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반응” 하면 가장 처음 떠오르는 생각은, ‘특정 공격으로부터의 방어’이다. 하지만 면역에는 방어만 포함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공격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해내는 능력도 포함되어 있다. 나 자신을 적으로 간주하여 발생하는 질병이 흔히 말하는 자가면역질환이고, 대표적인 예로는 류마티스 관절염 등이 있다. 나 자신을 적으로 간주하지 않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면역반응에서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더 있다. 나와 공생하는 미생물을 적으로 간주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장내면역(장관면역)에서 특히나 중요하다. 같은 미생물이라도, 나를 공격하는 병원균은 제거하고, 나를 공격하지 않는 정상 상재균(normal flora, 정상적으로 인체 내에 존재하는 박테리아, 곰팡이균, 기타 원핵세포 생물의 총칭)에는 면역 반응을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 만약 정상 상재균에도 면역반응이 일어나게 되면, 우리의 장 속은 그야말로 피 튀기는 전쟁터가 될 것이다. 이 전쟁터에서 튀기는 피는 오싹하게도 대부분 우리의 피가 되겠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장 내에서는 정상 상재균에게는 반응하지 않고, 병원균에만 반응하는 면역반응들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반응이 공존하기 위해서는 안전함을 알리는 신호(safety signal)와 위험을 알리는 신호(danger signal), 두 가지 종류의 신호가 필요하다. 위험을 알리는 신호는 면역반응을 일으킨다. 안전함을 알리는 신호는 염증을 유발하는 인자들의 생성을 억제하거나, 위험을 알리는 신호의 능력을 제한하여 염증반응을 매개하지 못하도록 막아 장내 염증을 조절한다.1) 놀랍게도 이러한 반대 작용을 하는 두 신호는 같은 수용체가 인식하고, 때로는 같은 종류의 분자가 두 신호를 중재하기도 한다. 이처럼 장내 미생물과 면역체계는 끊임없이 서로 교류하고 있으며, 이러한 교류에 장애가 올 경우, 장내 면역계의 균형이 깨지게 되고, 우리는 질병에 노출되게 된다. 면역계와 미생물은 단지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만 교류하는 것은 아니다. 첫 번째 글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장내 미생물이 면역계의 발달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가 끊임없이 보고되고 있다. Germ-free mice(균이 없는 쥐) 연구를 통해 GALTs (Gut-associated lymphoid tissues, 장과 관련된 림프조직) 발달에 장내 미생물의 작용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2) 또한 특정 림프구(ex. Th17 cell)의 경우 우선적으로 장에 축적되어 있다는 점과 Germ-free mice나 항생제를 투여한 쥐에서는 그 수가 감소하는 점으로 보아 장 내부의 체제(mechanism)를 통해 특정 면역 세포들의 발달이 조절되며, 장내 미생물이 그러한 세포의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고 생각되고 있다.3)
장내 미생물은 우리의 면역계 발달에도 영향을 미치지만, 병원균이 체내로 들어왔을 때 직 간접적으로 이를 막아주어 우리 몸을 보호해주기도 한다. 이러한 점으로 보면 장내 미생물은 큰 틀에서 우리 면역계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성 싶다. 병원균도 장내에서 자라기 위해 영양분과 여러 가지 환경 조성이 필요한데, 정상 상재균은 병원균이 안착하는 것을 다양한 방법으로 막는다. 장내 환경을 바꾸어(ex. pH) 병원균이 자리잡지 못하게 하는 경우도 있고, 대사산물(ex. SCFA)을 생산하여 병원균의 증식을 저해하기도 하고, 병원균이 필요로 하는 영양분을 먼저 사용하여 병원균이 자라는 것을 막기도 한다.4) 또한 장내미생물은 우리의 면역반응을 자극하여 병원균의 침투를 막는다. 병원균의 체내 침투를 막는 가장 첫 번째 장벽으로 점액층을 꼽을 수 있는데, 장내 미생물은 이러한 장벽을 더욱 튼튼하게 만드는데 일조한다. 장내 미생물군 조성의 작은 변화에도 대장의 점액층에 큰 변화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었는데, 이러한 연구를 통해 장내 미생물군이 점액층 조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각기 다른 미생물군은 장내 점액층 조성에 제각기 다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5) 점액층을 발달시켜 병원균의 침투를 막기도 하지만, 체내 면역계(ex. Th17 cells, innate lymphoid cells)를 활성화시켜서 막기도 한다.
출처: 위키피디아 장내 미생물과 면역의 상호작용을 살펴보니, “만물은 서로 돕는다”고 주장하였던 크로포트킨이 떠오른다. 한정된 자원을 둘러싸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끝없는 투쟁, 즉 생존경쟁을 벌여야 하며 이러한 경쟁이 진화의 바탕이 된다고 생각했던 다윈과는 다르게, 그는 모든 생물을 똑같이 위협하고 극복할 수 없는 외부 환경의 엄혹함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생물들은 “상호 협력”하고 있으며, 우리는 이를 크게 간과하고 있다고 주장했었던 인물이다. 흔히 다윈은 열대지방에서 살았고, 크로포트킨은 러시아의 추운 지방에서 관찰했기 때문에 이렇듯 각기 다른 이론을 도출했다고 평가하지만, 장 내부야 말로 이 두 사람의 주장이 적절히 섞여있는 좋은 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윈이 보았던 열대지방의 한정된 자원 속에서의 경쟁과, 그 안에서의 상호 협력이 적절히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한정된 자원 속에서 살아남고 있음에도 상호 협력하여 공생하고 있는 장내 미생물과 우리의 모습을 보면, 우리 사회 또한 경쟁만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상호 협력하여 공존하는 방법으로도 눈을 돌려야 하는 때가 맞는 것 같다. 우리의 눈이 향한 곳을 따라 마음의 따듯함도 달라지고, 우리 사회의 따듯함도 달라지지 않을까. 자연 그대로의 방식을 통해 우리는 여전히 배울 점이 많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