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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조덕삼 장로 이야기 - 하인을 목사로 세우고 믿음으로 섬겨

배남준 2016. 8. 29. 21:00


[펌]


  머슴을 목사로 섬긴 조덕삼 장로

                                      -금산 교회-


전라북도 김제에 가면 금산교회가 있습니다. 1905년에 데이트선교사에 의해 세워진 금산교회는 자 교회로 유명합니다. 옛날에 남녀가 유별할 때에 예배당을 자 형태로 지어서 한쪽은 남자가, 다른 쪽은 여자가 앉아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도 서로의 얼굴을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 중앙에 흰 천으로 가려 두었습니다.

   


김제교회는 당시 전주에 선교기지를 두고 있던 미국 선교사 데이트(한국 이름은 최의덕)은 정읍을 가기 위해서 모악산 자락을 넘어 금산리를 지나다니곤 했습니다. 말을 타고 다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금산에 있는 마방에 들리게 되었고, 마방의 주인이었던 조덕삼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조덕삼은 예수를 믿고 자기 집의 사랑채에서 교회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조덕삼(1867~1919)의 집은 거부였습니다. 그의 할아버지 조정문과 그의 아버지 조종인은 본래 평안도 출신으로 중국의 봉황성과 고려문을 드나들면서 홍상장사를 하고 무역을 하는 거상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조덕삼의 아버지는 넓은 평야와 금광이 있는 김제에 와서 거부의 꿈을 품고 재산을 배로 싣고 이사를 왔습니다. 그리고 조덕삼은 아버지를 따라 금광업에 투자하면서 금산의 땅을 거의 다 매입하게 되었고, 금산지역의 최고의 유지로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당시에 금산에서는 조덕삼의 땅을 밟고 다니지 않은 사람이 없었고, 조덕삼의 논과 밭을 빌어서 먹고 살지 않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조덕삼이 교회를 나가니 조덕삼의 논과 밭을 경작해서 먹고 살던 사람들도 모두가 다 교회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이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자 조덕삼은 자기 땅에 예배당을 지어 하나님께 봉헌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즈음에 조덕삼의 머슴이었던 이자익이란 자도 교회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조덕삼의 마부였는데 사람이 총명하고 신실했습니다. 교회를 다니면서부터 교회 생활도 잘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았습니다. 영적 생활도 뛰어났습니다.


​    자기 집 머슴을 담임목사로 세운 조덕삼 장로

     - 최초 'ㄱ' 자 교회, 남녀 좌석 서로 갈라져 앉아 -

 이자익은 19051011일 주인 조덕삼과 박화서라는 이와 함께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김제교회가 세례교인이 30명이 넘게 되자 장로 투표를 하게 되었습니다. 대상자는 조덕삼 영수와 이자익 영수였는데  결과는 놀랍게도 조덕삼을 떨어지고 이자익이 장로로 피택이 되었습니다. 김제의 최고의 갑부, 금산교회를 위해 땅을 헌물하고 예배당을 건축해서 봉헌한 사람, 그리고 교회 재정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 그리고 자기 땅을 내주어 경작하라고 내준 조덕삼이 장로투표에서 떨어진 것입니다.

   

투표가 끝나고 발표가 된 뒤에 성도들이 다 술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자기들도 모두 조덕삼의 땅을 경작해서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엇인가 잘못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혹시나 하는 불안감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조덕삼은 교회의 결정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겠다고 하였습니다. 조덕삼은 성도들 앞에서 “우리 금산교회는 참으로 훌륭한 일을 해냈습니다. 저희 집에서 일하고 있는 이자익 영수는 저보다 신앙의 열의가 대단합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여 이자익 장로를 잘 받들고 더욱 교회를 잘 섬기겠다고 선언하였습니다. 그러자 성도들은 조덕삼의 인격에 감동하여 박수를 보냈습니다. 두 사람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집에서는 주인과 머슴으로 교회에서는 평신도와 장로의 관계로 성실하게 자신의 일을 감당하면서 살아갔습니다. 그러다가 후에 조덕삼은 금산교회 예배당을 짓기 위해 땅을 기증했고, 성도들이 힘을 모아 예배당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후에 금산교회의 2대 장로로 취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후에 조덕삼 장로는 자기 집 머슴인 이자익 장로를 평양신학교에 보냈습니다. 모든 공부에 필요한 경비를 조덕삼 장로가 대주었습니다. 그리고 이작익 장로는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조덕삼 장로는 이자익 목사를 금산교회 담임목사로 청빙하였습니다. 그리고 조덕삼은 장로로 금산교회와 이자익 목사님을 잘 받들어 섬겼습니다.


    [김제 여행]금산교회 한옥교회 마부 이자익과 장로 조덕삼 ㄱ자형 한옥교회 전북 김제 금산교회


이자익 목사는 금산 교회 담임목사로 목회를 하면서 대한예수교 장로회 제13대 총회장으로 당선되었습니다. 장로교 역사상 총회장으로 재임을 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데 이자익은 총회장을 세 번이나 지냈습니다. 이러한 입지전적인 사람을 키워낸 인물이 바로 조덕삼 장로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의인의 자손들에게 복을 주십니다.

조덕삼 장로의 후손도 예수를 잘 믿어 하나님의 복을 받은 믿음의 명문가문을 이루었습니다. 조덕삼 장로의 아들은 조영호 장로이고, 조영호 장로의 아들 조세형 장로는 할아버지를 이어 삼대 째 금산교회 장로가 되었고, 국회의원과 일본 대사를 역임한 믿음의 명문가문이 되었습니다. 2005419일에 대전신학대학교에서 이자익 목사를 기리는 출판행사가 있었는데 그 자리에는 조덕삼 장로의 후손들과 이자익 목사의 후손들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그 때에 이자익 목사님의 손자인 이규완 장로는 조덕삼 장로의 손자인 조세형 장로에게 우리 할아버지께서 주인을 잘 만났습니다. 만약에 우리 할아버지께서 주인을 잘못 만났다면 우리들도 없고, 우리 할아버지도 안계셨을 것입니다.”라고 감사의 인사를 전했습니다.


   >금산교회< 아름다운 조덕삼 장로와 이자익 목사

하나님은 의인의 자손들에게 복을 주십니다.

이자익 목사의 손자 이규완 장로는 독일에서 칼수르해 대학교에서 고분자화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유성의 화학연구단지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했고, 2004년부터는 중국 연변에 있는 연변과학기술대학교 초빙교수로 선교활동을 하고 있고, 또 다른 손자 이규석은 목사가 되어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는 말씀을 마음 판에 새기며 살아가기를 축복합니다. 30~31절에는 의인의 입은 지혜로우며 그의 혀는 정의를 말하며, 그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법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정의를 말하면 살기를 바랍니다. 마음속에 하나님의 법을 담고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마음의 소원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조종건 설교예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