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너 김승일 씨가 부르는 감동과 희망의 노래
지난 2010년 SBS ‘스타킹’ 출연을 계기로 ‘야식배달부’에서 ‘성악가’로 데뷔해 화제를 모았던 테너 김승일 씨가, 최근 국내외를 누비며 성악 공연을 펼치는 동시에 자신의 간증을 전하고 있다. 인생의 벼랑 끝에까지 몰렸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연단 속에 마침내 역경의 열매를 맺고 있는 그의 이야기는, 기독교인들 뿐 아니라 비기독교인들에게도 잔잔한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테너 김승일 씨. |
김승일 씨의 어린 시절은 순탄했다. 목수인 아버지 슬하에서 3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비록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화목하고 단란한 가정 분위기에서 자라났다. 뿐만 아니라 김승일 씨는 좋은 목소리까지 타고나 교회와 학교에서 음악과 관련된 활동을 하고, 당시 최고의 인기 라디오 프로그램이었던 이문세 씨의 ‘별이 빛나는 밤에’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다. 이후 대중음악의 길로 접어들어 시·도 지역별 경연대회에서 1등을 놓치지 않을 만큼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러던 중 입시를 얼마 남겨 두지 않고 우연히 알게 된 ‘카루소’란 성악곡의 매력에 빠져 클래식의 길로 접어들었다. 준비 기간이 짧았을 뿐 아니라 성악 레슨은 한 번도 받은 적이 없었기에 주변에서는 우려의 시선을 보냈지만, 그는 예상을 뒤엎고 당당하게 한양대 성악과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고, 이후로도 장학생에 선발되는 등 승승장구했다.
“대학생으로 생활하면서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음악 세계를 접하게 됐고, 저를 인정해주는 사람들이 하나둘 생기면서 음악에 대해, 그리고 저 자신에 대해 자신감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저의 재능으로 점점 더 높은 세계를 향해 발돋움하려는 욕망이 커지는 것을 저 스스로도 느낄 정도였어요. 많은 질투의 눈초리를 받으면서도 아랑곳하지 않을 정도로 부푼 꿈에 가득 차 있었고, 앞으로 제 앞길에는 성공만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시련은 갑자기 찾아왔다. 어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지면서 가세가 급격히 기울게 된 것. 가뜩이나 가난한 형편 때문에 김승일 씨의 형들도 우수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었는데, 김 씨가 학비가 비싼 음대에 진학하면서 그의 어머니가 어쩔 수 없이 학비를 대기 위해 과로하다가 건강이 악화된 것이었다.
불안함과 초조함, 그리고 미안함 속에 김승일 씨는 결국 학교를 자퇴하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사회생활 경험이 전무했기에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택배, 음료수 도매, 노점상, 부동산, 대리운전, 야식배달까지 약 15가지 직업을 전전하면서 하루에 20시간이나 일을 하는 등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이상하게도 하는 일마다 사고와 악재가 겹치면서 점점 빚은 쌓여만 갔다. 현실의 벽은 높았다.
그 와중에 사랑하는 어머니마저 결국 세상을 떠났다. 삶의 모든 의지가 꺾이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그가 잘했고 좋아했던 음악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었다. “하나님은 도대체 무엇을 하시는가? 지금 나를 보고 계시기는 한 것인가?” 원망의 마음만 들어왔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귓전에 생생한 음성이 들려왔다. 바로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 41:10)는 말씀이었다.
“4대째 기독교 집안이었지만 이전까지 신앙적 체험은 별로 없었는데, 그때 두려움도 불안함도 아닌, 세상에서는 느껴 본 적 없는 편안함이 느껴졌습니다. 알 수 없는 자신감과 평안함이 생겼고, 희망과 기쁨이 저의 마음속에 자리잡았습니다. 일어나는 모드 일들에 대해 불만과 불평에서 감사함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같은 체험에도 불구하고 그의 삶은 여전히 힘겨웠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주일에도 쉬지 못하고 야식배달을 하는 것이 그의 직업이었다. 가끔 교회를 기웃거리며 과거와 같은 교회생활과 노래를 다시 시작해 볼까도 생각해 봤지만 쉽사리 용기를 내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다니던 야식집 사장이 그의 노래를 우연히 듣고 SBS 스타킹에 사연을 보내, 방송국에서 출연 제의가 들어왔다.
▲테너 김승일 씨. |
“갑자기 그 동안 잠자고 있었던 심장이 뛰기 시작하여, 주체할 수 없이 제 가슴속에 무언가가 꿈틀대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새 그 마음은 희망으로 저의 마음 한쪽에 자리잡았습니다. 두려웠고, 괴로웠고, 힘들었지만, 꿈을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도전했고, 그 이후는 잘 알려진 대로 새 삶을 얻었다. 지금껏 해외 공연 50여 회, 교회 공연 200여 회, 대중 행사 300여 회을 소화했고, 노래와 간증을 통해 희망을 선사하고 있다. 2014년 대한민국 국가조찬기도회에서도 솔로 공연을 하고 미국 메트로폴리탄 공연에서는 줄리어드음대 교수에게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기도 했다.
“하나님은 이렇게 오랜 시련을 경험케 하신 후에, 하나님의 준비된 사람들을 만나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려 하셨음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결국 우리 모든 인생은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피할 수 없음을 확신합니다. 그 동안 저 자신만을 의지하면서 살았던 시간을 뒤로하고, 이젠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앞으로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고난도 복도 그분의 뜻 안에서 감당하며, 하나님을 높이며 살겠습니다 -김은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