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코미디언 남철 씨가 최근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사찰에서 공연을 하는 등 불교와 가깝게 지내온 그는, 말년에 기독교를 믿은 것으로 알려졌다. 영정사진의 십자가와 ‘윤성노(본명) 성도’라는 문구에는 불교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남 씨의 불심이 얼마나 두터웠는지는 검증하기 어렵다. 다만 병고와 죽음이라는 실존적 문제 앞에서 결국 절대자에 의탁했다고 유추해볼 수 있다.
故 남철 박태준
변양균, 현역 인기배우 엄정화
춥고 외로워졌을 때 그들의 옆엔 반드시 목사나 장로, 신부가…
불자 유명인들의 기독교 개종 소식이 이따금 들려온다. 인생에서 커다란 시련을 맞았을 때 내리는 결정인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사례가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 노무현 정부에서 승승장구한 그는 종단의 대소사를 물심양면으로 도우며 불교계의 신망을 얻었다. 그러나 2007년 사찰에 대한 국고보조금 편법지원 혐의로 구속되고 ‘신정아 학력위조 사건’에 연루돼 오명을 뒤집어쓰면서, ‘불심대신(佛心大臣)’의 위상은 순식간에 추락했다. 석방 후 두문불출하던 변 씨의 거취가 대중에게 알려진 것은 모 주간지의 보도를 통해서였다.
“개신교로 개종해 서울 강남 화평교회에서 안수집사로 활동하고 있다”는 내용은 불자들에게 자못 충격이었다. 그가 교회에 몸담은 때는 2009년 2월. 대법원 확정판결 한 달 뒤라는 점은 단순히 우연으로 보이지 않는다.
지난 1월 타계한 고(故) 박태준 포항제철 명예회장의 개종도 눈에 띈다. 대권후보로까지 거론됐던 박태준 전 회장은 대선 직후인 1993년 국세청의 전방위 세무조사로 무려 3년6개월간 해외를 떠돌았다.
일본에 체류 중이던 그해 9월 어느 일간지는 “독실한 불교신자였으나 최근 들어 성경을 열심히 읽고 있으며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하길 바란다는 편지를 친지들에게 보내 개종을 고려하고 있는 것 같다”는 측근의 전언을 실었다. 그는 이후 유력인사들을 전도하며 명망 높은 개신교인으로 변모했다.
거슬러 올라가면 12.12쿠데타의 희생양이었던 정승화 당시 육군참모총장이 있다. 1970년대 군불교는 전군에 불교장교회가 결성될 정도로 전성기를 맞았다. 텃밭을 다진 주역이 바로 정승화 장군이었다.
불교를 돕는 일에 누구보다 열정적이었던 그는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천주교 신자가 됐다. 부하들의 반란으로 불명예제대한 뒤 반역자로 낙인찍히면서, 불교계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했다. 고립무원의 처지를 보살펴준 사람은 군종신부였다고 한다.
인기가수이자 배우인 엄정화 씨의 개종도 불자들에게 아쉬움을 남겼다. 불자 집안에서 태어난 그녀는 서울 묘각사에서 신행활동을 하던 모범적인 불자였다. 관음종 총무원장 홍파스님과도 친분이 깊다. 하지만 교회에서 세례를 받으면서 불교와의 인연이 멀어졌다.
2008년 1월 “하나님께서 저 때문에 얼마나 안타까우셨을지 마음이 아팠다”던 온누리교회에서의 간증에는 절절한 심경이 엿보인다.
신(神)이라는 절대관념은 유한하고 나약한 존재인 인간에게 치명적인 유혹이다. 앞서 소개한 인물들은 현실이 춥고 외로워졌을 때, 강력한 유일신을 보유한 기독교로 발길을 돌린 것으로 추정된다. 아울러 그들의 옆엔 반드시 목사나 장로, 신부가 있어 진심으로 위로하고 직접적인 도움을 줬다는 게 동일한 패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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