지 못한 축복을 예비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건 주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살아계십니다. 사람은 속일 수 있지만 주님은 못 속입니다.”
이후 그녀가 서울예술대학 연극과에 합격하고 임권택 감독의 영화 ‘장군의 아들2’ 오디션에서 2314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여주인공으로 발탁된 이야기를 전했다.
조경이 기자 rooker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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