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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의 비성경적 지독한 오류!

배남준 2016. 5. 18. 05:35

교황은 오류가 없나? 다시 불붙은 150년 교리논쟁


교황의 무오성(무류성) 논쟁이 150여년 만에 다시 불붙고 있다. 교황 무오성은 가톨릭 교회 수장인 교황의 신학적인 교리와 언행에는 오류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국 런던의 가톨릭계 매체인 ‘가톨릭헤럴드’는 최근 이에 관한 교황의 편지를 공개하면서 논쟁을 촉발시켰다. 세계적인 진보신학자 한스 큉(Hans Kung·77·사진) 박사는 지난 3월 9일 교황과 주교단의 무오성에 관한 공개적인 토론을 요청하는 편지를 언론매체에 기고했으며, 교황은 20일자로 큉의 요청에 답서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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큉 박사는 “교황의 무류성에 관한 공개토론 허락을 요청하는 내 편지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직접 답장을 보내왔다”면서 “교황은 (토론에) 어떠한 제한도 두지 않았다”고 전했다. 교황이 보낸 답장의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은 채 그는 “교황은 무오성에 관한 토론을 장려했다고는 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그는 “‘친애하는 형제에게(Dear brother)’로 시작되는 교황의 개인적 답변을 받은 것이 너무 기쁘다”면서 “교황은 내 편지를 꼼꼼히 읽어보았고, 신학총서 제5권을 집필한 나의 숙고에 대해 깊은 감사를 표시했다”고 밝혔다.

프란치스코 교황
신학총서 5권은 교황 무오성을 비롯한 종래 가톨릭 교리를 비판하는 내용으로, 큉은 이 바람에 1979년 바티칸으로부터 신학교수직을 박탈당해 국제적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큉은 이 책에서 교회 내 상호 인정, 다른 교파의 인정, 여성의 안수, 이혼 문제 등을 거론하며 가톨릭계 주류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큉은 이 매체와 인터뷰에서 “무류성 속에 있는 우리 가톨릭 교회는 여전히 긴 겨울 속에 있으며 개혁에 무능하다”고 지적했다. 교황의 답서를 받은 큉과 가톨릭계 진보학자들은 구체적인 향후 행동방침을 모색 중인 가운데 조만간 교황 무오성에 관한 국제회의를 개최할 것으로 알려졌다.

무오성은 교황의 권위가 한창이던 1200년대부터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갑론을박 속에 1870년까지는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다 제1차 바티칸 공의회 때인 1870년 비로소 성문화되었다. 그해 7월 13일 제255대 교황 비오 9세는 교황의 수위권(首位權)과 절대 무오성을 선언하고 교회 헌장에 삽입했다. 비오 9세는 “교황의 절대 무오성을 부인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바로 이단이다”고 선포했다. 당시 비오 9세의 무오성 선포에 대해 진보 가톨릭계와 개신교 교단에서는 교황권의 남용이라며 거센 논란을 일으켰다.

앞서 1854년 비오 9세는 “성모 마리아는 원죄 없이 예수를 잉태했다”는 무염시태(無染始胎) 교의를 발표했고, 1950년엔 비오 12세가 성모 마리아의 육체와 영혼이 함께 승천했다는 ‘성모승천(聖母昇天)’ 교의를 발표하면서, 이는 절대 불변 진리라는 무오성을 언급했다. 하지만 큉 박사는 교황의 역할과 권한이 독선적으로 변질되었으며, 무오성 교의는 로마 가톨릭만의 터무니없는 주장으로 교회일치운동에도 걸림돌이 된다고 주장했다.

‘가톨릭교회교리서 비평’ 저서를 낸 국내 개신교 신학자 조영엽 교수는 “교황의 무오(무류)교리는 일반적 상식에도 맞지 않는다. 교황도 사람이다. 다시 말하면 신(神)이 아니다. 천주교 역사를 보면 교황·추기경·감독·신부·수녀 등 수많은 오류와 잘못된 행위는 이루 다 형언할 수 없지 않은가”라고 평했다. 조 교수는 “최근 교황 프란치스코도 옆에 있는 사제에게 무릎 꿇고 고해성사를 함으로써 자신도 오류와 과오가 많은 죄인임을 보여 주지 않았는가?”라고 비판했다.

현재 큉 박사는 독일 튀빙겐대에서 신학교수직이 아닌 개인적인 신학교수로 재직 중이며, 교회일치 분야 세계적인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다. ‘유대교’ 등의 몇 권의 저서가 국내에 번역소개되는 등 명성을 얻고 있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