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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너 최화진 - 미국 줄리어드 음악대학 학부 및 대학원 졸업 미국 백악관 초청연주(레이건대통령 재임) 동남아, 유럽, 중동을 비롯한 세계순회연주 2회 미국내 초청연주 약400회 독일 뮌헨 오페라하우스 데뷰(장미의 가시 중 테너싱어 역) 쿠바 초청 연주 미국 NASCAR Race에서 미국 국가 연주(TNN TV로 미 전역 방영) 미국 카네기홀 및 링컨센타 30여회 연주 현 미국 뉴욕 나약대 성악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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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만나면서부터 ‘역전인생’ 을 살게 됐다는
테너 최화진(미국 뉴욕 나약대) 교수의 신앙 이야기가
최근 성도들 사이에서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지난 7월 안식년을 맞아 귀국해 현재 교회, 학교 등을 돌며
‘오직’ 신앙간증 및 찬양집회를 열고 있는 그는
“이렇게 마음껏 하나님을 불러본 적이 없었다” 면서
“내 생애 가장 행복한 날들” 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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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왜소한 체구 때문에
‘과연 저 사람이 노래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을 갖게 하지만 최 교수는 무에서 유를 창조해낸
당당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미 백악관 초청,
카네기홀, 링컨센터 연주 등을 통해 뉴욕타임스에서
‘가장 힘차고 아름다운 소리를 가졌다’ 는 평을 듣기도 했다.
그러나 ‘테너 최화진’ 이라고 이름이 알려지기까지는
눈물을 흘리며 기도한 숱한 세월이 밑거름이 됐다.
가난한 집 막내로 태어나 겨우 고등학교를 졸업한 최 교수는
고교 2학년 때 하나님을 만나 그때부터 다윗처럼
찬양하는 사람을 꿈꿨다.
- 어렸을 때부터 노래를 잘했던 최 교수는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군에 입대,
육군본부 남성 4중창단으로 활동했다.
단원들이 모두 신실한 크리스천이라 함께 찬양하며 신앙을 키웠다.
“우연히 중창단의 노래를 들은 김장환 목사님께서 제대 후 함께
선교여행을 가자고 제안하셨고 1976년 후반부터 김 목사님과 함께
세계일주 선교여행을 했습니다. 중동 유럽 아프리카 등을
돌았는데 미국에 갔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최 교수는 미국에서 음악공부를 하고 싶었다. 그
러나 주변 환경이 막막했다.
- 임신 7개월의 아내를 설득하는
것도 문제였고 미국에서 살 생활비가 없었다.
최 교수는 당시 출석했던 교회에서 찬양 콘서트를 열어
후원금을 모금했다. 그때 모아진 돈으로 편도 비행기표를 샀고
남은 돈 40달러를 들고 아내와 함께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막상 미국에 도착해보니 더 막막했다.
1주일은 한 목사님의 도움으로 겨우 지냈지만
다음부터가 걱정이었다.
겨우 얻은 허름한 집에는 밤마다 박쥐가 굴뚝에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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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을 앞둔 아내에게 더할 수 없이 미안했던 최 교수는
문득 마태복음 14장 29절 말씀을 떠올리며
‘그래,주님만 바라보자’ 고 외치며 용기를 냈다.
교회에서 어렵게 끼니를 해결하고 찬양을 하며 돈을 모았고
미국 정착 3개월만에 차 1대를 구입해 여러 지역의 교회를
순회하며 하나님을 찬양했다. 그러던 중 한 할머니로부터
그는 또다시 영적 도전을 받았다.
“저의 노래를 듣던 그분은
‘당신은 이런 시골마을에서 살 사람이 아니야.
뉴욕에 가봤어? 줄리어드 음대라고 들어봤어?
공부를 해야지’ 라며 채찍질하시더군요.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습니다.
- 내가 왜 미국에 왔는가?
겨우 이렇게 살려고 이 고생을 하는가라고요.”
당장 줄리어드 음대 입학원서를 사들고 시험을 준비했다.
입시요강은 독어 영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로 된 노래
2곡씩을 부르는 것이었다. 제대로 된 레슨 한번 받아본 적이 없었던
그는 각각의 노래 테이프를 사서 반복해 들으며 실기시험을 준비했다.
테이프에서 들리는 목소리와 발음을 그대로 흉내내 연습했고
당당히 수석으로 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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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생활비가 많이 들어 저는 400여통의 후원 편지를 썼습니다.
많은 분이 저를 위해 기도해줬고 그분들의 격려로
지금 이 자리에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줄리어드 음대 대학원까지 졸업한 최 교수는 우연한 기회에
학교 채플 때 자신의 신앙간증을 전했고 그것을 들은
나약대 음대 학과장이 감동을 받아 그를 추천,
교수로 함께 일하게 됐다.
최 교수는 그동안 미국 백악관 초청연주, 카네기홀·링컨센터 연주,
동남아 유럽 중동 세계순회연주, 쿠바 초청 연주 등
많은 무대에 섰다.
- 올해초 그는 북한에서
초청을 받았으나 정중히 거절했다.
“하나님만 찬양하는 제게 북한을 선전하고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라고 하더군요. 연주곡들을
전달받고 거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난 13년 동안 열심히 후배들을 가르쳐온 그는
1년 안식년을 맞아 귀국했다.
2005년까지 전세계 초청연주 스케줄이 잡혀있는 그는
현재 국내에서 간증집회를 갖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게 어느 때보다 즐겁다고 고백했다.
“저는 학생들에게 ‘생각하고 꿈꾸는 것만큼 이뤄진다’ 는
것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저는 음악적 욕심을 냈고
대가들의 노래를 들으며 꿈을 키웠습니다. 큰 꿈을 갖고
하나님께 매달린다면 주님은 기쁘게 응답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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