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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환자를 위한 1분 기도의 기적들

배남준 2016. 6. 7. 06:46


[김철중의 생로병사] '수술 환자를 위한 1분 기도'가 만드는 작은 기적들

  • 입력 : 2016.06.07 03:00   

지나간 세월에 대한 회한과 살아갈 날에 대한 희망 담긴 수술 준비실의 '1분 기도'
종교 초월한 바람과 정성이 안정제처럼 평안과 위로 안겨

김철중 의학전문기자·전문의
김철중 의학전문기자·전문의
서울 강남터미널 뒤쪽에 자리 잡은 서울성모병원. 5층 수술실에서는 매일 아침 색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수술을 받으려면 속을 비워야 하기에 밤새 금식한 환자들이 이른 아침 수술실로 대거 들어온다. 환자 20여명이 일제히 들어오는 수술 준비실은 의료진의 손길로 분주하다. 그 상황에도 환자가 누워 있는 침상마다 1분간 정적이 흐른다. 환자를 위한 수녀의 기도가 있기 때문이다.

전신 마취 수술에 임하는 모든 환자에게 수녀가 다가간다. "제가 환자를 위해 기도해 드릴까요? 종교와 상관없이 환자의 치유를 위한 것입니다." 환자들 백이면 백 기도해달라고 답한다. 수녀는 환자 옆에서 두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아 쾌유를 빌고, 의료진의 정성 어린 손길이 환자에게 닿기를 기원한다.

그 1분 기도에 뜻밖의 광경이 벌어진다. 40대 가장이 울음을 터뜨리고, 60대 엄마가 흐느끼고, 80대 할아버지가 눈시울을 적신다. 1분 동안 그들에게 수십년 인생이 지나갔으리라. 수녀의 기도를 듣는 환자의 절반 이상이 눈물을 흘린단다. 찌르면 아프고, 건드리면 무너지는 것이 환자의 심정이지 싶다. 이들을 위해 수녀 8명이 번갈아 가며 수술실 기도 당직을 선다.

수술을 앞둔 환자들은 긴장한 탓에 혈압이 오르고 맥박이 빠르다. 기도가 끝난 뒤 환자들의 혈압과 맥박은 대개 안정감 있게 떨어져 있다. 웬일인지 기도를 들은 환자는 마취 유도제가 적게 들어간다는 말도 의료진 사이에서 나온다. 1분 기도가 평온과 위로를 안기는 심혈관 안정제이자 불안 마취제인 셈이다. 기도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간·신장이식 수술이나 심장 수술을 받는 중환자들에게는 수술실 안에서도 의료진의 기도가 이어진다.

기도로 수술을 시작한 원조는 세브란스병원이다. 수술 준비실에서 목사와 전도사가 기도를 시작한 데 이어 4년 전부터는 수술대에 누운 환자를 위해 마취과 의사나 수술 의사가 기도를 주도한다. 수술실 의료진 모두 수술포를 덮은 환자의 몸에 손을 얹고 1분 기도를 드린다. 사전에 기도 동의를 얻고, 환자가 '아멘!'을 거북해하면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를 빼고 기도를 마친다. 매일 100명 안팎의 수술 환자에게 쾌유를 빌고, 의료진의 손길이 실수 없이 아픈 곳을 잘 어루만지게 해 달라고 빈다. 한 스님 환자가 기도를 제안해야 할지 머뭇거리는 의료진을 향해 먼저 "나에게도 기도해 달라"고 말한 일화도 있다. 목사가 환자였다고, 스님의 기도를 마다했겠나…. 수술실 기도를 주도하는 의사 중에는 기독교 신자가 아닌 경우가 절반 정도 된다.

[김철중의 생로병사] '수술 환자를 위한 1분 기도'가 만드는 작은 기적들
/이철원 기자
기도 효과는 의료진도 본다. 한 집도 의사는 "수술을 앞둔 의료진이 잠시나마 평온을 느끼고 수술에 임하는 자세를 가다듬게 된다"고 말했다. 수술 기도를 한 병원에서는 전보다 환자의 불만이나 이의 제기가 줄었다고 한다. 기도하는 의료진의 정성을 느끼고 신뢰하게 되기에 그렇다는 해석이다. 기도가 의료 사고와 의료 분쟁을 줄이는 효험이 있는 모양이다.

기독교 신앙에서는 남을 위한 기도를 중보기도라고 한다. 자신을 위한 기도나 남을 위한 기도나, 같은 영적 에너지가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남에게 기도를 부탁하기도 하고, 남을 위해 중보기도를 한다. 그럼 중보기도는 실제 의학적으로 효과가 있을까. 여기에는 의견이 분분하다. 차이가 있다는 쪽과 없다는 측으로 나뉜다. 수술 전 기도가 환자 회복에 도움이 됐다는 논문이 있는가 하면, 심장병 수술에서 기도를 받은 그룹과 받지 않은 그룹 간에 결과 차이가 없었다는 연구도 있다. 시험관 아기 시술에서 중보기도를 받은 여성의 임신 성공률이 2배 높았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물론 의료의 본질은 세심하고 꼼꼼한 진단과 치료이고, 기도가 그것을 대신하지는 못한다. 어찌 됐건 누군가 기도 혜택을 입었다는 주장은 있어도 기도가 질병을 악화시켰다는 연구는 찾아보기 어렵다.

대학병원에는 대개 24시간 기도실이 있다. 늦은밤 기도실에 종교와 상관없이 환자 가족의 기원이 모인다. 유방암 수술을 앞둔 어머니의 딸이, 췌장암으로 입원한 아버지의 아들이, 소아암을 앓는 아이의 엄마가, 두 손을 모으고 어깨를 들썩이며 기도한다. 기도에는 지나간 세월에 대한 회한이 있고 살아갈 날들에 대한 희망이 있다. 종교를 넘은 바람과 정성이 두 손을 모아쥐게 한다. 우리는 그 누구를 위해, 그 무엇을 위해 절실히 기도한 적이 있는가. 나를 위해, 가족을 위해, 이웃을 위해 기도한다면 세상이 더 따듯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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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